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러시아.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진 나라다. 동쪽 끝과 서쪽 끝의 시간 차가 11시간이나 차이가 나는 나라며,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필자는 러시아를 두 번이나 여행했다. 한번은 군대에 입대하기 전인 2016년에 했고, 다른 한 번은 2025년 12월 말과 올해 1월 초였다. 2026년 새해를 수도 모스크바에서 맞이했다. 필자가 러시아에 대해 관심을 많기 가지게 된 것은 10대 시절 제2차 세계대전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부터도 있지만, 대학시절 마르크스와 레닌의 저작을 읽으면서 본격적으로 러시아의 역사를 공부하게 됐다. 그러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고, 이 전쟁은 필자가 러시아에 대해 다시 보게되는 기회를 제공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필자는 한국과 서구 언론이 러시아에 대해 어떻게 악마화하는지를 제대로 알게 됐다. 러우전쟁 6개월 전 아프가니스탄에서 명분없는 침략전쟁을 하던 미국이 정작 전쟁에서 패배한지 6개월 만에 러시아에 맞서 제재를 하는 기이하고 황당무계한 상황은 필자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무엇보다 미국이 20세기에 저지른 수많은 전쟁들 속에서 미국이 얼마나 많이 전쟁에 개입하여 인명피해를 초래했는지를 필자는 잘 알고 있기에, 그런 미국이 러시아를 제재할 권리가 있는지가 의심이 됐다. 안타깝게도 한국 사람들은 미국이 주장하는 반러 내러티브를 비판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나 또한 그랬던 것 같다. 10대 시절 좋아하는 게임을 통해 반러 내러티브에 큰 문제의식을 못느꼈던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생각을 나중에서야 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좋은 책 하나를 읽게 됐다. 바로 기 메탕의 저서 『루소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이다.
우선 필자가 즐기던 게임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2. 루소포비아와 FPS 게임 Call of Duty
“우리 지도자라는 작자들이 우리를 서방에 팔아넘겼다. 우리의 문화...우리의 경제...우리의 명예를 파괴했다. 우리의 피가 우리의 땅에 흘렀다. 내 피가...저들의 손에. 저들은 침략자다. 모든 미군과 영국군은 당장 러시아를 떠나라. 그렇지 않으면 대가를 치를 것이다.”
“러시아는 유럽 전체를 정복하게 될 것이다. 설령 그게 잿더미 위에 서게 될 수밖에 없는 일이라 해도 말이다. 나는 발사 코드를 원한다. 대통령.”
위의 대사는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FPS 게임인 콜오브듀티 모던워페어 시리즈(Call of Duty: Modern Warfare Series)에서 악역이 한 대사다. 첫 번째 대사는 2007년에 나온 모던워페어 1의 최종 보스인 이므란 자카예프(Imran Zakhaev)가 한 대사고, 두 번째 대사는 모던워페어 3의 최종 보스인 블라디미르 마카로프(Vladimir Makarov)가 한 대사다. 대사를 보면 알겠지만, 최종 보스들의 국적은 두말할 것도 없이 러시아다. 게임 상에서 묘사된 러시아는 미국과 영국을 싫어하는 존재고, 또 유럽 전체를 피로 물들여서라도 정복하려고 시도하는 주체다. 세계적인 게임회사인 인피니티 워드(Infinity Ward)가 만든 이 게임은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장의 누적 판매량을 자랑했다.
이처럼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린 게임이지만, 게임 속에는 서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러시아에 대한 편견이 거리낌 없이 들어가 있다. 게임 상에서 항상 주인공은 영국의 SAS 특수부대이거나 미정규군 아니면 레인저 대대나 델타포스와 같은 미군 특수부대다. 이들이 상대하는 적은 당연히 침략적이고 호전적인 러시아군이며, 러시아군은 자국 내에서도 주민들을 함부로 학살하고 괴롭힌다. 그리고 전쟁광적인 지도자인 이므란 자카예프를 지지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심지어 2009년 작인 모던워페어 2의 경우, 앞서 언급한 블라디미르 마카로프가 모스크바 공항에서 미국인으로 위장한 뒤 미국제 무기로 민간인 학살 테러를 벌여, 러시아가 미국에게 선전포고하고 미국 동부 지역을 침략하도록 만드는 장본인으로 그려진다. 게임에서 주인공이 있는 레인저 대대의 목표는 러시아가 침공하여 점령한 워싱턴을 해방하는 것이다. 게임상에서 워싱턴을 러시아군으로부터 해방하고 나서 나오는 대사는 미국과 서방이 러시아에 대해 얼마나 적대적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해당 대사를 보자.
