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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프리트의 서재입니다
  • 내가 살았던 집
  • 은희경 외
  • 7,200원 (10%400)
  • 2000-11-01
  • : 323

 소설가에게는 두 가지 눈이 있나 보다. 하나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려 하는 냉정한 시선이다. 거기에는 꽤 큰 대가가 따르는데, 우선 많은 적이 생긴다. 진실을 밝히거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은 늘 있기 마련이다. 그들에게 소설가란 '요란 떠는' 족속에 다름 아니리라. 하지만 소설가는 모두가 아니라고 하는 길을 기꺼이 걸어가기에 그러한 시선에 잠시 주눅이 들지라도 멈추지는 않는다. 다른 하나는 상처 받은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하려는 따뜻한 시선이다. 소설가는 어둠 속에 있는 자들에게 한 줄기 빛이라도 줄 수 있다면, 자신의 인생이 다치는 것쯤이야 얼마든지 감수한다. 그때 그들은 묻는다. "당신은 나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들인데, 왜 이렇게까지 하시나요?" 소설가는 대답한다. "나도 한때 당신이었습니다."


 모든 수상작이 선명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대상을 받은 은희경 작가의 『내가 살았던 집』이 초반부에 배치되었기 때문에 몇몇 특정한 표현을 제외하면 서사가 뚜렷하지 않다. 그렇다고 후반부 작품이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다고 할 수는 없다. 아무래도 인상 깊었던 것은 「자미원에는 어떻게 가는가」가 아닐까 싶다. 베트남 전쟁에서 희생된 자들의 혼을 달래기 위해 무당 은혜와 닥터 정, 참전용사 박 등이 현지에 방문하면서 겪은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는 독자를 베트남 땅에 올려놓고, 거기서 있었던 역사적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킨다. 새삼스럽지만, 2000년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작품을 떠올리게 했다. 비록 단편이지만, 아직까지 남아 있는 베트남 전쟁의 상흔과 후유증을 고스란히 현대에 옮겨 놓는 데에 성공한다.


 또 하나 기억나는 단편은 「삭매와 자미」이다. 중국 역사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당혹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리고 몇몇 수사적인 표현이 추가되었을 뿐, 역사와 크게 달라진 서사도 없다.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용맹한 장군 삭매와 그가 사랑했던 자미, 굽이치는 강을 달래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여인을 바치라는 말을 애써 무시하고 급류에 활을 쏘고 돌격을 명령하는 어리석음, 사랑에 눈이 멀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비극을 초래한 역사가 거기에 담겨 있다. 아마 작가는 자신의 개인적인 욕망을 집단보다 우선시 여겨 그 공동체를 위기에 몰아넣는, 또는 파멸 시키는 우화를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약 25년 전에 쓰인 작품이지만, 현대의 지도자들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 아닐까 싶다. 사리사욕보다는 공공의 안녕을 우선시하는 마음 말이다. 안타깝게도 그것이 지켜지는 일이 상당히 드물지만.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단편은 「사심」이다. 한 여배우의 회고록 형식으로 쓰인 이 작품은 불우한 가정 환경에 성장한 주인공에게 그 상처가 어떻게 발현되고, 이후의 결혼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다루고 있다. 주인공의 내면에 존재하는 감각들이 끊임없이 그녀를 찾아와 괴롭게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무관하게 그녀가 느끼는 바는 조금 다르다. 물론 그 안에 자기연민과 자기혐오를 넘나드는 인식이 잠재한 것은 분명하다. 좋은 어른에게 양육되지 못한, 사랑에 결핍을 느끼고 있는 주인공이 이후에 어떤 감정적인 어려움을 겪는지 보면서, "아이들에게는 좋은 어른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실히 느낀다.


 이외의 작품들도 있었지만, 전반적인 감상평은 비교적 오래된 단편 소설을 많이 봐서 좋았다는 것이다. 문학의 길을 담담히 걸어가는 이들은 이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 존재할 것이다. 내가 가볍게 읽은 단편을 쓰기 위해 혹자는 수 개월을, 혹자는 수 년을 공들였으리라. 그 노력의 결과를 편하게 감상하며, 비판까지 하고 있자니, 문득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만 내가 할 일은 그들의 정신, 즉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는 작가 정신을 전달하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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