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상업자본주의가 노예제도와 독점무역을 기반으로 성립된 반면에 19세기 산업자본주의는 노예제도와 독점무역을 파괴했다."(38쪽)
17세기 중반 유럽인들이 설탕의 단 맛에 중독되면서 설탕값은 하늘로 치솟지만,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를 대량 재배할 수 있는 중남미에는 인력이 부족했다. 선주민들은 과로와 질병으로 급속히 숫자가 줄어들었고, 백인계약노예만으로는 필요한 노동력을 충족시킬 수 없었다. 그러자 서아프리카의 흑인들을 대상으로 노예무역과 노예농장이 폭발적으로 팽창한다.
리버풀에서 총, 탄약, 공산품을 싣고 떠난 잉글랜드 상선이 서아프리카 해안으로 가서 흑인노예를 사들이고, 이를 중남미의 노예농장에 팔아치운 후 그 돈으로 설탕을 사서 잉글랜드로 돌아오는 이른바 대서양 삼각무역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 대서양 삼각 무역은 *브리튼 자본주의가 산업혁명을 일으키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자본 축적의 원천이 된다.
*브리튼 :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연합왕국
흑인노예가 노예무역선에 실려서 대서양을 가로질러 항해할 동안 노예 1명당 고작해야 길이 168cm 너비 40cm에 불과한 공간만 할당받았다. 각자의 오른다리는 옆 노예의 왼다리와 함께, 오른손은 왼손과 함께, 쇠사슬에 묶여서, '책장에 빼곡히 꽂힌 책들'처럼 범선에 빼곡히 채워진 노예들 각자에 허용된 공간은 1인용 관보다도 좁았다. 흑인노예들은 꼼짝없이 묶여 수송되는 가축들이나 마찬가지였다.
흑인노예제도를 탄생시킨 것은 인종논리가 아니라 경제논리였다. 흑인노예제도는 흑인들의 피부색 때문이 아니라 저렴한 노동력때문에 생겨났다. 흑인노예의 노동력은 아메리카 선주민이나 백인 노동자의 노동력보다 월등히 우수했다. '하등인간'의 특징으로 널리 주장되던 흑인의 외모들은 식민지들이 값싸고 우수한 흑인 노동력을 원했기 때문에 뒤늦게 동원한 그럴싸한 핑계들에 불과했다.
19세기가 생산의 시대였다면 17세기와 18세기는 무역의 시대였다. 브리튼의 삼각무역은 다른 무역들의 원천이자 토대였고, 브리튼의 산업을 삼중으로 촉진했다. 브리튼에서 모직물, 면직물, 설탕, 럼주, 파코티예(잡화), 금속품 등 공산품 제조업이 발달했고, 잉글랜드에서는 금융업, 중공업, 보험업 등 새로운 산업들이 생겨났고, 식민 농장에서는 열대특산물들을 생산하는 한편 브리튼 산업 생산품의 시장이 되었다. 삼각무역으로 축적된 이익금은 잉글랜드 산업혁명을 촉진시킬 중요한 돈줄이 되었다. 흑인노예들은 식민지들의 근본적인 토대이자 버팀목이었다.
상업주의가 촉진한 산업발전은 훗날 상업주의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과도하게 진행되어 오히려 상업주의를 파괴해버렸다. 북아메리카인들의 밀수를 막기 위해 1764년 제정된 설탕관세법은 미국 독립 전쟁으로 직결되었고, 미국 독립은 상업주의 체제를 파괴하고 낡은 옛 체제에 대한 불신을 조장했다. 미국독립은 그 당시 잉글랜드에게는 국가재난으로 생각되었지만, 실제로는 구시대에 종언을 구하고 신시대의 등장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북마메리카 식민지 13곳의 독립은 브리튼 공산품들이 식민시장을 독점하고, 식민지생산물들이 본국시장을 독점한다는 식민체제의 근간을 무너뜨렸다. 1783년 브리튼은 미국과의 자유무역을 허용했고, 급성장한 국제무역은 상업주의를 깨뜨리고, 산업주의의 팽창을 촉진한다. 이후 브리튼의 기계화된 생산력은 세계전역을 브리튼의 발판으로 만들어갔고, 브리튼은 세계의 은행이 되어갔다.