“레인저 병사: 우리는 언제 모스크바로 쳐들어갑니까?
던 상병: 당장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도착하면 거길 불태워버릴 거다.”
이처럼 게임 상에서 묘사되는 러시아는 서방이 타도해야할 매우 나쁜 존재다. 여담이지만, 사실 2007년과 2009년 그리고 2011년에 나온 모던워페어 시리즈는 필자가 10대와 20대 시절 정말 열심히 즐겼던 FPS 게임이었다. 필자 또한 어린 시절 이 게임의 캠페인 시리즈를 수도 없이 플레이했고,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멀티플레이도 신물이 나도록 했다. 캠페인 시리즈의 난이도는 플레이어가 쉬움, 보통, 어려움 그리고 가장 고난이도인 베테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필자는 20대 초반에 해당 시리즈들을 전부 베테랑 난이도로 클리어했다. 그 당시 콜오브듀티를 즐기던 필자는 게임을 하며 이런 루소포비아적인 논리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콜오브듀티 모던워페어 시리즈 뿐만아니라, 2010년 미소냉전을 다룬 FPS 게임인 콜오브듀티 블랙옵스(Call of Duty Black Ops) 또한, 여지없이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에 대해 지극히 악마화된 프레임으로 해석한다. 게임 상에서 소련 측 최종보스인 니키타 드라고비치(Nikita Dragovich)에 대해 레즈노프라(Reznov)는 주인공 알렉스 메이슨(Alex Mason)이 만든 환영 속 존재는 다음과 같은 대사를 한다.
“드라고비치는 서방 세계에 대한 공격을 계획하고 있어. 그를 반드시 막아야 해! 메이슨.”
콜오브듀티 모던워페어 시리즈와 블랙옵스는 미국에서 만든 게임이다. 사람들은 이 게임을 아무런 생각없이 즐긴다. 물론 필자 또한 이 게임들을 수도 없이 즐겼다. 그러나 나중에 공부하면서 이와 같은 게임에 들어간 내용들이 러시아에 대한 서구의 편협하고 왜곡으로 점철된 내러티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처럼 러시아에 대해 루소포비아(Russophobia)적 시각에서 매체를 만들어 내고, 또 편견을 조장하는 존재는 누구일까? 바로 서구 사회다. 서구 사회는 오랜 시간 동안 러시아에 대해 편견의 눈으로 바라보았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이와 같이 서구의 뿌리깊은 러시아에 대한 혐오와 편견 그리고 위선을 분한 책이 바로 메탕(Guy Mettan)의 저서 『루소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이다. 게임에 대한 얘기가 길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책의 주제인 루소포비아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3.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루소포비아 그리고 한국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정부가 특수군사작전을 개시하며 전쟁이 시작됐다. 물론 전면전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보게 되는 지점들이 분명 있다. 그러나 이 전쟁의 본질은 단순히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것에 있지 않았다. 미국과 서방 사회는 2013년 푸틴과 친한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야누코비치(Victor Yanukovych) 정부을 전복하기 위해 유로마이단(Euromaidan) 시위를 조장했고, 결과적으로 아누코비치 정권을 전복하고 포로셴코(Poroshenko)가 중심이 된 친서방 정권을 만들었다. 러시아 정부는 이 과정에서 대다수 주민이 러시아 정체성을 가진 크림 반도를 주민투표를 통해 합병했다. 포로셴코 정권은 정체성이 러시아계인 동부 우크라이나에서 자국 주민을 대상으로 한 전쟁을 개시했고, 이것이 바로 돈바스 내전(Donbass Civil War)이었다.
