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요지경이라는 말을 체감하는 것은 언제나 더 넓은 세상을 알게 된 이후였다. 더 큰 세계의 존재를 알게 될 때마다 나의 이해도가 참 보잘 것 없음을 느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대학교에서 사회로 나가면서 나의 인간 관계는 복잡해졌고 그들에게 증명해야 하는 것은 많아졌다. 돌이켜 보면, 왜 그렇게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면서 살아갔는지 놀랍다. 왜 그토록 모두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 받고 싶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남들과 반드시 다른 생각을 해야 한다는 강박은 어쩌면 그렇게라도 그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퀴즈쇼』의 등장인물들이 퀴즈를 맞추는 일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 정답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사회자의 물음에 순발력과 정확성을 발휘하여 정답을 맞추면, 내 손으로 피를 묻히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을 패배시킬 수 있다. 동시에 자신은 승자의 영광을 정당하게 차지한다고 스스로를 속이며 부와 명예를 취한다. 그것이 시스템을 유지하는 하나의 '쇼'라는 것을 망각하고, 그 세계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친다. 도무지 쓸모 없다고 여겨졌던 잡다한 지식과 평소에 허비했던 시간에 수집했던 정보들이 유용하게 사용되는 순간, 사람들은 전례 없는 짜릿함과 성취감을 맛본다. "내 인생에 헛된 순간은 하나도 없었구나! 나의 방황과 실패도 이렇게 결실을 맺는구나"라고 떠들고 다닌다. 그 말을 하는 순간조차도 타인의 권리를 박탈하고 있음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또는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있었던 모든 불화와 음모와 폭력을 외면한 채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작가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흔한 성과 이름인 '이'와 '민수'를 사용하여 주인공의 이름을 설정한 까닭은, 그가 겪었던 기묘한 사건들이 사실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조금 대상을 좁히자면,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한 교육과 훈련을 받고 나서도 인생의 정답을 찾지 못한 이들에게 『퀴즈쇼』의 줄거리는 달콤한 환상과 같다. 대학원을 졸업했으나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짠내 나는 고시원 생활을 하는 이민수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인터넷 채팅방에서 벌어지는 퀴즈 대결이었다. 그는 옆방 여자의 선의에 힘입어 퀴즈 프로그램 피디를 진행하는 서지원과 교제한다. 그녀는 부유하고, 여유도 많고, 사랑이 넘친다. 또한, 이춘성의 제안을 받아 약 세 달간 '회사'에서 퀴즈쇼 출전을 위한 시간을 보내며 잠깐이나마 성취감과 돈을 얻는다. 그곳을 극적으로 탈출한 후에 그는 평범하되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기로 결정한다. 옆방 여자, 서지원, 회사, 이 모든 것은 이민수의 노력보다는 순전한 우연으로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우리의 주인공은 할 수 있는 최악의 선택만 반복한다. 김영하 작가는 기회가 주어져도 그것을 잡지 못하는 청춘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려는 듯 했다.
당사자들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청춘은 정말로 바보 같다. 우리는 매일 같이 인생을 낭비하고, 후회할 결정을 내린다. 젊음은 실로 젊은이에게 주기에 아까운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정말로 완고해서, 아무리 충고를 듣고 고통을 겪어도 그 시간이 지나갈 때까지 도무지 변하지 않는다. 작가도 그 사실을 아는지, 『퀴즈쇼』에서 젊은이의 삶을 고스란히 담되 어떠한 조언이나 교훈을 이끌어낼 의도는 추호도 없다. 거듭해서 실패하는 이민수의 모습을 자화상처럼 여기고 보라는, 무언의 떠밀기만 느껴진다. 그것에 대해 젊은 독자는 두 가지 형태로 반응한다. "나는 이 사람과 달라"라는 부인 또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라는 공감 속에서, 대개는 더 쉬운 길을 고른다. 그리고 창작자의 마음을 가장 잘 대변하는 서지원을 통해, 어떤 길을 택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우리의 청춘이 어리석은 이유는 언제나 정답을 찾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는 무책임한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정답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이 정답이라고 인정해 주는 사회자가 없을 뿐이다. 정해진 답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세계는 이춘성이 구현한 불완전한 퀴즈 지옥(나는 이민수가 다녀온 소사회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답보다 이유가 중요하고, 결과보다 과정이 의미 있으며, 성공하는 법보다 실패를 극복하는 법이 삶을 살아가는 데 더욱 필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모든 청춘이 그 해답을 발견하면 좋겠지만, 고시원의 옆방 여자처럼 끝내 찾지 못한 이들도 있다. 나는 어떤 교훈도 말하고 싶지 않다. 우리가 어떻게든 인생을 살아가 주면 좋겠다. 남아 있는 기회가 있기에, 우리는 젊음을 낭비할 권리가 있다. 그 다음에 무엇이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젊음이 지나가고 나면, 알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최선을 다해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은 이렇게 해서 좀더 가난해진다. 그들은 가난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결국 더 가난해진다. 가난을 숨기기 위해 ‘남들 다 하는 것‘을 하고 그 ‘남들 다하는 것‘ 때문에 빚을 지고 빚을 갚느라 세상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다.- P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