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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이 상세한 개인의 역사로 시작하고 끝나도록 함으로써 어떤 이론 혹은 추상적 개념이 따라오든 간에 결국에는 특정한 개개인에게 근거할 수 있게 했다. 자살만큼 모호하고 극히 복잡한 동기를 가진 행위를 한 가지 이론으로 풀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책의 머리말과 맺음말은 해석이란 늘 얼마나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가를 상기시키기 위해 쓰였다.
저자가 평론가라 하여 슬쩍 훓어보자고 시작한 책인데 몇 페이지를 째 읽지도 않은 채 이 사람을 믿을 수 있겠다 싶어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런 문장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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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말했다. "진짜 쓰는 거예요. 당신에게 내 새로운 시들을 좀 보여 주고 싶어요."  따뜻하고 탁 트인 태도라, 마치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판단을 내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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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이 울렸다. 실비아였다. 맵시 있게 옷을 차려입은 채였고, 그러기로 단단히 결심한 듯 밝고 즐거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냥 지나가는 중이었는데, 한번 들러 볼까 했죠."- P38

이것은 바다, 그러므로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닌 거대한 정지


낭송을 들은 나는 소름이 끼쳤다. 
처음 들었을 때 그것들은 시라기보다는
폭행이나 구타 같았다
- P43
사실 어떤 면에선 나는 죽었었다. 초긴장, 지긋지긋할 정도로 넘쳐나는 감수성, 자아의식, 오만함, 관념주의 같은 것들이 청년기의 내게 찾아들어서는 때가 되었는데도 떠나지 않는 지겨운 손님처럼 계속 머무르고 있었지만, 결국 그것들은 수면제가 일으킨 혼수상태를 살아 넘기지는 못했다. 마치 뒤늦게나마, 마침내, 서글프게 내 삶의 순결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젊은이들이 대개 그러하듯 나 역시 교만하고 방어적이었으며, 내가 진심으로 뜻하지 않은 열광과 알지도 못하는 죄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내 가련한 아내에게, 너무 젊어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그녀에게 엉망진창의 파괴자 역할을 억지로 뒤집어씌웠던 것이다.- P467
어떠한 해답도 결코 존재하지 않음을, 심지어 죽음 속에도 존재하지 않음을 일단 인정하고 나자, 놀랍게도, 내가 행복하든 불행하든 크게 상관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문제들‘도, ‘문제들의 문제‘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 자체가 이미 행복의 시작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P473
자살에 관해서 말하자면, 자살을 하나의 병으로 얘기하는 사회학자와 심리학자는 자살을 가장 악독한 대죄라고 부르는 가톨릭교도나 무슬림만큼이나 나를 당황케 한다. 내가 보기엔 자살은, 그것이 도덕을 초월한 문제인 것과 똑같이 사회적·심리적 예방을 초월한 문제다. 내게 자살이란 강요당하고 궁지에 몰리고 자연에 어긋나는 숙명에 맞서게 된 우리가 때로 스스로를 위해 일으키는, 무시무시하면서도 전적으로 자연스러운 반응인 것 같다. 그러나 자살은, 더는 내게 주어진 몫은 아니다. 이젠 아무래도 이전처럼 낙관적인 사람은 못 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죽음 그것이 내게 최후로 닥쳐 올 때는 어쩌면 자살보다 더욱 불결하고 틀림없이 자살보다 훨씬 더 불편하리라고 예측하고 있다.- P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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