유로마이단 시위 당시 미국은 우크라이나 네오나치 극우세력들을 지원했고, 돈바스 내전 시기에도 네오나치 집단을 정규군대로 양성했다. 이게 바로 우크라이나 네오나치 군대인 아조프 대대(Azov Battalion)의 시작이었고, 이들의 전신은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 방화사건을 일으켜, 민간인 50명을 산채로 불태워 죽이는 민간인 학살 만행을 저질렀다. 이들의 학살은 동부에서 8년간 지속되었고, 무려 15,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포로셴코 이후 집권한 젤렌스키(Zelensky) 또한, 돈바스에서의 이런 잔혹한 전쟁을 진행했고, 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지속적으로 러시아와 약속한 민스크 협정을 위반하며 돈바스에 여러 차례 포격을 날렸다. 이해영 교수가 집필한 『우크라이나전쟁과 신세계질서』에 따르면, “2022년 2월 16일부터 돈바스에 대한 우크라이나군의 포격이 시작됐다. 월 16일 509회의 정전 위반과 316회의 폭발음이 있었다. 2월 17일부터 22일까지의 기록을 보면, 17일에는 870회의 정전 위반, 654회 폭발음, 18일 1,566회 정전 위반, 1,413회 폭발음, 19~20일 3,231회 정전 위반, 2,026회 폭발음, 21일 1,927회 정전 위반, 1,481회 폭발음, 22일 1,710회 정전 위반, 1,420회 폭발음이 기록됐다.” 이와 같은 통계는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도발했다는 근거 중 하나다. 이와 관련된 내용들은 이해영 교수의 저서를 참고하면 좋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자, 서방 사회는 러시아에 대한 비난의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러시아가 침공한 날 당일부터 한국과 미국 그리고 서유럽의 언론에서는 러시아의 폭력성과 공포성을 자극하는 기사들을 도배되기 시작했다. 시작 2~3일도 안되어 러시아와 푸틴을 비난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시위들이 열렸다. 한국에서도 열렸다. 한국에서는 정의당·녹색당·노동당과 같은 진보 계열 단체들이 시위를 주도했다. 페미니스트 운동 단체, 전쟁없는 세상과 같은 평화주의 단체, 심지어 한국의 독립운동을 기억하는 흥사단과 같은 단체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동물권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논리는 매우 단순했다. “러시아는 침략자니까 나쁘고, 침략당한 우크라이나는 피해자라는 것”이다. 즉, 이 사건이 왜 일어났고, 왜 이런 극단적 상황으로 이어졌으며, 자신들이 응원하는 우크라이나의 문제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보지 않으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기 메탕의 저서를 옮긴이가 ‘옮긴이의 말’에 쓴 다음과 같은 내용은 매우 공감된다.
“한국에서 러시아는 과장 과소평가되고, 왜곡된 이미지를 가진 나라의 하나다. 러시아를 여전히 '소련'과 동일시하는 기성세대가 다수이다. 냉전 체제 하에서 한국전쟁의 경험과 남북분단체제의 지속, 그리고 지속적인 반공 교육의 효과일 것이다. 압도적으로 서구 담론의 영향을 받는 언론인과 지식인, 정치인, 외교관의 대다수는 러시아가 주요한 국제정치 행위자가 아니거나 국제정세의 안정을 해치는 나라로 여긴다. 예컨대, 영미권과 서유럽에서 나오는 프로파간다성 정보가 의심없이 진실로 여겨지고 러시아에서 나오는 사실 발표가 오히려 프로파간다로 치부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서구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자주 그런 상황이 지속되어 왔는가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한국이 여전히 유아적인 세계 인식, 국가이익 개념에 대한 무지라고 할 정도로 편견의 장벽에 갇힌 나라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모스크바에 대한 서울의 태도이다. 서구가 조장한 러시아 혐오증에 자신도 모르게 오랫동안 중독된 상태로 지내온 탓일 것이다. 이런 중독증은 이른바 보수우익 인사들만이 아니라 진보를 자처하는 자유주의자들의 경우에도 심하게 나타난다. 여기에는 역사적으로 한반도에서 현상유지 정책을 선호하고 여전히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적극적으로 알리는데 소극성을 보이는 러시아 당국의 태도 또한 한몫하고 있다.”
기 메탕, 김창진ㆍ강성희 옮김, 루소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 가을의아침, 2022, 12~13쪽.
