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모나리자의 서재
  • 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
  • 에밀리 디킨슨
  • 13,500원 (10%750)
  • 2023-05-20
  • : 1,268


휘트먼과 더불어 19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불린다는 유명한 시인임에도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처음 만났다. 버지니아 울프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시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양장본 겉표지의 하늘거리는 커튼이 드리워진 창가의 작은 공간이 왠지 마음에 든다. 그 공간에서 에밀리 디킨슨은 밤을 새워가며 시를 썼을까. 이 시집에 수록된 시에는 제목이 없다. 창작 연도 순서로 번호를 붙였다고 한다. 보통 존슨 넘버(Johnson Number)라고 한다는데 독자가 읽을 때 적당한 제목도 지어보고 상상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위대한 이 여성 시인의 시를 잘 모르지만, 재미와 강한 인상을 주었던 몇 편의 시를 내가 느낀 그대로 해석해 보려 한다.

 



36 눈송이

 

춤추는 눈송이를

실내화를 신고 도시로 뛰어내리는 눈송이를 세다가,

그 반란자들을 표현하려고

연필을 집어 들었네.

눈송이는 점점 더 신이 나 춤을 추었고

내가 점잖은 척하길 포기하자,

한때 품위를 지키던 내 열 발가락이

지그*를 추려고 늘어섰네!(p18)

*지그:(jig) 4분의 3박자의 빠르고 경쾌한 춤.

 


어렸을 때 보았던 눈 오던 날의 풍경이 바로 소환되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날 마루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끝도 없이 쏟아지던 눈. 하나도 같은 크기의 눈송이가 아니었다. 크고 작은 하얀 솜털 같은 구름 같은 눈이 하염없이 쏟아지는 모습은 너무나 경이로웠다. 이리 튀고 저리 튀고 마치 춤추듯이 내리던 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눈을 ‘반란자’로 표현했나. 화자의 상상력이 미소를 머금게 한다. 이런 광경을 보며 가만히 앉아 그림이나 그리고 있을 수 없었겠지. 신나게 춤추는 듯 보이는 눈을 보며 춤이라도 추지 않고는 못 배기는 상황이다. 잠깐이나마 동심의 세계로 초대해 준 시였다.

 



269

언제 고난이 - 끝날지 정해 주세요-

그래야 사람들이 견딜 수 있어요!

얼마나 피를 흘려야 하는지 – 정해 주세요!

생명의 주홍 – 핏방울을 얼마나 – 많이 – 흘려야 하는지-

수학을 다루듯이

영혼을 다루어 주세요!

 

얼마나 많은 시대를 견뎌야 하는지- 알려 주세요-

그래야-불만 없이-고통을 견딜 거예요-

해가 질 시간을 시시각각 표시하는-

노동자처럼- 고통스러워도- 노래를 부를 거예요!(p58)

 


인간은 누구나 크고 작은 고통을 겪으며 살아간다. 개인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에 고난의 크기와 수용하는 태도는 각자 다를 것이다. 가족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벼운 고통도 있겠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걷는 듯 힘든 시간을 겪기도 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세상에서 내 고통이 제일 크다는 것. 이럴 때 그 고통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있다면 덜 힘들 것이다. 노동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는 노동자가 하는 일이 힘들어도 시간이 정해져 있기에 견딜 수 있다. 정확한 학문인 수학처럼 영혼을 다루어 달라고 말한다. 시인은 이 시를 왜 쓰게 되었을까. 자신의 고난을 이기려고 썼을까. 아니면 고통받는 이웃을 지켜보다가 이 시를 썼을까. 어느 편이든 인간애가 느껴진다. 노골적으로 고난이 끝나는 시간을 정해 달라고 할 만큼 간절한 마음을 담았다.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이 시를 읽기만 해도 고통이 저절로 가뿐해질 것 같은 시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그저 배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통받는 다른 이웃과 나누려고 궁리한 끝에 이런 시가 탄생하지 않았을까. 시인의 통찰력과 위트에 감탄하게 된다.

 


 

327

눈이 멀기 전에는

나도 눈이 있는

다른 사람들처럼 보고 싶었다-

다른 식으로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오늘-

하늘을 볼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면

내 몸이 너무 작아, 심장이

터져 버릴 것이다-

 

초원을- 볼 수 있고-

산들을 – 볼 수 있고-

모든 숲들을- 무한한 별들을-

정오에 내 유한한 눈으로

보듯이 볼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

 

내려오는 새의 동작을-

석양으로 물든 호박색 길을-

내가- 원할 때 볼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

그 말의 충격으로 죽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무모하게

태양을 바라보지만-

나는 영혼만 유리창에 두는 편이-

더 안전할 것 같다-(p81~82)

 



눈이 멀기 전에는 무엇이든 볼 수 있었다. 가족의 얼굴, 집안의 물건들,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와 꽃들 하늘과 구름도.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떤 일로 눈이 안 보이게 되었나 보다. 당연히 보여야 할 것들이 아무것도 안 보인다. 다른 사람들처럼 ‘다른 식으로’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냥 건성으로 보고 지나치는 게 아니라 ‘따뜻한 시선’으로 보면서 말도 건넬 수 있겠다. 사물을 관찰하며 어떤 영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 경지는 꿈도 꿀 수 없는 지금 ‘볼 수 있다는’ 말을 듣기만 해도 심장이 터져버릴 만큼 행복할 것 같다. 그만큼 간절하다. 뭔가를 잃은 후에야 우리는 그것을 절실하게 그리워한다. 그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내가 가진 것을 떠올려 보자. 생각해 보면 얼마나 감사한 일이 많은지.

