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작은 악마가 살고 있어요. 날 떠나지 않는 유일한 친구죠. 그 얜 끊임없이 내게 말해요. You are the most useless, worthless person I've ever met." - 디어클라우드 <Bye Bye Yesterday> 중
퇴마나 오컬트 영화에서 보는 악마의 형상은 기괴하고 공포스럽긴 하지만, 우리 삶에 작용하는 지점은 매우 작다. 그러나 내 안의 보이지 않는 악마가 부추기는 자기 연민과 자기 혐오는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악마는 아주 교묘하고 은밀하게 우리의 욕망을 자극한다. 그들에게는 그리스도를 이길 힘이 전혀 없기에, 그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 인간을 무너뜨리고 그 영혼을 잡아먹으려고 한다. 악마는 오로지 자기의 생존에만 관심이 있으며, 자신의 안위를 위해 '버러지 같은 존재'인 인간은 물론이고 동료 악마를 희생하는 것을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C.S 루이스의『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읽을 때는 다른 신앙 서적을 읽을 때와는 사뭇 다른 마음가짐을 지녀야 한다. 악마가 지껄이는 말들에 현혹되지 말 것, 그들도 인정하는 그리스도의 위대함과 사랑을 잊지 말 것. 내가 악마의 꾀임에 넘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스크루테이프가 계속 언급하는 '환자'에 해당하지는 않은지, 만약 그렇다면 어느 정도로 심각한 상태인지 짚어보아야 한다. 형식적인 종교 생활, 교만한 마음, 세상의 가치관을 우선시하는 태도 등은 악마들이 바라는 우리의 모습이다. 인간이 자신의 영적 타락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그들은 원한다. 악마들은 조금의 유혹에도 인간이 흔들리고 스스로 넘어질 수 있음을 알기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낀 이들에게도 고난과 시험을 아낌없이 준다. 그러나 악마들은 그것이 구원자의 큰 뜻 아래에 있는 일임을 결코 모른다.
특이한 것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 최대의 비극이, 악마의 사역에 있어서는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논쟁이 예상될 테지만, 악마들은 그것보다는 개인을 공략하는 일에 집중한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을 살아갈 지혜를 조금씩 얻어간다. 세상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우리의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이 계시다면, 두려울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외부의 사건들은 나의 믿음을 흔들 수 없다. 진정 경계해야 할 것은 우상이나 그릇된 욕망이 내 마음을 차지하는 상황이다. 사랑으로 포장된 욕망, 상대를 지배하려는 갈망, 하나님의 이름을 내세우며 자신의 이익을 채우는 행위가 나에게는 더 무서운 일이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분명 독특한 책이다. 철저히 악마의 시점에서 인간을 무너뜨리는 법을 쓰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는 그들이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신실함을 찾게 되니까. 역사적으로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를 반박하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의 위대함을 부인하려고 했으나, 도리어 자신의 죄인됨을 발견했다. 예수님을 '원수'라고 부르며, 그를 조롱하는 듯 보이지만, 악마들조차 그를 인정하고, 또 존경한다. 세상의 어떠한 가치도, 어떠한 업적도 그분의 놀라우신 사랑에 비견될 수 없다. 악마의 입장에서 우리가 자랑하는 모든 성취가 얼마나 하찮겠는가? 또한, 예수님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믿음의 증거라고 내세우는 모든 업적들보다 우리가 얼마나 귀하겠는가? 악마와 그리스도의 영적 싸움에서 누가 이겼는지는 자명하다. 우리가 할 것은 그저 그분의 품에 안기는 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