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심해 범선과 그 뱃사람들은 세계를 변화시켰다. 그들은 은과 향신료 그리고 설탕과 같은 상품을 먼 거리에 수송하면서 세계 시장과 국제 경제를 형성했고, 상인과 정착인 그리고 제국 건설자를 아프리카, 아시아 및 아메리카로 옮기면서 전 세계의 정치 질서를 변화시켰다. 심해 범선의 선원은 이렇게 식민주의와 자본주의의 부흥 그리고 골치 아픈 우리 시대의 근대화와 같은 중대한 변화를 가능케 했다.
그러나 선원은 한 번도 역사서에서 마땅한 대우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난 세대들이 알고 있던 바다의 위대한 인물들과 국가적 영광의 역사가 일반 선원과 그들의 투쟁 연대기 앞에 도전 받게 되었다. 1970년대 이후 선원은 역사의 변두리에서 보다 중심적 위치로 이동하며 그들의 노동이 단지 세계를 연결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게 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결정적인 역사적 과정들이 해상에서 펄쳐졌다는 점, 그리고 거기에 있던 뱃사람들이 역사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었다는 점은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이른바 '대항해시대' 동안 유럽 북부의 심해 범선은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고 중요한 기계였다. 이 유럽 권력의 전 세계적인 도구는 약탈과 정복 그리고 결국 오늘날까지 이어진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지배라는 엄청난 일을 가능하게 했다. 이 함선은 유럽의 제국주의 지배력이 전 세계의 바다에 미치도록 했고, 전 세계적 자본의 축적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함선이 없으면 세계 시장도 없었다. 그리고 물론 함선은 선원의 집단 노동이 있었기 때문에 움직일 수 있었다. 선원들은 아프리카, 남.북 아메리카, 아시아를 확장된 하나의 세계로 통합했다.
전 세계의 함선 운용에는 해상 프롤레타리아가 필요했고, 생산수단이 없던 선원들은 생계를 위해서 손을 쓰는 노동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세계를 항해하는 선단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유럽의 지배계급은 노동을 상품으로 간주하는 법을 배웠고 국제 시장에서 뱃사람들의 노동력을 사고 팔았다. 또한, 세계의 물과 땅을 지배하던 유럽의 지배자들은 노동력을 상품으로 간주하는 또 다른 중요한 방법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대형 범선은 노예선의 모습으로 다시 한번 그 과정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수천 명 이상의 아프리카인을 대서양 건너편에 운송하며 아메리카 노예사회의 싹을 틔운 노예선은 아메리카의 농장을 위해 아프리카인 무리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공장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노동력 대량 생산 공장의 모습은 선원이라는 노동자들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예의 자리는 젖은 맨바닥인데 비해, 선원의 자리는 해먹이란 점이 다를 뿐, 대량 수송을 위한 최소 공간의 배치라는 점에서는 노예나 선원이나 마찬가지였다. 노예와 자유노동 모두를 포함하는 근대 자본주의의 계급 관계는 이처럼 배를 통해 마련되었다.
유럽의 지배자들이 대서양을 넘나드는 자본주의 경제를 조직하면서 그들은 필연적으로 그들 국가와 주변 세계의 노동자들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를 창출했다. 농업 노동자들은 기술 노동자에 연결되어 있어야 했고 이들은 다시 부두 노동자와 선원에게 연결되었다. 자본주의 경제의 확장과 함께 이러한 연결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본의 생산력에 의해 함께 모인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계획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1768년 런던에서 선원들은 그들 사이의 공통의 관심사를 발견했다. 그들은 임금 삭감 이후 함선과 함선을 옮겨 다니며 돛을 내려버렸고(strike their sails) 세계에서 가장 큰 함대의 발을 묶었다. 이렇게 '파업'이 탄생했고 이와 같은 저항은 전세계 노동자들 사이에 급속히 퍼졌다. 탈주, 선상 반란, 해적질, 노예 봉기, 도시 시위 그리고 폭동, 거기에 혁명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형태의 저항이 새로운 형태의 협력 속에서 나타났다. 축적을 위한 대서양 상업 네트워크는 자주적 활동과 전복 행위의 네트워크가 되었고, 위로부터의 자본주의와 제국 조직은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저항을 불러온 것이다.
이 책 '대서양의 무법자'는 미국의 역사가인 '마커스 레디커'가 쓴,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평등과 정의를 위해 싸웠음에도' 하향식 역사에서 제외된 사람의 기록을 바로 잡고 싶어한다. 저자는 과거를 돌아보는 연대를 보여주고 그들과 함께 "동반"하는 역사를 원한다.
낡은 역사를 넘어서기 위해 저자는 대서양의 위로부터의 역사를 주름잡는 제독과 선장과 장군들의 이야기가 아닌, 대서양의 무법자 이야기를 펼친다. 많은 이들에게 영웅인 영국의 넬슨 제독이 자메이카이 소설가에게는 해상 범죄자인 것처럼, 많은 이들에게 범죄자였을 해적은 또 다른 많은 이들에게는 영웅이었다. 이는 역사를 해석하는 관점의 문제이다.
그렇게 저자는 아래로부터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세계 지식의 생산자이자 전달자 이면서도 열악한 노동환경과 차별적 계급에 신음하고 반발하는 선원, 탈주 선원과 탈주 노예가 모여서 구성한 탈주자 공동체와 해적, 아메리카 혁명의 기반을 지속적으로 쌓아 올린 잡색(다인종) 부대, 차라리 죽기 위해 저항한 노예선의 아프리카인들, 백인 중간계급과 아프리카계 아메리카인의 노예 폐지 운동을 연결시켜준 아미스타드호 선상 반란 사건들을 이야기한다.
책은 다소 불편할 수 있다. 영국과 미국의 세세한 역사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맥락을 파악하기 쉽지 않은 낯선 이름들과 사건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들의 사회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잘 와닿지가 않는 소소한 은유들도 많이 접하게 된다. 그럼에도 이 책은 위로부터의 역사만 익숙하고, 아래로부터의 역사는 낯선 독자에게는 어두운 바다에서 작은 불빛을 밝혀주는 등대가 될 수도 있다. 새로운 지표가 있다고, 그 방향으로 오라고. 나에게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