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언제나 장면으로 시작된다. 작가 자신의 머릿속에 재구성된 이미지든, 타인이 만든 예술 작품에서 비롯되었든, 그 장면에 대한 묘사가 소설의 출발점이 된다. 물론 그것이 언제나 작품의 시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누군가는 결말 부분을 염두에 두고 플롯을 창작하며, 누군가는 중간 지점을 기준으로 양쪽에 살을 붙인다. 확실한 것은 첫 장면을 완벽하게 구상하고 출발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들 모두 이 계획이 얼마든지 변동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고, 미지의 세계를 향한 여정을 이어 간다. 종착역에 이르고 나서야 한숨을 돌리며 그간의 일탈을 회고할 수 있게 된다.
『해리스 버딕과 열네 가지 미스터리』는 해리스 버딕이 남긴 열네 점의 기이한 그림에 대해 작가 열네 명이 의기투합하여 지은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이다. "한 장면을 두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지어내라"는 명령은 모든 독자를 흥분케 하는 과제이다. '딕싯(Dixit)'이라는 보드게임이 생각나는, 그야말로 '창작 게임'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교육용으로 사용한다면, 아무래도 각자 이야기를 지어 낸 다음, 이 훌륭한 작가들이 만든 가상의 세계와 어떤 점이 비슷하고 다른지 확인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무엇도 정답이 될 수 없기에 모든 상상이 가치 있다. 그런 점에서 문학은 모든 것을 줄 지어 세우는 현대 문명의 필연에 정면으로 맞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이야기가 똑같이 기억에 남는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독자에게는 부족한 완성도나 설득력이 거슬리기도 하고, 혹자에게는 그저 흥미롭지 않기도 할 것이다. 이것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분량과 소재가 천차만별인 만큼, 마음에 드는 작품도 다를 것이다. 다섯 개만 콕 집어 보자면, 「7월의 이상한 하루」, 「하프」, 「일곱 개의 의자」, 「토리 선장」, 그리고 「메이플 거리의 집」이다. 이 중에서도 가장 완성도 있는 작품은 아무래도 스티븐 킹이 지은 마지막 작품이리라.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을 고르라고 하면, 「하프」를 말할 것이다. 보통 작품에서 두 명의 주인공이 병렬로 배치되면, 그들이 어떻게든 만나서 서로를 치유하는 서사가 펼쳐진다. 그런데 이 단편에서는 각자의 사투가 뜻하지 않게 서로를 돕는 일이 벌어진다. 서로를 모른 채 저주를 풀고, 마음을 달래는 결말이 어쩐지 뭉클했다. 우리네 삶도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적들로 가득하지 않은가? 각자가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그 하루를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지 않은가?
대개의 작품이 환상적이고 미스터리한 소재를 취하고 있지만, 메시지는 거의 유사하다. 상처 받은 자들을 치유하는 서사가 그것이다. 「토리 선장」은 사고로 죽은 선장이 힘겹게 살아 가는 폴의 가게를 찾아와 도움을 주고 위로한다. 「메이플 거리의 집」은 집 안에서 자라는 신비한 금속이라는, 코스믹 호러를 연상시키는 소재를 취하지만, 하고 싶었던 말은 새아버지로 인해 고통 받는 가정의 구제였다. 해리스 버딕이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도, 자신이 신기한 그림을 편집자에게 제공한 이유는, 그것을 통하여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게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의 유산이 그를 알지 못하는 어린 독자에게 향한다면, 그래서 그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을까?
그러므로 영감의 출발점은 하나의 장면일지라도, 그것을 종착역까지 이끄는 힘은 타인을 향한 마음이다. 예술이란 본질적으로 이기심에서 출발하여 이타심으로 끝나야 한다. 자기 안에 갇혀 있는 자는 예술가의 자격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희노애락을 표현하기 위해 연습할 수 있으나,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끝없는 자기 복제를 반복할 뿐이다. 마음 밑바닥에 있는 감정을 애써 끄집어내기보다, 시선을 바깥으로 돌리면 무수히 많은 고통이 보인다. 따뜻한 마음을 품고 차가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예술의 궁극적인 방향이다. 아무리 그럴 듯한 메시지를 담아도, 그 안에 자기의 유익을 향한 탐욕이 가득하다면, 그것은 예술을 빙자한 영업에 불과하다. 영혼은 본질적으로 광활하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아득히 벗어나 있다. 예술이 영혼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단서라면, 얼마든지 향유할 가치가 있다. 다만 무엇인가를 누릴 수록 마음이 메말라 간다면, 그것은 일종의 경고이다. 인생의 모든 요소는 그것을 살아 내는 자를 풍성하게 만들고, 깊어지게 만든다. 그러한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면, 글쎄, 그 요소는 삶에서 그다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