옮긴이의 말처럼 한국 사회는 진보와 보수 할 것 없이 러시아에 대해 이런 편견에 빠져있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러시아에 대해 그리고 서구가 퍼뜨린 러시아에 대한 왜곡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사회적 영향으로 한국 사회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구의 반러시아 프로파간다가 손쉽게 먹히는 풍토가 더욱 강화됐다. 박근혜 탄핵 정국을 통해 등장한 한국의 문재인 정권은 집권 말기, 서방을 따라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동참했고, 이후 탄생한 윤석열 정권은 아예 대놓고 폴란드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K-9 자주포와 같은 무기들을 제공했다. 그리고 그 무기들은 우크라이나 군대가 러시아군을 죽이는 데 이용되었다. 만약 윤석열이 비상계엄으로 탄핵되지 않았다면, 북한의 우크라이나 파병을 빌미로 한국의 군대를 우크라이나에 파병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었다면, 남북한은 아마도 우크라이나에서 대리 전쟁을 치렀을 것이다. ‘월드리딩’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박상후의 말처럼, “2024년 윤석열 탄핵안 가결로 인해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파병하지 않게 된 것은 천운”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한국의 진보들 또한, 러시아에 대한 편견이 강하다. 지난 2025년 진보단체 전쟁없는 세상에서 번역한 스웨덴 비폭력 평화운동가 마이켄 율 쇠렌센의 저서 『전쟁 없는 세상 - 비폭력의 의미를 묻는 당신에게』의 초반부를 보면, 한국의 진보들에게도 반러시아적 내러티브가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쇠렌센은 “비폭력 저항을 위한 준비는 러시아의 전면적인 침공이 있기 전인 2014년 러시아가 돈바스와 크림반도를 점령했을 때부터 시작되었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데, 이 부분은 소위 진보라 불리는 일부 인사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얼마나 본질적인 부분을 못 보는지를 보여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기 메탕의 저작을 인용하겠다.
우선 러시아가 돈바스를 그 당시 점령했는가를 보자면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다.
“도대체 어째서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 주민들이 서부 우크라이나인들처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부정해야 하는가? 더군다나, '마이단 파'가 권력을 장악하고서 그들의 언어와 그들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는 사태가 발생했는데도 말이다.”
기 메탕, 김창진ㆍ강성희 옮김, 루소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 가을의아침, 2022, 44쪽.
즉, 그 당시 돈바스는 돈바스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마이단에 맞서 저항한 것이었다. 이어서 기 메탕은 서구 사회가 크림 반도 합병에 대해 어떻게 왜곡하는지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서구는 마이단 시위 참가자들에 대한 우크라이나 나치 우익분자들의 저격, 2월 21일 합의 위반, 2월 22일 쿠데타, 5월 2일 오데사에서 발생한 유혈 폭력, 우크라이나 동부 주민들의 모국어 및 문화에 대한 권리 침해, 세바스토폴 해군기지를 우크라이나 정부가 나토에 제공하겠다는 약속, 우크라이나를 지나는 러시아 가스관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이 가스를 절도한 사건, 말레이시아 항공기의 격추 주체가 전혀 밝혀지지 않은 상황, 제네바 협약을 위반하고 돈바스 민간인 지역을 폭격한 사건, 친미 우크라이나 정권에 대한 미국의 대규모 군사지원과 같은 일들이 모두 실제 일어나지 않은 허구이며, 러시아의 선동인 것처럼 군다. 이러한 조작 기술을 쓰는 목적은 바로 러시아가 이 모든 행위를 시작했다고 세계가 믿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사실 그들이 원하지도 않고, 예견할 수도 없었던 사건에 대해 반응했을 뿐인데 말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서구 평론가들과 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 위기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어 사용 지역에서 러시아의 공식 사용을 금지한 키예프 임시 정부의 명령에 의해 야기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크림과 돈바스가 결국 이 명령 때문에 돌아선 것이 아닌가? 