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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라고는 하지만 밤에 퍼붓듯이 비가 와도 아침부터 밝을 동안엔 그쳐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물론 비 그치면 뜨겁고 비 오면 습도가 장난이 아니지만 일단은 우중에도 그런 때가 있다는 것에 방점을 찍어 본다.


낮에 영화 <도어락>을 봤다. 스페인 영화 <슬립 타이트>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고 하는데 소재만 차용하고 줄거리나 방향성은 별개라고 한다. 그러니까 원작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건 영화를 결코 잘 만들어서가 아니다. 원작의 판권을 사들일 바엔 배우만 교체하고 아예 줄거리나 방향성도 같이하는 게 훨씬 경제적으로나 효율적인가 아닌가 싶어서다. 물론 원작을 보지 않았으

니 이렇게 말하는 것도 좀 조심스러울 수도 있겠다.


영화의 완성도보단 의욕이 너무 앞서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또 의욕이 앞선 만큼 정말 의욕이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건 칭찬이다.) 사실 내가 스릴러 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내가 그러는 나름의 이유가 없지 않지 싶기도 하다. 스릴러치고 완성도 좋은 작품을 만나지 못한 탓도 있지 않나 싶은 것이다. 언젠가 본 <목격자>란 영화도 얼마나 답답하고 짜증이 나던지 결국 다 보지 못하고 끊어 버렸다. 그래도 이 영화는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은 있었다.


어찌 보면 영화는 장르 막론하고 트릭의 예술인지도 모르겠다. 관객을 완벽히 속일 수 있어야 좋은 영화다. 특히 스릴러나 미스터리는 더더욱. 그런데 보면 구멍이 숭숭 뚫린 게 보인다. 관객을 속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설혹 속였다고 해도 그 방법이 좀 올드하다. 예를 들면 주인공 경민(공효진 분)에게 대놓고 들이대다 비교적 늦게 최후를 맞는 기정(조법래 분)이 스토커 범인 일 수도 있다. 모든 정황이 기정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니까. 하지만 이럴 경우 범인은 따로 있을 거란 건 나 같이 스릴러를 볼 줄 모르는 사람도 초반부터 짐작이 가능하게 만든다. 왜 그런지는 스포일러가 돼서 더 이상 언급은 회피하겠지만. 하긴 그게 정공법이라면 할 말은 없다. 원래 범죄 스릴러는 이 사람이 범인인가 싶다가도 저 사람이 범인인 반전의 묘미에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감독이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니다. 단지 그게 좀 많이 본듯해서 식상하다는 정도라 문제인 거지.


게다가 딸이 죽을 뻔한 일을 겪었는데 엄마는 전화로만 통화하고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계모인가? 원래 가족이 남만도 못한 경우가 많긴 하니 그도 그냥 이해하기로 하자. 그런데 나 왜 이렇게 이 영화에 점수가 후한 거야? 그 밖에 이 영화의 아쉬움은 영화 사이트에 가면 많이 올려져 있으니 내가 여기서까지 뭐랄 건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이 영화에 후하고 싶은 건 앞서 말했던 것처럼 완성도는 좀 아쉽긴 하지만 영화에 대한 의욕이 보여서다. 무엇보다 주인공 경진 역을 맡은 공효진의 연기가 좋아서이기도 하다. 아마 모르긴 해도 공효진이 이 영화의 반은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걸. 이 배우는 뭘 맡겨놔도 정말 연기를 잘한다. 특히 특유의 안정감 거기서 나오는 신뢰감이 한마디로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이 영화 감히 보라고 추천까지 하고 싶은 건 꼭 공효진이란 배우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이 과연 여자 혼자 살기 좋은 나라인가에 대한 뭔가 은유가 담겨 있는 것 같아서다. 1인 가구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물론 거기엔 절대다수가 남자겠지만 여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싱글 여자를 상대로 한 계획범죄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방범이라도 잘 되어있어야 하는데 경찰은 너무 미온적이다. 영화도 그렇지만 여자 혼자 사는 집 쳐놓고 남자 구두 현관에 한 켤레쯤 놓고 살지 않는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게 방범에 어느 만큼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라도 해 놓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세상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혀 줬으면 좋겠다.


내 방 창문에서 건너편 건물은 금남의 집인지 우리 집이 이사 올 때부터 지켜보건대(보려고 해서 보는 건 아니다.) 사람은 바뀌는데 항상 여자만 2, 3명쯤 살고 있는 것 같다. 뭔데 저 집엔 여자만 살고 있는 걸까 오래도록 의문스러웠다. 또 어떤 땐 내 방 창문에서 마주 보이는 곳이 그 집 주방 창문인데 이틀이고 사흘이고 밤낮으로 켜져 있는 때도 있었다. 그게 또 명절 전후인 경우가 있었다. 그러면 내 짐작엔 그녀들의 본가는 다 지방이라 혹시 밤에 빈집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켜 놓은 걸까 했다. 그러다 최근에 엄마의 설명으로 나의 추리는 다 틀리긴 했지만 이렇게 여자들만 사는 집이고 같은 여자인데도 뭔가 모를 상상력을 발휘하게 만든다. 내가 이럴진대 남자들은 또 어떤 상상을 할지 누가 알겠는가. 그런데 이 말은 하고 싶다. 행여 빈집에 불 켜 놓지 말라고. 그게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앞서도 엄마의 설명 때문에 나의 상상력이 깨졌다고 했는데 그러니까 그 집 여자들은 서로를 너무 믿은 나머지 내가 소등을 안 해도 누군가 하겠지란 안이한 생각에 그렇게 된 것이다. 참고로 그 집은 살림집이 아니라 작업실 겸 창고같이 쓰는 곳이란다. 나 참...


우리나라가 이제 선진국이란다. 그 근거를 어디서 보는지 모르겠다. 경제 문화적으로 잘 살면 선진국인가? 나는 감히 말하건대 그런 거 가지고는 선진국이라 말할 수 없다. 어린아이와 노인, 여성이 안전하고 제대로 된 권리를 누려야 선진국이다. 물론 우리가 완성도 높은 영화를 봐야겠지만 가끔은 완성도는 다소 떨어지더라도 뭔가의 함의가 있는 영화라면 그것도 좀 놓치지 말고 봐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못해도 별 3개다. 그만하면 볼만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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