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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님의 서재
  • 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
  • 알라 알카이시
  • 16,200원 (10%900)
  • 2026-06-10
  • : 7,950
사유는 사무치고 문장은 아름답다.


책을 다 읽었다.

며칠 전에 책 리뷰를 썼는데 그때는 책의 서문과 앞 부분 일부만 읽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에 대해 얘기를 하고 싶었다.

책을 선전하고 싶었다. 이렇게 좋은 책이 있다고.

그래서 내 감정에 빠져 떠들어 댔다.

어찌 보면 책의 내용과는 다소 동떨어졌을지도 모를 얘기들을 떠들어 댔다.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좀 차분해졌다.

그래서 차분하게 다시 이야기하고 싶다.


이 책은 내가 가보지 못한 세계를 보여주고,

내가 알 수 없는 것들을 알려주고,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얘기다.

그리고 언어에 대한 얘기다.


굶주림과 폭격과 죽음에 포위된 가자라는 재앙의 세계에서,

언어가 삶을 어떻게 담아내고 있는지,

언어가 영혼을 어떻게 담아두고 있는지를

얘기하는 책이다.


팔레스타인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고,

언어에 삶을 건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이야기다.

슬프고 차분하고 사색적이고 절망스러운 그러나 의지어린 목소리로 들려주는

가자의 삶과 언어에 관한 이야기다.


많은 이들이 디아스포라를 말하지만

팔레스타인이야말로 디아스포라다.

가자에 갇혀 있어도,

가자를 떠나 있어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디아스포라다.

이들의 흔적은 언어로 남는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일제 식민 시대를 살아가며

빼앗기고 짓밟히고 끌려가고 죽어가고 저항하고 싸웠을

우리 선조들의 마음을

눈꼽만큼은 짐작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이 책을 읽던 와중에

한 밴드에서 서정주의 친일시에 관한 포스팅을 읽게 되었다.


서정주의 시어가 아름답다고?

서정주의 시가 형이상학적 깊이를 간직하고 있다고?

정말 그런가?


언어라는 것이 삶과 괴리될 수 있는가?

글이라는 것이 영혼과 무관할 수 있는가?

시라는 것이, 문학이라는 것이 그저  글자라는 기호의 조립에 불과한 것인가?

글자를 배치하고 배열하고 조합하면 저절로 글이 되는 것인가?


'글'을 좋아하고, 글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 중의 하나로서,

언어란 무엇인지, 글이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시가 무엇인지, 문학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굳이 대답은 필요 없다.

나는 이 책 '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을 읽으면서 그 답을 얻는다.


이 책, '알라 알카이시'라는 팔레스타인의 젊은 번역가가 쓴,

아니 썼다기 보다

굶주림과 슬픔과 고통과 절망과 희망과 의지를

삶과 영혼에 한 줄 한 줄 새겨 놓은

이 글들을 읽으면서,

나는 저절로 알게 된다.

아름다운 글이 어떤 글인지,

깊이를 간직하는 글이 어떤 글인지


이 책은

가자라는 좁고 절망스러운 세계에서

언어가 가지는 의미에 대한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 속에 이미 내 질문에 대한 답이 담겨있다.


굶주린 삶은 언어로 세상을 담고, 해체되는 영혼은 언어로 존재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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