브리튼의 엄청난 산업팽창 앞에서 서인디아의 무역독점권은 브리튼 자본주의의 골칫덩이로 거센 비난을 받았고, 비난은 서인디아의 기반인 노예무역과 노예제도로 차례로 이어졌다. 브리튼에서 1807년 노예무역이 폐지되었고, 1833년 노예제도가 폐지되었다. 그러나 브리튼 자본가들은 서인디아의 노예제도를 파괴하면서도 브라질, 쿠바 섬, 미국의 노예제도를 번창시키는 데 꾸준히 공헌했다. 저렴한 설탕을 원하는 욕망은 노예제도에 대한 모든 혐오감을 압도했다.
식민체제는 상업주의시대에 상업자본주의의 척수였다. 자유무역시대에 산업자본가들은 식민지들을 아예 원하지 않았다. 산업발전은 자유무역운동의 발전과 함께 나란히 진행되었다. 노예제도 덕분에 성장한 자본가들이 바로 노예제도를 변화시키고 파괴한 장본인들이었다. 노예제도는 상업주의와 흥망을 같이했다. 요컨대, 흑인노예들의 해방을 촉진한 것은 바로 흑인노예노동이 창출한 경제력의 발달이었다.
17, 18세기 브리튼과 프랑스는 산업발전과 자유들을 수반하는 의회민주주의로 대변되는 근대세계를 선도한 국가들이었다. 브리튼 자본주의의 특징은 프랑스 자본주의의 특징이었다. 다른 해외지역들은 부차적이었다. 이 시대 역사를 결정한 힘은 발달하는 경제력이었다. 시대의 정치이념과 도덕관념은 경제발달과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브리튼의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노예제도를 오늘 옹호하다가 내일 비난하고 모레 다시 옹호하는 식으로 돌변했다. 오늘 제국주의자인 그들은. 내일 제국주의반대자들로 돌변하고 또 한 세대가 지나면 제국주의옹호자들로 변할 것이다. 더구나 언제나 맹렬히 변덕을 부린다. 방어나 공격은 언제나 고상한 도덕이나 정치논리를 빌미로 행해진다.
지배세력이 의존하는 통념들은 그 세력들이 파산한 후에도 오랫동안 살아남아서 그 세력들의 해묵은 병폐를 재발시킨다. 그렇게 살아남은 모든 통념은 이제 그것들이 부응하던 지배세력들이 더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해롭다. 우리는 이런 해묵은 편견들 뿐만 아니라 줄기차게 생겨나는 새로운 편견들도 경계해야 한다. 어떤 시대도 이 의무를 면제받지 못한다.
브리튼 자본주의 발전에 이바지한 노예제도의 역할'을 연구한 이 책은 '트리니다드토바고'의 독립운동가이자 총리였던 '에릭 윌리암스'가 1938년 발표했던 박사 학위 논문을 개정하고 보완하여 1944년에 출판한 책이다.
출간된지 88년이나 된 이 오래된 책은 그만큼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고 한다. 책의 추천사를 쓴 경제학자 홍기빈이나 해설자 서문을 쓴 역사학자 콜린 A. 파머에 의하면 이 책은 출간되어 찬사와 갈채와 함께 심각한 비판을 받아왔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논쟁은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들에 의하면 노예무역과 노예제도를 산업혁명을 이룬 자본축적의 핵심으로 놓고, 노예제 철폐의 핵심 동기를 인도주의가 아니라 경제구조로 놓은 이 책의 내용을 '수정 없이 그리고 아무런 제한 없이 그대로 말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이 책의 핵심 논지들은 지식적으로 무너지지 않았'고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18,19세기의 오래전 자본주의를 말하는, 이 오래된 책을 굳이 읽는 이유를 묻는 다면 나는 홍기빈이 쓴 추천사를 인용하여 말해주고 싶다. 이 이야기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라고.
"이 대서양 삼각무역을 보라. 그야말로 21세기에 벌어지고 있는 '지구화'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생산에 필요한 자연 원자재의 수탈이 가장 용이한 곳에서 목불 인견의 끔찍한 참극이 벌어지며, 생산 비용을 가장 낮출 수 있는 입지 조건에서 또 살인적인 조건의 노동 착취가 벌어지며, 그렇게 해서 생산된 물건은 구매력이 충분한 지역으로 운반되어 엄청난 규모로 조장되는 소비주의의 총아가 된다."
게다가, "우리는 이런 해묵은 편견들 뿐만 아니라 줄기차게 생겨나는 새로운 편견들도 경계해야 한다."는 저자의 경고는 바로 오늘 이 순간까지도 우리가 되새겨야 할 외침이다. 일베의 차별과 혐오가 청년들의 놀이가 되고, 표현의 자유가 되는, 2026년 7월 6일이라는 부끄러운 오늘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