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좋은 클래스메이트, 너의 이름은
조에린 2017/05/24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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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일반판)
- 스미노 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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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00
(스포주의)
"무슨 제목이 그래? 너무 무섭잖아."
<너의 췌장을 먹고싶어>를 읽고 있다고 친구들에게 말했더니 하나같이 돌아온 대답이다. 기괴한 제목과 달리 첫사랑처럼 아련한 책 표지를 본다면 아마 더욱 기겁할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대체 이 아련해보이는 두 남녀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에 '너의 췌장을 먹고싶어'라고 말하는 것일까? 라는 지극히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읽을수록 마치 일본 특유의 잔잔한 감성을 담은 틴에이지 로맨스 애니 혹은 영화 한편을 본 것만 같았다. 대단한 철학, 예술을 담은 책은 아닌 평범한 로맨스 소설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가 때로는 독서를 통해 평범한 진리를 마음속에 다시금 각인시키고 삶의 의미를 생각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어느정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어디 하나 닮은 점이 없는 '나'와 사쿠라는 결국 서로의 모습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게 된다. 또한 '죽음'이라는 가까우면서도 생소한 단어를 통해 삶에 있어서 신선함을 깨닫는다. 다소 흔한 소재일지 모르나 결국 우리는 이 순수한 두 남녀를 통해 다시 한번 우리 삶의 소중함을 잠시나마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토록 기다렸던 것은 '도대체 주인공의 이름은 무엇인가'였다. 주인공 '나'의 이름이 언급될 듯한 장면만 나오면 작가는 약간의 떡밥만 뿌린 채 교묘하게 그것을 피해가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결국 그의 이름은 이야기의 끝에 다다라서야 그의 입을 통해 알려진다.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주인공 '나'를 통해 처음으로 이름이 밝혀졌기에 더욱 그 가치가 있지 않은가 생각했다. 사쿠라를 통해 마침내 그는 자신의 삶에 타인이란 존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고,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누군가에게 주저없이 말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언제나 절친님 이라고만 부르던 사쿠라의 친구 교코를 이름으로써 불러주게 된 것 또한 같은 이치일 것이다.
왜 그들이 그토록 췌장을 먹고싶어했는지는 꽤 오랜 시간 그들의 마음으로 생각해봤을 때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옮긴이는 그 말이 단순히 사랑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하지만 난 조금 다르게 생각됐다. 사쿠라 또한 사랑이라고 말하기엔 '나'와 자신의 관계가 아주 특별하다고 했다. 우정도 사랑도 넘어선 그 무언가... 이 미묘한 관계를 그나마 가까운 단어로 표현하자면, '소울메이트'가 아닐까 싶다. 사랑과 비슷하지만 사랑은 언젠가 끝이 올지도 모르는 반면, 소울메이트는 그보다 영원에 가깝다. 한줌 재처럼 사라지는 존재가 되기는 싫어 화장 대신 차라리 자신이 먹혔으면 좋겠다고, 특히 '나'에게 자신의 췌장을 먹어주지 않겠냐는 다소 황당하게 들릴법한 말을 하는 사쿠라. 누군가의 신체를 먹으면 그 사람의 영혼이 깃든다는 말처럼, 그녀는 자신을 영원히 기억해줄 사람으로 '나'를 선택한 것이다. 또한 그녀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나'는 사쿠라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깨닫고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라고 문자를 보낸다. 결국 '나'에게 있어서 사쿠라는, 타인과의 관계를 거부하여 우정도 사랑도 처음 배우게 된 주인공이
누군가의 영혼이 자신에게 깃들도록, 즉 처음으로 마음을 여는 것을 직접 선택하게 만든 대단한 존재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마침내 서로 '췌장을 먹고싶다'고 말한
두 남녀의 모습에서 '나'와 사쿠라는 사랑이라는 정의를 초월한 소울메이트의 영역까지 도달한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생각지도 못한 사쿠라의 죽음이 이른바 '눈물짜내기'를 위해 억지로, 갑작스럽게 등장하지 않았냐는 것이었다. 이를 제외하고는 영화 한 편을 감상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기에 부담없는 책이다. 췌장을 먹고싶다는 기묘한 제목과 더불어 '사이좋은 클래스메이트'가 어떻게 '이름'을 갖게 되는지의 과정까지 눈여겨 본다면 제법 흥미로운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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