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병희 선생은 서문에서 플라톤을 더 많은 독자에게 소개하기 위해 난해한 직역과 지나친 의역은 피하고, 원전의 의미를 되도록 알기 쉽게 전달하고자 힘닿는 데까지 노력했다고 밝혀두고 있다. 그동안 박종현 선생의 역저인 [국가]의 벽을 넘지 못한 독자라면 천병희 선생의 [국가]는 쉽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반갑고 의미 있는 작업이라 여겨진다. 마치 두텁고 무거운 근엄한 옷을 걸쳤던 [국가]를 살짝 속이 비치는 시슬루 패션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점에서 시선이 간다.
플라톤의 [국가]는 소설같은 이야기 구성으로 가상인물을 등장시켜 풀어쓴 산문형태의 글이다. 총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기 대화편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고 중기 대화편에서는 플라톤 자신의 생각을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서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합의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 구분이 명확하거나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 문체비교를 통해서 시대를 구분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국가] 편은 중기 대화편이라는 것에는 거의 모든 학자가 동의할 만큼 많은 연구가 있었고 해석이 있었다.
국가로 번역된 폴리테이아(Politeia)는 폴리스의 정치체제만이 아니라 가치와 규범, 전통과 관습, 교육 방식을 지니고 있는 폴리스(Polis) 시민들의 삶의 방식까지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래서 천병희 선생은 국가라기 보다는 정체에 가깝다는 견해를 밝혀두고 있다. 국가에서 다루고 있는 많은 주제들은 결국 올바름과 올바르지 못함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들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가장 유익한 삶인지, 어떠한 삶을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객관적으로 가치 있는 삶에 대한 물음과 답들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윤리, 정치, 교육, 심리, 형이상학, 인식론 등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훌륭한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들이다.
개인적 올바름은 폴리스의 기원과 발전에 대한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운 나라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해준다. 국가는 상호간의 필요에 의해 생겨났고 구성원들은 경쟁자들이 아니라 협력자 또는 동반자로 서로애게 이익이 되고 좋은 것을 추구하는 목적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플라톤은 인간은 본성적으로 공동체를 구성해서 살 수밖에 없는 동물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가]는 영혼의 세 가지인 이성주도적인 사람,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 욕구적인 사람으로 분류하고 있도 또한 세 가지의 즐거움에 대해서도 애기하고 있다. 다섯 종류의 사람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는데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 나는 무엇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가 대입시켜 보는 것도 재미난 일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플라톤에게 있어 이성은 참으로 중요한 요소이다. 이성의 능력은 무엇이 올바르고 좋은지를 추구하는 기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성이 도구화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은 단순히 욕구들의 조정자가 아니라 무엇이 참으로 올바르고 좋은지를 인식함으로써 다른 부분들의 욕구를 지배하거나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동기적인 힘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4권에서 글라우콘이 주장했듯 실제로 올바른 것보다 올바르게 보여지는 것이 사회질서 유지와 규범의 준수에는 더 효과적이라는 논점과 누가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올바름이 내적상태인(훌륭한 사람의 덕목) 그 자체에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플라톤의 논점은 서로 충돌하고 있다. 이러한 논점들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지 않은가? 수천년 전 인간의 사고와 인식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는 사실이다.
훌륭한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다루는 많은 주제들은 여전히 어느 시대에서나 중요한 물음이며 그 모든 것들이 따로 떼어낼 수 없이 전체적이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만이 하는 것들이다. [국가]는 아무리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책이다. 올바름의 문제들을 고민하고 좀 더 좋은 삶의 방식을 찾고자 노력하는 삶의 자세야말로 우리가 물려받은 유산 중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