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교도가 벌인 학살과 만행이 이렇게 공공연히 기록될 거라고, 신도들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무하마드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계시를 들었든,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는 자신의 욕망에 따라 경전을 제작했고, 인간 본연의 탐욕을 감춘 지하드(성전)의 뜻에 따라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정복하고, 약탈하며, 노예로 삼았다. 그 과정에서 벌인 잔혹한 처형과 비인간적인 행위들을 여기에 낱낱이 고하기도 어렵다. 책장 어디를 펼쳐도 그들이 벌인 실태가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없다. 수백 년을 관통하는 전쟁사에서 한결같은 태도로 패자들을 대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이슬람의 진실을 엿본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갈등은 말로 차마 담아낼 수 없다. 수많은 전쟁과 공격 속에서 교리의 근본은 잊히고, 폭력과 복수의 굴레만 남았다. 책이 간행될 즈음 개시된 이란-미국 전쟁도 넓게 보면 이슬람권과 기독교권의 대립이니, 이들의 잔혹한 전쟁사는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이 전쟁의 끝은 어디인가? 기독교도인 나는 최후의 승리를 확신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수히 죽어 나간 영혼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참으로 쓰리다. 서로 다른 종교를 가졌다는 이유로 총칼을 겨누어야 하는 현실이, 사랑의 가치가 전쟁 앞에서 참혹하게 짓밟히는 상황을 견디기 힘들다. 나는 편의 속에서 성도들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하는데, 이것조차 온전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기독교-이슬람 전쟁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무슬림의 잔혹함이 지나치게 강조되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십자군 전쟁에 대한 오해가 풀리기는 했으나, 그 원정을 완벽히 옹호하고 싶지는 않다. 기독교도들을 사람 이하의 존재로 취급하는 무슬림 전사들에 대한 원망이 들기도 하지만, 그 감정을 현재의 이슬람교도에게 이입하고 싶지도 않다. 그들은 분명히 다른 존재이고, 구원을 받아야 마땅한 자들이다. 선조들이 어떠한 잘못을 저질렀든, 심판은 그들의 몫이고, 지금이라도 회심하고 평화를 외치면 좋겠다. 물론 반대편에 서 있는 기독교 국가들도 무력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먼저겠지만.
나에게는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임을 다시 한 번 알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민족 역시 내전을 겪었고, 그 때의 참상을 익히 들어 왔지만, 이념과 종교는 때로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일도 허락해 버리고 만다. 다르다는 이유로 죽어야 하고, 타협하지 않았기에 고문 당해야 했다.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권한이 있겠는가? 전쟁에 승자가 없다는 말이 납득이 간다. 패자는 주검이 되고, 승자는 인간성을 상실한다. 처음에는 지하드에 참여한 전사들도 의심 반, 신념 반으로 시작했겠지만, 전투가 반복될수록 그들의 마음은 왜곡된 두려움으로 물들었으리라. 이교도로 낙인 찍히면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다는 그 태도가 타인을 철저하게 파괴할 수 있음을 잊어 버린다. 인간성을 잃은 자들은 폭력과 범죄를 반복할 뿐이다. 그것이 죄에 묶인 인간의 종말이다.
한편으로, 거대한 희망이 되는 것은 이 무수한 역경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았다는 증언이다. 개종을 하지 않으면 숱한 차별을 견뎌야 했으나, 같은 지역에서 1300년 동안 믿음을 지킨 기독교도들이 있었다. 십자군 원정에 앞장 선 이들은 잃을 것이 없어서, 복수심에 불타서 떠난 자들이 아니라, 전쟁터의 사람들과 전혀 연식도 없던 영주들이었다. 잃을 것이 가장 많은 자들이 신과 자신에 대한 이웃의 사랑에 이끌려 사지로 향했다. 또한, 수 세기 동안 기독교도들에게 온갖 잔혹한 방식으로 처형하고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준 이슬람교도에 대해, 그들의 복수는 자비롭다. 원수와 똑같은 방식의 만행을 반복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분량의 대부분을 이슬람교도가 예수님을 모욕하기 위해 기독교도인들을 탄압하는 데에 할애된 이 책을 읽는 내내, 끝내 그리스도가 승리하심을 더욱 확신했다. 아무리 그리스도인들을 짓누른다 한들, 폭력과 만행으로 그들의 인간성을 앗아간다 한들, 예수님의 사랑은 끝내 이어진다. 그리고 앞으로도 용서의 물결은 계속될 것이다. 그제야 이 읽고 싶지 않았던 역사가 일어났던 이유를 조금은 납득한다. 예수님을 부인하면 부인할수록, 그분의 거룩함과 신실함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역사는 있는 그대로 증언한다. 역사가의 시선에 따라 각도가 달라질언정,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 남은 자의 몫은 기억할 수 있는 만큼 기억하는 것이다. 패배가 확실하게 되던 순간까지 주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믿음의 용사들을 기억한다. 성경에서처럼 기적적인 승리는 없었지만, 그 처절한 학살의 뒤에서 참된 생명의 꽃이 피어났다. 그들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고, 현대 세계의 약소한 균형을 이끌어 냈다. 이 지긋지긋한 전쟁사를 끝낼 방법은 후손에게 달려 있다. 비극적인 역사를 반복할 텐가, 아니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될 텐가? 정답은 정해져 있고, 거기까지의 길은 멀어 보인다. 아예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길이 옳은 길이고, 유일한 정답이기에 나는 내 몸이 갈라질언정 용서를 택하리라. 내 삶이 부서지더라도 사랑을 전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