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무엇이 부족할까, 무엇이 빠져있을까를 심각히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오래된 고민이고 지금도 여전한 고민이지만 그래도 점점 나는 나 자신과 조화롭게 타협해가고 있는 것 같다. 결핍과 관련된 옛이야기가 있는데, 그림책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반쪽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그림책은 안 본 아이가 드물 것 같다. 무려 1997년에 발표되어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다. 이야기와 그림이 찰떡궁합이고,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그림은 그림대로 옛이야기의 반복적 운율을 참 잘 살려냈다. 재치 있는 글맛, 흥미로운 장면 구성이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전혀 낡은 느낌이 없고 오히려 현대적이기까지 하다.
주인공 반쪽이는 이름 그대로 반쪽 인간인데, 입도 코도 눈도 귀도 팔도 다리도 모두 하나씩밖에 없다. 이렇게 된 이유는 엄마의 실수 때문이랄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한계 때문일 수도, 불가항력이었다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자신이 벌인 일을 끝까지 매조지 못한 신령님의 게으름을 탓해도 좋으리라.
옛날 깊은 산골에 어떤 아주머니가 늙도록 자식이 없어서 신령님께 지극정성으로 빌었더니, 뒤뜰 우물에 잉어 세 마리를 내려줄 테니 구워 먹으라고 신령님이 알려주신다. 아주머니기 이튿날 눈을 뜨자마자 우물가로 갔더니 정말 우물에 큰 잉어 세 마리가 헤엄치고 있는 게 아닌가!
아주머니는 신령님의 말대로 잉어를 구워서 먹었는데, 두 마리 반을 먹고 배가 불러서 잠깐 쉬는 사이에 고양이가 남은 반쪽을 한입에 날름 먹어버렸다. 아주머니는 성의가 없지 않았다. 한 마리는 한입에 꿀꺽 삼키고 또 한 마리는 꼭꼭 씹어 먹었으며 마지막 한 마리는 배가 부른대도 '꾸역꾸역' 먹으며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반쪽을 남겼던 까닭은 아주머니가 신령님을 무시해서도 아니고, 불성실해서도, 교만해서도 아니었다. 다만 위장의 용량이 세 마리의 잉어를 모두 감당해 낼 수 없었을 뿐이다.
아무튼 얼마 뒤에 아주머니는 아들 셋을 낳았는데 마지막 잉어를 반쪽만 먹은 탓에 셋째 아들이 그만 반쪽 인간이 되었다. 아들들은 무럭무럭 자랐고 어느덧 첫째와 둘째 아들이 과거를 보러 가게 되는데, 형들은 반쪽이가 따라오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형들은 반쪽이랑 같이 가기 싫었대.
사람들이 놀릴 테니 말이야."
그래서 반쪽이를 큰 바위에 묶고 큰 나무에 묶어서 따라오지 못하게 했는데, 그때마다 반쪽이는 바위를 번쩍 들어서 집 마당에 쿵 내려놓고 나무도 쑥 뽑아서 집 마당에 털썩 내려놓았다. 반쪽이는 힘이 장사였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따라오는 동생에게 약이 오른 형들은 반쪽이를 밧줄로 꽁꽁 묶어 호랑이가 나오는 깊은 산속에 던져버렸고, 당연히 반쪽이는 밧줄을 툭툭 끊어내고 호랑이를 다섯 마리나 잡았다.
반쪽이는 호랑이 가죽을 벗겨서 집에 돌아가다가 그것을 탐내는 부잣집 영감을 만났고, 영감은 반쪽이에게 호랑이 가죽과 자기 딸을 내기로 걸고 장기 세 판을 두자고 했다. 반쪽이가 장기에서 이기자 영감은 딸을 못 주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그럼 내가 오늘 밤 (영감님 딸을) 업어 갈 테요."
영감네 집에서는 딸을 지키려고 야단이 났는데 반쪽이는 그날 밤이 지나고 다음 날 밤이 지나도 찾아오지 않았다. 세 번째 밤이 됐을 때는 모두 지쳐서 쿨쿨 잠이 들었다. 반쪽이는 다 계획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떡시루를 씌우고 상투를 서로 묶고 북이랑 꽹과리를 손에 잡아매고 영감 수염에 유황을 바른 다음, 딸 방에 벼룩을 술술 뿌려서 딸이 따가워하며 방에서 뛰어나왔을 때 딸을 냉큼 업고 달아나며 냅다 소리를 지른 것이다.
"반쪽이가 영감 딸 업어 간다."
고함소리에 모두 잠을 화다닥 깼는데, 유황을 바른 영감 수염에는 불이 붙었고 사람들의 상투는 묶였고 머리에는 떡시루를 썼고 손에서는 북 꽹과리가 둥둥 꽹꽹 정신없이 울렸다는 얘기. 반쪽이는 영감 딸을 색시로 삼아 호호백발이 되도록 잘 먹고 잘 살았다.
