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정체는 뭘까? 여행기라고는 하기엔 그리스에 대한 신화들로 넘쳐나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헌사라고 하기엔 너무 빈약하고, 아무튼 개인적 취향이겠지만 이런 류의 책은 달갑지도 않거니와 반갑지도 않다.
문명의 배꼽이라는 말도 거슬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서구의 정신과 문명를 잉태하였던 모체였다는 것을 부정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뻔한 제목에 뻔한 스토리에 들어서는 입구부터 맥이 빠졌다고나 할까?
지극히 개인적 성향과 까칠한 마음으로 이 책을 대한 건 어쩌면 처음부터 어긋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성실하고도 내밀하고자 했던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불성실한 독자는 시큰둥하고 있으니 이 또한 어긋남이라 하겠다
아무튼 방대한 자료조사와 20대의 꿈을 수 십 년이 흐른 뒤에도 간직하고 실현할 수 있었다는 것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결국 그를 그리스로 인도한 셈인데 저자는 그리스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면서 여전히 빛나고 있는 특질들과 자본주의 한 모퉁이에서 퇴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그리스의 두 얼굴에 대해 조곤조곤 들려준다.
시간의 순차적 연대기가 아닌, 발길 닿는 대로 유적을 더듬어가며 기록한 기행문이라 그나마 숨통이 트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