 

 


421

완전히 드러나지 않는

얼굴에 매력이 넘친다-

숙녀는 그 매력이 사라질까 봐

감히 베일을 들추지 못한다-

 

망사 사이로 자세히 살핀 후-

베일을 들까 하다- 포기한다-

직접 보면- 베일 쓴 모습에

만족했던- 욕망이 사라질까 봐-(p102)

 



베일을 쓴 여인의 모습은 그 자체로 신비롭다. 감추고 싶은 비밀이 드러날까 봐 또는 수줍은 마음에 베일을 들까 말까 망설이는 것일까. 마치 거절 받을까 봐 겁나서 청혼을 주저하는 연인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요즘처럼 무례가 넘치는 시대에는 오히려 그리운 장면이다. 사람을 대할 때 한 번이라도 상대방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지녔으면 좋겠다. 베일을 쓴 숙녀가 조금 망설이고 주저하듯이 한 박자 느리게 하면 불협화음도 줄어들 것 같다.

 



677

살아 있는 것은- 힘이다-

존재- 자체가-

더 유능해지지 않아도-

충분히- 전지전능하다-

 

살아 있고- 의지만 있으면 된다!

우리가- 유한한 존재이더라도-

창조주인- 신만큼-

유능하다!(p169)

 


아무리 큰 고통의 시간을 지나는 중이라 해도 언젠가는 다 지나간다. 절망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도 결국은 끝난다. 위대한 선지자들은 항상 노래했다. 살아 있음은 축복이라고. 아무리 초라한 인생이라도 죽은 사람보다는 산 자가 낫다. 유능해지지 않더라도 살아 있다는 그 자체로 승리자다. 살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또 새로운 길이 펼쳐질 것이다. 유한한 인생이라는 걸 명심하고 주어진 삶을 힘껏 살아볼 일이다.

 

 


 

1263

책은 어떤 군함보다

우리를 먼 나라로 데려가고

질주하는 시 한 쪽은-

가장 가난한 사람도

돈 걱정 없이 이 마차를 탈 수 있다-

인간의 영혼을 태우는 마차 삯은 얼마나 싼지.(p218)

 


책을 예찬하는 문장을 만나면 늘 반갑고 설렌다. 책으로 세상 구석구석을 여행할 수 있고 좋아하는 저자와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영혼을 온전히 갈아 넣은 책 한 권으로 우리는 많은 지혜를 배운다. 리베카 솔닛이 ‘도서관은 세상으로부터 벗어난 성지이며 세상을 통치하는 지휘소’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한 권의 책이라도 아니 한 줄의 문장이라도 더 읽으려고 애써야겠다.

 

 


 

1659

명성은 곧 치울 접시에 담긴

잘 상하는 음식

손님에게 한 번만 내놓지

두 번은 내놓지 않을 음식.

 

남은 부스러기를 까마귀가 살펴보더니

비웃듯 깍깍거리며

그 음식을 지나쳐

농부의 음식 쪽으로 간다-

사람들은 그 음식을 먹고 죽는다.(p236)

 


1763

명성은 벌이다

노래하고-

침을 쏘고-

아, 날개도 가지고 있다.(p247)

 



명성에 대한 두 편의 시다. 누구나 명성을 얻기를 바란다. 성공하고 자신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 명성이 언제나 정직하게 성취한 것일까. 누군가를 착취하고 괴롭혀서 얻은 명성도 있을 것이다. 그런 명성은 주변 사람을 아프게 하는 독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벌은 같은 곳에만 머물지 않듯이 이꽃 저꽃으로 날아다닌다. 명성도 마찬가지다. 혼신의 노력으로 쌓은 명성이라도 그 사람의 품행이 방정하지 못하면 세상이 그를 끌어 내린다. 명성을 ‘곧 치울 접시에 담긴 잘 상하는 음식’이나 날아다니는 ‘벌’에 비유한 시인의 통찰력이 번뜩인다.

 



19세기 영미문학의 대표적 시인 가운데 하나인 에밀리 디킨슨은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시를 통해 인간의 내면을 깊숙이 파헤친 작가라는 평을 받는다. 사후 처음 90년 동안 알려진 그녀에 대한 대중적인 이미지는 수줍음이 많고 집 밖을 나가지 않는 여성이었다. 하지만 디킨슨을 연구한 여러 비평가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택한 재능 있는 시인으로 평가받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시 선집을 읽고 나니 전통시와 다른 독특한 리듬과 구두법이 가미된 독창적인 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인간의 내면 감정에 대한 시가 많아서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시도 많았는데 자주 소리 내어 읽어보고 음미해 보려 한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