반쪽이 이야기는 재미로 읽어도 충분하다. 아이들은 무조건 이 이야기를 좋아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뭔가 크게 결핍된 주인공에게 아이들은 끌리게 마련이다. 반쪽이는 게다가 제일 어린 막내이기까지 하다. 아이들은 그저 천진하기만 하고 세상 걱정거리가 없어 보이지만 막상 아이들도 그렇게 느낄까? 아이들은 하지 못하고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다. 이 큰 세상에 방금 온 어린아이들은 모든 게 모르는 것투성이고 모든 게 서툴다. 워낙 쑥쑥 자라니 아이들의 반년이나 일 년은 어른들 세계에서 이삼 십 년을 맞먹는 것 같다. 그래서 형누나들에게도 열등감을 심하게 느끼게 된다.
이 때문에 아이들이 알게 모르게 속에 감추고 있을 무력감을 위로하고 힘을 불어넣어 주는 주인공이 필요해진다. 반쪽이 이야기는 심리적인 결핍감을 신체적인 결핍으로 보여준다. 입도 눈도 팔도 다리도 하나씩밖에 없는 반쪽이. 그런데 이 반쪽이가 힘도 장사고 꾀도 많고 호호백발이 되도록 잘 먹고 잘 살았다니 얼마나 든든하고 안심이 되는가!
그런데 결핍은 반쪽이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이야기 속 아주머니에게는 남편이 없다. 그러니까 반쪽이는 아버지 없는 자식이다. 아주머니는 신령님이 점지해 주신 덕분에 아들을 셋이나 얻는다. 전해져 내려오는 영웅담을 보면 평범하게 태어나는 경우가 드물어서, 반쪽이의 영웅성을 강조하려고 평범한 남자 대신 신령님이 등장했는지 모르겠다. 우리 옛이야기에서 완전수를 상징하는 3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을 보면-잉어 세 마리, 아들 삼 형제, 셋째 아들, 바위와 나무와 호랑이로 이어지는 형들과의 세 번의 힘대결-남편 혹은 아버지의 부재를 그렇게 해석해도 완전히 엉뚱하지는 않을 것 같다.
흥미로운 건, 반쪽이는 바위와 나무를 계속 늙은 어머니에게 갖다 주는데 이야기의 결말은 어리고 예쁜 색시와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마무리된다는 점이다. 반쪽이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어머니에게 의지하는 어리고 부족한 아이에서 사회적으로 완전한 한 사람 몫을 해내는 어른으로. 어머니는 그 단계에서 아이의 무대에서 퇴장해 주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반쪽이는 어른이 되었어도 여전히 반쪽이다. 눈과 코와 입고 팔다리가 제대로 채워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이 이 옛이야기가 진짜로 하려는 말이 아닐까 싶다. 사람은 어떻게 생겼든,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온전하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닐지. 너는 그 자체로 온전한 존재야, 하고 옛이야기는 우리에게 속삭인다.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알아들으라고 너무 세세히 설명하지는 않으면서 말이다. 아마도 아이들은 은연중에 다 알아들을 것만 같다. 이야기를 읽으며 유쾌하게 웃고 나면 마음이 훈훈해지는데 아마도 그 순간, 잠시, 나도 나의 온전함을 살짝 경험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금의 나에게는 무엇이 결핍되었을까? 예전에는 많은 게 부족하다고 느꼈고 그것 때문에 열등감이 심했다. 결핍을 채우려고 무진 애를 쓰기도 했지만 나의 결함을 보정하고 채우려고 할수록 부족한 구멍은 더 커지는 것만 같았다.
또 달리 보자면, 결핍감은 사람을 앞으로 전진시키는 힘이 되는지도 모른다. 결핍감을 심하게 느끼지 않고 부족한 나 자신과 원만하게 타협한 것 같은 지금은 예전처럼 추진력이 없는 걸 보면.
결핍이 있는 사람은 당연히 남을 부러워할 텐데, 이걸 질투심이라고 한다면, 과거를 보러 가는 형들을 따라가는 반쪽이가 바위와 나무를 번쩍번쩍 드는 건 어쩌면 질투의 힘 때문은 아닐까 의심도 든다. 질투의 힘으로 죽죽 앞으로 나아가서 결국에는 색시를 얻게 되는 것일지도. 그리고 그때 가서야 비로소 자기 자신이 제대로 보이는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온전한 존재였구나, 하고. 그래서 영원히 반쪽이로 남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아무튼 시인 기형도도 바로 이 질투의 힘으로 멋진 시를 썼으니 결핍과 질투는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결핍과 그것으로 인한 질투는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성장의 걸음을 추동시키는, 인간 내면의 중요한 동력일지 모르겠다.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