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은 자라나면서 참 많은 시들을 읽는다. 국어 시간과 문제집에서, 시험장에서 생전 처음 보는 시들을 접한다. 그러나 졸업을 하고 나서 그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시를 말하라고 하면 대개 우물쭈물한다. 그리고 그 시를 외워보라고 하면, 대부분 외우지 못한다. 그들에게 시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었기에, 설령 암기했더라도 시험을 보고 나면 마음속에서 내보내기 때문이다. 문학은 아이들에게 힘을 주는 대신 짐이 되었고 그렇기에 그들은 입시 제도를 통과하고 난 뒤 문학을 저주하며 산다.
류시화 시인은 "시를 잃는다면 우리는 언어의 거의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당신이 단 한 편의 시라도 외운다면 그것은 어느 순간에라도 당신을 순수한 존재의 세계로 데려다 줄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나 역시 문학을 사랑한다고 자부하지만, 자신 있게 외울 수 있는 시가 하나도 없음에 되려 부끄러움을 느낀다. 단지 소설을 더 사랑한다는 이유로, 시가 가진 힘을 외면하지는 않았나 돌아본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는 <늙은 수부의 노래>(The Rime of the Ancient Mariner)인데, 분량이 너무 길어서 외우지 못하는 게 흠이다. 나도 아이들에게 시 한 편을 꼭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조언해야겠다.
<우리 시대의 역설>에 대해 생각한다. 류시화 시인이 엮은 이 시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이다. 현대 사회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졌다.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줄어들었다"로 시작하는 이 시는 현재 진행형이다. 여전히 사람들이 글귀를 인터넷에 추가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시대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는 증거이고, 실제로 문제가 많은 것이 맞다. 그 원인을 찾는 것은 쉽지야 않겠지만, 교육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내가 느끼기로는, 교육이 주요한 원인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시를 예로 들어보면 그렇다. 시험 범위에 포함된 시는 아이들이 아주 달달 외운다. 어떤 시인이 어떤 상황에서 썼고, 어떤 기법을 사용했으며 각 연에 있는 상징과 운율을 철저히 해부한다. 그렇다면 시험 범위 밖에 있는 시는 어떨까?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심지어 그렇게 발골에 가까운 작업을 거친 시는 시험 기간이 끝나면 두 번 다시 쳐다보지 않는다. 다른 모든 과목이 이런 식이다. 시험에 포함되는, 즉 나에게 이득이 되는 것들은 반드시 취해야 한다. 그리고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은 철저히 외면한다. 교육 제도는, 입시 제도는 그것이 옳다고 가르친다. "네가 성공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법칙을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게 습득한다. 그렇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법을 잊는다.
교육부터 바뀌어야 한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함을, 정답보다는 이유를 찾는 시선을, 성공하는 노하우보다는 실패를 극복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수십 편의 작품을, 수백 개의 영단어를 외우게 하는 것보다는 한 편의 시를 가슴에 새기게 하고, 한 편의 영어 소설을 낭독하게 해야 한다. 이해 관계에 따라 사람과의 만남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지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신의 꿈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귀하게 생각하는 만큼 타인도 귀중하다는 인식을 품도록 해야 한다. 그래, 모든 교사는 학생들이 잘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현실 앞에서 좌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로는 외부적인 요소가 때로는 자신이 연약함이 아이들을 온전히 품는 것을 가로막는다.
그렇다면 모든 어른들에게 당부한다. 아이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려면 우리가 먼저 좋은 어른이 될 수밖에 없다. 좋은 어른은 좋은 어른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법이다. 아이들에게 "실패해도 괜찮아"라고 다독이려면, 우리 안에 있는 성공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가난해도 좋아"라고 말하려면, 부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다. "네가 실패의 무게감과 가난의 고통을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떠드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결코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한다. 당신이 어떤 인생을 살았든, 미안하지만 그건 내가 느끼는 고통에 비할 바 못 된다.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무리 내 고통에 대해 토로해도, 코웃음 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지닌 것을 잃어버려도 괜찮다. 다만, 끝까지 살아 있으면 된다.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으면 된다. 인류의 삶은 수없이 많은 이기심 속에서 이타심을 간직해 온 소수의 이들에 의해 보존되었다. 이 시대가 지속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 역시 그것이다. 나는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세상을 가르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