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잘 알려진 책이고 제목도 독특해서 언젠가 읽어 보아야지 하다가 마침내 빠른 속도로 독파했다. 논픽션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딱딱하지 않고 잘 읽힌다. 그러면서도 환자들이 모두 실제로 그 일을 겪었고, 통과하는 중임을 알았을 때 신비로움을 느낀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인간 군상이 있고 그 삶이 하나하나 다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24가지 사례에 다소 편차가 있지만, 저자는 애정을 가지고 이 환자들을 대하고 치료하려 한다. 뒷이야기에서는 그들이 어떻게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 보여줌으로써 독자도 그 치유(또는 동반)의 여정을 목격할 수 있게 한다.
인상 깊은 사례 세 가지만 꼽으라고 하면, 폭음으로 방금 전의 일을 모조리 기억하지 못하는 지미, 고유 감각을 잃어버린 크리스티너, 자폐증을 가진 예술가 호세이다. 지미는 1945년 이후의 기억을 모두 상실했는데, 여기서 올리버 색스는 "연속성을 잃어버린 존재를 과연 인간으로 볼 수 있는가?"라는 실존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는 내가 이러한 상태에 놓이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생각했다. 과거에만 갇혀 있는 사람은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할까? 확실한 건 음주가 건강에 정말 해롭다는 사실,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해로운 물질은 입에 대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이었다.
제육감, 즉 자신의 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인지하는 감각이 없다면, 실로 내 몸이 사라진 기분이리라. 물론 나는 그것이 어떤 감각인지 헤아릴 수 없다. 예컨대, 키보드를 입력하는 나의 손의 감각이 없다면 눈앞에서 무엇인가를 두드리는 괴상한 물체에 당혹감을 느낄 것이다. 애초에 타자를 치라는 명령이 입력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으리라. 걷는 것도 의식하지 못해서 자신이 공중에 둥둥 떠다닌다고 생각할까? 발칙한 상상이 떠오르기는 하지만, 이것을 어느 날 갑자기 겪은 크리스티너는 얼마나 당황했을까? 그러나 그것에 적응하려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이 참 대단하다.
보통의 정신분열증 환자는 외부의 자극에 극도로 예민하지만, 자폐증 환자는 정반대이다. 마치 바다 한가운데의 섬처럼 외부의 자극에 대한 반응이 없다. 오직 자신의 세계 안에 놓여 있다. 자폐증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비교적 익숙하지만, 그것의 실상은 처음 본다. 호세에게 뛰어난 예술적 감각이 있고, 그것을 표현하는 일이 참으로 놀랍다. 저자가 가지고 있던 편견, 즉 자폐증 환자에게 예술성이 없으리라는 선입견을 나 역시 보유했고, 호세를 통해 어느 정도 완화된 듯하다.
올리버 색스는 자신의 연구 성과를 자랑하려고, 또는 신경학적 질병을 앓는 이들을 나열하려고 이 책을 쓰지 않았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다양한 환자들을 접하고 그들이 세상과 공존하는 법을, 조금 다를지라도 포용하는 법을 독자에게 보이기 위함이다. 그의 노력이 어떤 성취를 거두었는지는 결코 알지 못한다. 책 한 권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기도 하지만, 같은 책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시간 때우기에 불과하기도 하니까. 나에게도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상대적으로 가볍게 읽혔다. 그러나 언젠가 실제로 아픈 자들을 마주했을 때, 이 책이 생각나지 않을까? 관찰자가 아니라 동반자로, 치료의 대상이 아닌 이해의 대상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