
마지막 티켓은 나에게 줬으면 (자몽 살구 클럽_ 한로로)
이 모든 것은 다 박정민 때문이다. 청룡 영화상, 청룡 시리즈 어워즈 축하 공연을 하던 화사에게 그 멜로 눈깔만 안했다면 나는 박정민의 말을 무시했을 것이다. 화사의 뮤직 비디오와 축하 공연 영상을 일주일 동안 무한 반복으로 보았더니 유튜브의 모든 카테고리들은 박정민으로 도배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추천했다던 이 책, <자몽 살구 클럽>에 대한 단편적인 추천사로 꼼꼼하게 알아보지도 않고 바로 주문을 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장바구니에 담지도 않고 구매를 눌렀던 것이다. 그때는 박정민의 추천작으로 꼽힌 책들은 대부분 예약을 해서 받아 봐야 할 정도로 구매 폭주였다. <자몽 살구 클럽>도 며칠이 지나서야 받을 수 있었다.
책을 받아보고 탄식이 쏟아 졌다. 뭐야. 손바닥만 한 책. 하루키의 [고양이를 버리다]라는 책을 받아 들었을 때의 분노가 떠올랐다. 출판사에게 저주를 쏟아 냈었다. 심지어 내용도 없어서 더 화가 났던 책이었는데, 두 번째 분노의 탄식을 쏟아낸 책이 <자몽 살구 클럽>이었다. 이것은 다 박정민 때문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국문학과를 나왔기에 책 한권을 내보고 싶다는 가수의 책을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다. 손바닥만 한 책이라 외투 주머니에도 들어가서 출 퇴근하며 하루 만에 다 읽었다. 그 정도로 내용이 짧고 정말로 작은 책이었다는 것이다.
퇴근길의 전철은 빼곡한 닭장 같다는 상투적 표현밖에 생각이 안 되는 곳이다. 마지막 장을 읽으며 놀란 가슴을 쓸어 내는 동안 전철은 깜깜한 한강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반짝이는 불빛들이 달리는 창에 비추지 않았더라면 아주 살짝 스쳤던 눈물을 빠르게 닦지 못했을 것이다. 이 작디작은 책 속에 있던 네 명의 소녀들을 떠 올리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주인공 소하는 어느 날 학교 게시판에 붙은 광고지 한 장을 보게 됐다. 그것은 <자몽 살구 클럽>이라는 동아리였고 회원을 구하는 내용이었다.
“ 죽고 싶지만 (힝 ㅜㅜ) 실은 살구 (아자~)
싶은 자들의 비밀스러운 모임
당신은 무엇 때문에 죽고 싶나요?
그 이유가 명확한 당신! 우리와 함께 합시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나요?
그 무엇을 모르는 당신! 우리가 필요합니다
가입을 원할 시, 뒷면의 “티켓”을 갖고
“내일 오후 5시 음악실로” 오세요”
본인도 모르게 빠른 손놀림으로 티켓을 가지게 된 소하는 떨리는 마음으로 음악실을 가게 됐다. 그리고 <자몽 살구 클럽>의 멤버들과 만나게 됐다. 원래는 5명이어야 동아리 인정을 받는다는데, 소하가 가도 4명밖에 없는 사라질 동아리였다. 소하, 유민, 태수, 보현이는 자살이라는 말이 늘 입 밖으로 꺼내진 못해도 가슴에 남아 있는 아이들이었다. 모두가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어느 순간들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살고 싶은 아이들이었다. 살고 싶으면서 죽고 싶기도 하고, 죽고 싶으면서 살고 싶기도 한 청소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자몽 살구 클럽>의 규칙은 아주 간단했다. 순서를 정하고 돌아가는 순번대로 D-Day -20을 정하고 죽지 않게 서로가 지켜주는 것. 첫 번째로 지켜줘야 할 사람은 보현이었다. 당사자는 왜 죽고 싶은지 이유를 말해야 했다. 그렇게 그들은 보현이가 왜 죽고 싶은지 사연을 듣게 됐다. 죽고 싶은 보현이를 위해 세 명은 애를 썼고 보현이를 지켜냈다. 죽고 싶은 시간을 흘려보낸 보현이는 죽지 않고 시간을 견뎠다는 것을 느끼며 죽는 것보다 살고 싶다는 마음이 훨씬 더 컸다는 것을 알게 됐다.
폐암에 걸린 엄마와 어린 동생을 돌봐야 했던 보현이는 살려 냈지만 학업과 강압된 부모님 밑에서 고통 받았던 태수는 지켜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런 태수를 그리워하는 유민이. 가정 폭력에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맞아도 누구하나 도와 줄 사람이 없는 소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소하가 선택 할 수밖에 없었던 그 행동들이 안타깝기만 했다. 왜 소하를 도와줄 어른은 아무도 없었을까. 태수를 위로 할 어른은 없었을까. 마치 나는 <자몽 살구 클럽>의 회원이 된 것처럼 네명의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에 다음 장을 넘길 때마다 위태로운 마음이었다. 정말, 너희들 모두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
한번쯤 마음에 담기도 했었던 그 단어. 살자의 반대말. 하지만 그 누구보다 살고 싶다고 말했던 이들이지만 그 어떤 것으로 소하의 마지막 행동을 이해하기엔 너무 가슴이 아프다. 소하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끝내기 위해선 그 방법 밖에 없었던 것일까. 더 위태로웠던 태수를 아무도 지켜주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문득 어른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어떤 어른으로 이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것일까.
태수가 불렀던 “걸의 아스피린”이라는 노래를 들었다. “끔찍한 일이 될 거야. 달링 어른이 된다는 상상만으로도 내게는 숨이 막혀 버릴 것 같은 고통일거야.” 끝내 어른이 되지 못했던 태수에게는 더 이상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안식을 얻었으니 다행인건가.
첫 소설집을 낸 한로로의 노래를 한 번도 들어 본적이 없어 몇 곡 찾아 들었다. 달달한 그녀의 목소리로 아이들을 위로하는 것 같은 이 책이 별점에 비해 나는 나쁘지 않았다. 그냥, 나도 태수 같은 멋진 언니가, 따뜻한 보현이 같은 언니가 때로는 아무 말 없이 있어도 좋은 유민이 같은 언니가 필요했기에. 그녀의 위로의 글들에 나도 위로 받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