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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프리트의 서재입니다
  • 꼬마 니콜라 (양장)
  • 르네 고시니 글
  • 29,700원 (10%1,650)
  • 2012-12-31
  • : 1,588

 『꼬마 니콜라』의 내용은 대단하지 않다. 각 에피소드에 전율을 일으키는 서사도 없고, 이야기가 남기는 교훈도 딱히 발견되지 않는다. 단지 그곳에는 어린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있다. 때로는 짖궂기도, 더러는 순수한 그들의 사소한 여정이 이 두꺼운 책을 가득 채운다. 에피소드의 길이도 그렇게 길지 않기에, 나는 일상을 살아가며 꼬마 니콜라와 그의 유쾌한 친구들이 벌이는 이야기들을 가볍게 엿볼 수 있었다. 마치 프랑스의 어딘가에 이 장난꾸러기들이 살아가고 있을 것 같았다. 글을 읽으면서 어떻게 작가는 이토록 어린아이의 마음을 잘 헤아렸을까, 라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면서 아이의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 참으로 힘들다. 어른들은 자꾸 자신의 가치관을 아이들에게 주입하려고 한다. 직업이 교사든 그렇지 않든, 친자식이든 처음 보는 아이든 어른들은 종종 아이들이 자신과 같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길 원한다. 하지만 아이에게 그것은 참 가혹한 일이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지켜낼 권리가 있다. 물론 니콜라와 친구들이 벌이는 행적이 사회적으로 또는 도덕적으로 언제나 용인되지는 않는다. 요즘 시대면 학교 폭력 등의 사유로 처벌 받을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이제는 금지된 체벌로 그 대가를 치르긴 하지나 말이다.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아이의 마음을 간직하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이다. 그들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어른들이 세운 기준과 가치관은 편향적일 때가 많으니 말이다. 아이들은 의견의 차이로 싸워도 서로의 말을 듣고 나면 고개를 끄덕인다. 중재하는 자가 나서면, 씩씩거리다가도 금새 잠잠해지곤 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서로의 생각이 다르면, 한쪽의 의견이 꺾일 때까지 도무지 굽히질 않는다. 그 양상이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한다. 타인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살아남지 못한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다.


 안타깝게도 한국에는 니콜라, 알세스트, 아냥, 외드, 조프루아와 같은 아이들이 없다. 있다 해도 금방 낙오되거나 변하고 만다. 개인의 다름을 존중해주지 않는 분위기와 성적이 '좋은 아이'의 기준이 되어버린 교육 현장에서 꼬마 니콜라의 재기발랄한 일탈은 처벌의 대상일 뿐, 그를 인정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가상의 인물이기에 너무 잣대가 느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지만, 니콜라처럼 학교에서 꼴찌를 밥 먹듯이 해도 위축되지 않고 친구들과 놀러다니고 사고를 치는 아이들을 우리나라에서 용인할까? 부모든 교사든 어떠한 조치를 취해서 친구들과 분리하거나 그 아이를 '치료'하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니콜라보다 어린 나이부터 아이들은 교육 시스템 속에서 획일하게 양산된다. '공부'라고 불리는 입시 제도에 대부분 순응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니콜라가 학급 친구들과 벌이는 말썽들과 좌충우돌한 여름방학의 시간들은 공부가 아니란 말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아이의 마음을 간직한 채로 눈앞의 현실을 살아내는 모든 과정이 곧 공부다. 시간이 지나서야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다시는 그렇게 살 수 없음을 스스로 깨닫고 돌아서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아이들은 그 깨달음을 얻기도 전에 한 가지 길로 걸어갈 것을 강요받았기에, 마침내 부모의 간섭에 벗어났을 때 다시 그 미숙한 행동을 반복한다. 입시를 위한 공부는 할 줄 알았지만,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할지 배우지 못했다. 성공하라는 강요와 성공하는 방법에 대한 이해도는 높지만, 어떻게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지 배우지 못했고, 가난하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위로를 받지 못했다. 물론 아이들의 잘못은 아니다. 그렇다고 부모 세대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니콜라와 같이 순수했던 마음을 잃어버렸고, 그 시간을 돌려받지 못할 만큼 험난하게 발전해 온 시대의 결과이리라. 대한민국의 처참한 교육 현실에 대해 통탄하지만, 이것조차 최선의 결과일 수 있었다. 그 치열한 교육열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역사의 아이러니에 도달한다. 지금의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아이의 마음을 간직하는 방법이다. 그 마음은 스스로 되찾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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