이런 상황이 러시아 혐오주의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들이 우크라이나 위기가 시작된 진짜 이유로 거슬러 올라가 설명하게 되면 결국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반도와 동부 지역 분리가 정당화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여론조작의 기술자들이 정성들여 잘 만들어놓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론이 카드로 만든 집처럼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이렇게 사실 왜곡을 감행하지 않는다면, 전통적인 러시아 팽창주의와 소비에트 제국을 복원하려는 푸틴의 꿈이 문제의 근원이지 서방의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의 정책 때문에 위기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해명을 어떻게 대중에게 각인시킬 수 있겠는가? 바로 이런 방법으로 서구 언론은 끊임없이 역사를 다시 썼고, 서방 정부를 가득 채우고 우크라이나의 새 정부에게 조언을 해주는 홍보 전문가들 덕분에 2014년 3월 이전, 즉 크림 반도 주민들의 자치에 관한 총주민 투표 이전에 발생한 사건에 관해 언급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서구 언론이 2014년 2월 이전 사건들에 대해서 말하게 되면, 모든 것이 다 러시아 잘못이고, 크림에서 실시된 주민투표가 불법적이었다고 서구의 여론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되면 야누코비치가 주도한 쿠데타가 위헌이고, 프랑스ㆍ독일ㆍ폴란드 외교장관이 공동서명한 2월 21일 자 합의는 그저 넝마조각이었을 뿐이며, 우크라이나 선거 자체는 군사쿠데타로 세워진 불법적 정부에 의한 국제법 위반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어떤 대령이 거리 시위대의 지원을 받아 권력을 잡는다면, 그는 신속하게 병영으로 돌려보내질 것이다. 하지만 서구의 중대한 이해관계가 걸린 우크라이나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기 메탕, 김창진ㆍ강성희 옮김, 루소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 가을의아침, 2022, 56~58쪽.
거기다 실제로 크림반도 주민들은 러시아로의 편입을 원했다. 2014년 3월 16일에 러시아에 의해 실시된 크림반도의 주민투표에 대해 기 메탕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고상한 언론은 "크림의 자치에 대한 주민투표는 우크라이나 헌법과 국제법에 위배되고", 따라서 불법이라고 선언한 백악관의 견해에 기꺼이 동의했다. 크림 주민 95%가 러시아 연방의 일원이 되는 것을 찬성했다는 사실에는 서구의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우리 기자들이 자신의 직업적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려면 이 주민투표가 1991년 1월 12일에 우크라이나 당국이 정당하게 합법적으로 조직한 이전의 투표 결과를 확인해 주었을 뿐이라는 것을 언급했어야 했다. 그때 크림 주민 81.37%가 주민투표에 참여했고, 투표 참여자의 94.3%가 독립적인 크림공화국의 복구 및 고르바초프가 제안한 새로운 연방조약에 대한 서명을 지지했다.”
기 메탕, 김창진ㆍ강성희 옮김, 루소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 가을의아침, 2022, 110쪽.
필자는 이와 같은 기 메탕의 분석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따라서 앞서 얘기한 쇠렌센의 분석은 이런 사실관계를 알면 나올 수 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언론들과 한국의 반러시아적 감정을 가진 이들은 이런 사실을 보지 않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필자는 2024년 8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영토 쿠르스크를 침공했음에도 여기에 대해 지적하는 이른바 신좌파 계열 진보운동이 한국에서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 상당히 모순적으로 느껴졌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보여주는 문제점들은 한국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4. 프랑스-영국-독일-미국의 루소포비아와 역사
기 메탕의 책은 본서가 2016년에 나왔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는 2016년 이전까지의 내용만 다루고 있다. 그 점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기대하고 본 사람이라면, 아쉬울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이 책의 장점은 우크라이나 사태 분석과 더불어 다른 곳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책에서 다루는 루소포비아의 역사적 측면이다.
