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거다. 펜을 들어 첫 문장을 쓰기까지, 아니 생존자들을 만나 아픈 기억을 되뇌이기까지, 비극에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이겨내기까지. 소설은 그 허구성 때문에 종종 평가절하되기도 하지만, 차라리 『소년이 온다』는 이 모든 것이 꿈이었길 바라게 만든다. 다름이 아니라, 권력이 휩쓸고 간 자리가 너무나 황폐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궁극적인 욕망은 지배욕이다. 상대의 삶과 죽음을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그것이 초래한 수많은 역사적 비극에도 불구하고 여실히 그 힘을 떨치고 있다. 권력은 종종 그 지배욕이 당연한 것인양 착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권력이 행사된 자리에는 생명도, 인간성도, 희망도 찾아보기 힘들다. 소년의 이름과 꿈과 권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생존자들의 증언으로 차곡차곡 완성된 이 소설의 페이지마다 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해야 했을까?"라고 질문했다. 내국인에게 반동분자라는 누명을 씌우고, 얼마든지 잔인하게 학살해도 된다는 허가를 내렸다니, 그리고 자신의 승진과 돈을 위해 그것을 기꺼이 수락했다니, 원하는 자백을 듣기까지 수감자들의 신체와 정신을 마음대로 유린하다니, 어떻게 같은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이럴 수 있을까? 누가 그들에게 이러한 권리를 부여한 것인가? 그 수많은 질문에 위정자들은 "권력"이라고 대답하고, 억울하면 힘을 기르라고 나를 도발한다. 그렇게 세상에 부조리가 판친다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다면, 네가 힘을 길러서 그것을 바꿔 보라고 다그친다.
그러나 역사는 알고 있다. 그날 광주 사람들이 강했던 이유는 한 명 한 명이 연약했기 때문임을 말이다. 진정한 힘은 약자에게 있다. 물론 고문과 학살에 희생된 이들과 그들의 유가족은 무슨 말이냐고 따질지도 모르겠다. 그때 우리에게 충분한 힘이 있었다면, 아니 애초에 전두환의 집권과 비상계엄을 무력화할 수 있는 강력한 권력이 있었다면,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그 체제가 올바르게 작동했더라면 5·18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작점을 더듬어 가보자. 개인은 세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아무리 힘을 기른다 한들, 어떤 노력을 한다고 해도 몰아치는 파도의 방향을 바꿀 수는 없다. 그날 광주 시민들이 보였던 작은 용기는 거대한 권력에 휩쓸렸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그 자리에는 황폐함만 남아 있었다. 밝혀지지 않는 진실에 통곡하고, 찾아내지 못한 유골들에 애통해 했다.
그러나 그들의 이름이 밝혀짐에 따라 변화는 시작된다. 동호, 정대, 은숙, 선주, 진수, 성희....... 권력이 군홧발과 탱크로 짓밟았던 사람들의 몸에서 영혼이 솟아난다. 그 어떤 무기와 억압으로도 끊어낼 수 없는 순결한 정신이 다른 이들의 마음으로 이전된다. 그곳에 있었던 어떤 이들의 희생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또 다시 수많은 이들이 고통과 죽음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했다. 그 대가로 어떤 이들은 사랑하는 이들을 잃거나 영구적인 장애를 얻기도 했지만, 그들 대부분은 시간을 돌렸을 때 몇 번이라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 대답하리라. 고결한 양심은 그런 것이니까. 자신의 안위와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사는 사람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나의 손해와 실패를 무릅쓰고 진실을 밝히려는 마음은, 인간의 역사를 피로 얼룩진 지배욕에 맞서온 강력한 힘이니까.
역사는 늘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말해야 할 것은 말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 찰나의 지배욕을 맛보기 위해 고결한 양심을 버린 이들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영원한 악인으로 기록된다. 권력자들은 자신의 힘이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했지만, 역사는 어떤 이도 그것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증언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끊임없이 "억울하면 힘을 가져야 한다"고 설득해도, "나는 여전히, 앞으로도 약자의 편에 서겠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권력의 밑바닥으로 갈수록, 나의 욕망을 포기할 수록 우리는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곳에는 어떠한 사상도 설명하지 못한 신비한 힘이 있다. 권력자들이 그토록 없애고자 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마음이 있다. 나는 그 힘을 믿고 나아가려 한다. 권력이 휩쓸고 간 자리는 황폐하지만, 그 자리에 다시 꽃을 피우는 방법을 우리는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