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은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수록된 단편 여덟 편을 주말 동안 읽었다. 문체는 내밀하며 문장은 간결하고 아름답다. 버려진 이들의 세계와 그들 삶의 내밀한 균열을 섬세한 호흡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신인 작가의 소설집인데 가독성이 높다.
작품 속 화자나 주인공들은 모두 상처를 안고 있거나 그다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삶을 살고 있지만 언제나 '어디든 새로운 길은 남아 있을 것' 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수록된 여덟 편이 다 좋았다. 신예작가의 다음 작품집이나 장편소설을 기대해본다.
레일도 없는 길을 바퀴도 없는 기차를 타고 하염없이 달려가고 있는 내 상황을 ‘얼마나 좋을까’ 라는 달콤한 말을 빌려 수영에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레일위의 집’ 11쪽)
격렬하게 저항하지 않으면,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슬픔은 머리카락처럼 자라나고 불행은 밤처럼 점점 짙어 간다는 걸 나는 이미 열일곱 살에 알아버렸다. (‘밤의 소리" 60쪽)
"울고 싶은 데 말이야 마음 놓고 울 데가 있어야지. 집에서 아픈 딸애 앞에서 울까? 병원 사무실에서 울까? 돈도 벌면서 마음껏 실컷 울고……"
그녀는 말을 끝내고는 흐흥, 흐흥 웃음을 흘렸다. (‘눈물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100쪽)
"별을 버리는 건 삼촌을 버리는 일이야! 세상에는 버릴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했어. 삼촌이 그렇게 말했어!" (‘개를 완벽하게 버리는 방법’ 131쪽)
가만히 있어 줄래요. 그냥…… 단지…… 그러니까 사람의 체온을 느끼고 싶어요. (……) 오랫동안 잠들지 못한 사람은 오랫동안 잠들지 못한 사람의 고통을 안다. 예련은 침대에 누워 남자가 팔을 풀어줄 때까지 하나, 둘, 셋, 하고 속으로 세었다. 오백 몇 개를 세었을 때 남자의 팔이 스르르 풀렸다. (‘지나가지 않는 밤’ 186~187쪽)
때론 단출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불쑥불쑥 누군가의 얼굴이 뇌리를 가로지르려고 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종일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을 하거나 백화점 명품관을 순례하곤 했다. 누락된 기억들은 서랍장 속 깊은 곳에 봉인되어 녹슨 잠이나 자면 될 일이었다.
(‘밀봉의 시간’ 153쪽)
주인여자가 수술이 잘 되어 깨어난다면 함께 캠핑카라도 구입해 어디로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주인여자나 나나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지만 어디든 새로운 길은 남아 있지 않을까. (‘나는 유령의 집으로 갔다’ 225쪽)
소파는 그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아버지나 정원보다도 더 각별했다. 오로지 소파만이 자신을 보호해 줄 것만 같았다. 소파만이 잘 할 수 있어, 절망하지 마,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 ) 수현은 소파 위에 기다랗게 누웠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거실 바닥으로 비쳐들었다. 낮은 조도처럼 노랗고 부드러운 빛이었다. 눈꺼풀이 감겼다.
(‘소파 밑의 방’ 257~2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