저자는 루소포비아의 역사적 기원을 추적하기 위해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의 루소포비아를 분석했다. 우선 프랑스의 루소포비아부터 이야기해보자. 18세기 당시 러시아를 편견 없이 본 일본 선장 다이코쿠야 코다유의 이야기는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른 분석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기 메탕에 따르면, 코다유는 배가 좌초되어 승객들과 함께 알류산 열도의 섬 한 곳에 상륙했고, 거기서 러시아 사람을 만나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의 여행을 하게 됐다. 예카테리나 2세도 만났다고 한다. 코다유는 일본으로 돌아갈 것을 허락 받기 전까지 페테르부르크에서 여러 달 동안 살았으며, 러시아어까지 배웠다고 한다. 코다유는 기록을 남겼는데, 기 메탕의 표현을 빌려 얘기하자면 거기에는 프랑스인들이 부정적으로 인식했던 “관습과 행정 제도, 자연, 왕궁, 인민, 정치 생활, 매음굴, 음식, 술 등에 대해 그 어떤 판단이나 선입견 없이, 분명하게, 절대적으로 진실되게, 조금의 편견도 없이 구체적으로 묘사”가 들어가 있었다. 같은 시기 프랑스인이 계속해서 상기시켰던 참을 수 없는 전제주의와 끔찍한 농노제, 중세의 고문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부분을 보더라도 결국 기록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영국의 루소포비아도 흥미롭다. 저자에 따르면, 영국에서의 루소포비아는 19세기 초반이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영국과 러시아는 19세기 초 반불동맹 국가였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황제가 대륙 봉쇄령으로 영국의 해상 무역로를 봉쇄한 사실은 세계사를 조금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여기에 맞서 러시아는 영국과의 무역을 지속했고, 나폴레옹은 1812년 러시아를 침공했다. 비록 러시아는 모스크바까지 프랑스군에게 점령당했지만, 이후 동장군을 이용해 반불 연합군과 함께 진격하여 수도 파리까지 진격하여 나폴레옹을 축출했다. 그 당시 분명히 영국과 러시아는 동맹이었다. 즉, 영국과 러시아는 함께 나폴레옹을 몰락시켰다.
그러나 영국은 빈체제 설립 25년이 안되어 러시아에 대해 적대적인 국가로 대응했다. 특히 1840년대 오스만 제국 문제와 이후 크림전쟁 등에서 러시아에 대한 영국의 루소포비아는 극에 달했다. 생각해보면, 1904년 러일전쟁에서도 영국은 10년 뒤 동맹이 될 러시아를 적대했다. 그 당시 영국은 일본을 지원하며, 러일전쟁에서 러시아의 주력함대인 발틱 함대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지 못하게 막았다. 결국 그렇게 해서 지구 반바퀴를 돌아 일본 해역에 간 발틱 함대는 대마도 인근 해역에서 일본 군함들에게 참패하게 됐다. 아무튼 영국의 루소포비아는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났고, 20세기와 21세기를 걸쳐 200년이 넘게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봐야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러시아가 새로운 영토를 장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가장 놀라운 것은 1815년이나 1945년 모두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새로운 영토를 장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쟁 전리품과 영향권의 할당 문제가 1815년에는 비엔나 회의에서, 1943-45년에는 테헤란, 얄타, 포츠담에서 오랫동안 논의되었다. 두 경우 다 러시아는 협상에 참여한 모든 당사국들이 서명한 협약의 조건을 세밀하게 준수했다. 2세기 전과 반세기 전에 발생했던 반러시아 정서의 강화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수많은 가설 가운데 공산주의자의 파괴적 활동과 러시아의 고유한 성질인 팽창주의를 통제할 필요성, 러시아 전제주의와 전체주의로부터 민주주의를 보호할 필요성, 그리고 기타 다른 이유들을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설명이라기보다는 변명에 가깝다. 그러므로 글리슨의 견해와는 달리 영국과 미국의 루소포비아는 주로 이들 두 나라의 제국주의적 야망과 세계 지배를 향한 불굴의 의지에 기인한다고 가정해야 한다. 이 나라들은 새로운 영토를 갈구하는 과거의 해양 강국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두 나라는 그들의 의지를 다른 민족에게 강요하려 해왔고, 지금까지도 강요하고 있다. 그들은 B-52 폭격기 또는 무인 항공기의 총포라는 외교를 이용한 군사 작전, 자유 무역을 도입하는 경제적 조치, ‘소프트파워’ 자원을 동원하는 문화적 행보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기 메탕, 김창진ㆍ강성희 옮김, 루소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 가을의아침, 2022, 280~281쪽.
