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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고공크레인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 일을 고공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 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겠다구요

진짜 고독한 사람들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혼자 고공크레인 위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2003년 10월 22일 MBC 라디오 <FM 영화음악> 진행자 정은임의 오프닝 멘트다 그해 10월 17일 한진중공업의 노동조합 지부장이었던 김주익이 35미터 고공크레인 위에서 목을 매 숨졌다
닷새 후 정은임이 한 노동자의 죽음을 공중파 라디오 방송에서 호출했다. 켄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의 배경음악을 들려주면서

이어 정은임 아나운서는 한달여 뒤 다시 더욱 칼날같은 오프닝을 했다



2003년 11월 18일 노동귀족

193,000원
한 정치인에게는 한끼 식사조차 해결할 수 없는 터무니없이 적은 돈입니다. 하지만 막걸리 한 사발에 김치 한보시기로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에게는
며칠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는 큰 돈입니다.
그리고 한 아버지에게는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길에서조차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한, 짐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FM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아이들에게 휠리스를 사주기로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일하는 아버지, 故 김주익씨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이 193,000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193,000원. 인라인스케이트 세 켤레 값입니다. 35m 상공에서 100여 일도 혼자 꿋꿋하게 버텼지만 세아이들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는 아픈 마음을 숨기지 못한 아버지
그 아버지를 대신해서 남겨진 아이들에게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준 사람이 있습니다.
부자도, 정치인도 아니구요
그저 평범한, 한 일하는 어머니였습니다.
유서속에 그 휠리스 대목에 목이 메인 이분은요,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주머니를 털었습니다. 그리고 휠리스 보다 덜 위험한 인라인 스케이트를 사서, 아버지를 잃은,
이 위험한 세상에 남겨진 아이들에게 건넸습니다

2003년 늦가을.
대한민국의 노동귀족들이 사는 모습입니다

노동귀족이라고 지탄받는 대기업 한진중공업의 노조지부장이었죠?
고 김주익씨. 고 김주익씨가 남긴 지갑 한 번 볼까요? 파업으로 회사에 손실을 입혔다고 재산을 다 가압류 당하구요. 그에게 남은 돈은요. 세 아이들의 인라인스케이트도 사줄 수 없는 돈. 13만5천80원이었습니다. 어떤가요? 귀족다운가요?



안테나를 뽑아 올려 라디오를 듣던 때가 있었다. 미지의 목소리가 그 가느다란 쇠기둥을 따라 흘러 내 안에 고이던 밤.
때론 피뢰침이었다. 섬광처럼 빛나는 말과 음악이 안테나를 타고 내려와 외로운 청춘을 감전시켰다. 누군가에겐 전영혁이, 누군가에겐 신해철이, 또 누군가에겐 이소라와 정지영이 밤의 섬광이었다. 그 가운데 정은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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