이 지점에서 필자는 도입부에서 언급한 콜 오브 듀티가 다시 떠올랐다. 게임 속 러시아는 현대 서구 대중문화가 소비하는 전형적인 악역 이미지다. 그런데 기 메탕의 분석을 읽고 나면, 이런 이미지가 단순한 창작적 설정이 아니라 훨씬 오래된 역사적 인식의 연장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저자는 러시아에 대해 제국주의로 분석하는 것 또한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그 비판적 분석의 핵심골자는 “영국 제국주의자들이 1815~1900년까지 자신들의 소설과 논문에서 러시아 팽창주의와 싸우고 있는 동안 대영제국의 영토는 영국 자체의 20배를 초과”한 반면, “그렇게 비난을 받았던 러시아는 베사라비아, 캅카스, 튀르게스탄, 만주를 이용해 국경을 둥글게 만들어 자신의 영토를 겨울 25% 늘렸을 뿐”이라는 것이다. 즉, 러시아와 서방의 영토 확장 속도의 격차는 1대 100이었다. 영국이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러시아 제국주의라고 비난하는 것은 이 시기의 역사를 놓고만 보자면, 그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전혀 없음을 보여준다. 참고로 영국은 벵골만 대기근 300만 명을 포함하여, 1930~40년대 인도인 수천만 명을 굶겨 죽인 역사도 있다.
독일의 루소포비아 또한, 여러 역사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특히 독일의 루소포비아는 19세기 말에 나타났다. 특히나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루소포비아에가 보다 강화됐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보다 형성된 루소포비아는 역설적이게도 독일이 패망한 이후 사라지지 않았다. 1920년대 독일에서 등장한 극우 민족주의 운동 즉 파시즘은 이를 강화했다. 나치당의 히틀러는 1924년에 출판된 자서전 『나의 투쟁』에서 이른바 레벤스라움이라는 논리를 만들어 냈다. 이것은 독일 민족이 러시아를 정복하여 게르만족의 생활공간을 확장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논리의 근간에는 영토확장과 더불어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 그리고 반볼셰비즘이 탑재되어 있었다.
루소포비아의 인종적 측면이 극단화 된 것이 바로 독일이었다.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을 때 그런 극단성이 실제 역사에서 나타났다. 히틀러의 홀로코스트 희생자 대다수가 소련계 유대인이었다는 점을 우리는 여기서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실 1945년 나치의 절멸 수용소인 아우슈비츠를 해방한 군대는 소련의 붉은 군대였다. 그러나 2015년 아우슈비츠 해방 70주년에서 정말 말이 안되는 역사왜곡과 모욕이 폴란드에서 벌어졌다.
“폴란드는 파시즘에 대한 승리에서 러시아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기 위해 역사를 다시 쓰려는 욕망이 너무나 강해서 2015년 1월 27일 아우슈비츠 해방 70주년 기념 행사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초대할 생각조차 하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폴란드 외무장관 그제고즈 쉐티나는 파렴치하게도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우크라이나 군대에 의해 해방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행사에 참석한 유럽 국가 지도자 중 누구도 폴란드 지도부의 이러한 수정주의적 습격에 항의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기 메탕, 김창진ㆍ강성희 옮김, 루소포비아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 가을의아침, 2022, 321쪽.
미국 또한 루소포비아가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미국의 루소포비아 역사는 1945년에서야 시작됐다. 그것은 냉전기간 내내 자라나서 1950년대의 거친 매카시즘, 그리고 1980년대에 아주 잘 고안된 전체주의와의 투쟁이라는 테제로 점진적으로 변화했다. 21세기에는 반푸틴 논쟁에 맞춰 부활하게 됐다. 특히 미국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과 동맹이었던 관계가 냉전 시기 급격히 적대 관계로 전환된 과정은 영국 사례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본다. 즉, 과거에는 협력했던 러시아가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다시 “위협”으로 재정의되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책의 저자가 미국의 루소포비아를 잘 분석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선 책에서 한 가지 놓치는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1917년 레닌이 일으킨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자, 미국 내에서는 이른바 적색공포가 확산됐다. 그리고 미국 내에서 확산된 적색공포는 1918년 미국이 러시아를 침공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1918~1921년까지 미국은 러시아 영토에서 백군을 지원하며, 볼셰비키의 군대와 전쟁을 치렀다. 이 부분에 대해 소련은 충분히 침략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적잖은 미국인들이 제1차 세계대전을 기억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110년 전 러시아를 침공한 사실은 기억하지 않는다. 여기서 가정을 해보자면, 만약 러시아가 미국의 영토를 침범한 사례가 있었다면, 과연 미국인들이 그리 무관심했을까? 필자는 1962년 소련이 쿠바 인근에 핵미사일을 배치한 것과 1941년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한 것, 그리고 2001년 9.11테러가 일어난 것을 일반 미국인들이 역사에서 기억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이 러시아 영토에서 침략전쟁 그것도 부당한 황제 복권을 위해 전쟁을 치렀다는 사실은 잘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그 점에서도 미국식 중심 사고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을 해본다. 책이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다소 아쉬웠다. 사실 미국은 자신들이 당한 2001년 9.11 테러를 기억하지만, 정작 1973년 칠레에서 자신들이 주도한 9.11 테러는 전혀 기억하지 않고 있다. 이런 점에서 역사를 보는 시각도 매우 중요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5. 결론: 이 책은 러시아와 러시아에 대한 서구의 편견을 알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
지금까지 게임 콜오브듀티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서구 사회의 루소포비아 역사를 통해, 루소포비아와 책에 대해 설명했다. 콜오브듀티 자체는 책에 나오지 않은 내용이지만, 루소포비아를 설명하는 데 있어 좋은 소재가 아닌가 싶다. 이번에 책을 읽으며, 콜오브듀티를 수도없이 플레이하며 보게 된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은 반러시아 내러티브씬이 지속적으로 생각이 났다. 적잖은 서구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이 러시아를 인식하고 소비하는 이미지가 바로 그 게임이라는 생각이 책을 읽으며 들었다. 그리고 그런 루소포비아는 단순히 자본주의적 소비 매체를 넘어, 기나긴 세월을 통해 축적되었다.
특히나,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그런 이미지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얘기하지만, 정작 서구 사회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을 자극하고자 벌인 행위들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사실 이 부분에서 미국과 서구 사회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서도 얘기할 필요가 있다. 저자 기 메탕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다루며, 유로마이단의 본질을 제대로 보여줬다.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네오나치들이 서구의 지원을 받은 것과 마이단 시위에서 학살을 일으킨 사실 등은 이 책에 비교적 잘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미국과 서구의 이런 지원은 냉전 초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부분에 대해선 역사학자 구자정의 논문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간략히 말해, 미국은 냉전 초기 소련을 전복하고 사보타주하기 위해, 스테판 반데라와 같은 우크라이나 나치들을 이용하여 대소공작을 벌였다. 대소공작을 1950년대까지 벌이다 중단했다. 중단한 이유 중 하나가 소련이 서유럽을 침공하려는 조짐을 전혀 포착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우리가 냉전에서 소련과 러시아를 얼마나 미국의 프레임으로 이해하고 있었는지를 상기시켜 준다. 서구 사회는 이런 사실을 외면한 채, 콜오브듀티와 같은 프레임으로 러시아를 재해석해 왔다. 즉, 역사왜곡을 저지른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제 4년째로 접어들었다. 어찌보면 독소전쟁 보다도 더 길게 진행된 전쟁이다. 전쟁은 우크라이나의 패배로 끝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서유럽과 미국은 전쟁을 중단하려 하지 않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공화당의 트럼프 보다 민주당 쪽이 오히려 이 전쟁을 계속 이끌어 나가려 한다. 미국과 서유럽이 왜 패배한 전쟁을 유지하고 있는것일까? 아마 이 부분에 대한 질문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부분에 있어서 확실하게 큰 요소 하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루소포비아적 정서가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영화 ‘플래툰’과 ‘JFK’로 유명한 올리버 스톤은 작년 초 터커 칼슨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다음은 러시아가 폴란드를 침공할 것이다.”라는 말을 카말라 해리슨 민주당 후보가 했다고 비판했다. 스톤에 따르면 이것은 “가장 멍청하기 짝이 없는 무지한 발언”이다. 여전히 루소포비아는 서구 사회 전체를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이런 루소포비아의 기원과 본질 그리고 위선과 문제점을 알고 싶다면, 필자는 기 메탕의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책의 일독을 권하며, 긴 서평을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