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은 오랫동안 아프리카에는 전근대 역사가 거의 없거나, 적어도 우리 세계의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필요할 정도로 중요한 역사는 거의 없다고 길들여져 왔다. 헤겔에서부터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에 이르기까지 서양의 사상가와 정치가는 아프리카 사회들이 완전히 역사의 밖에서 늘 옛날과 같은 모습으로 태초부터 최근까지 살아왔다고 주장해왔다. '검은 아프리카'를 고립 상태에서 끌어낸 것은 오직 유럽과의 접촉이었다는 관점이 오랫동안 지배해왔다.
그러나 유럽의 '근대'를 열어 젖힌 것은 아프리카였다. 아시아와 이슬람 세계에 뒤쳐져 있던 유럽 세계는 아프리카의 노예 무역과 아메리카 식민지의 플랜테이션 경작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흑인 노동력에 대한 가혹한 착취로 부와 생산성의 원천지가 만들어졌고, 이는 대서양 경제가 새롭게 부상하고, 유럽 자체가 새 발판을 얻는 데 기여했다.
16세기 이래 유럽은 수백만 평방마일의 아메리카 농토를 유럽의 경제 영역으로 통합시켰고, 엄청난 규모의 아프리카인 노동력을 징발했다. 설탕, 커피, 면화 등의 노예 플랜테이션은 대서양 경제를 움직이는 중심축이 되었다.
뉴잉글랜드를 비롯한 북아메리카 식민지들은 서인도 제도에 식량을 공급하면서 영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독립에 대한 생각을 키울 수 있었다. 영국 직물 산업은 아메리카 노예의 옷을 공급하면서 성장했고, 이른바 '산업 혁명'의 원동력이 되는 부를 키울 수 있었다.
이를 통해서 대서양을 중심으로 지구적 차원의 새로운 자본주의 경제가 등장했고, 지금 우리가 '서구(the West)'라고 부르는 개념이 만들어졌다. 유럽의 부를 쌓아 올린 것은 프로테스탄트의 근면한 윤리 의식도, 유럽인의 모험 정신도 아니었다. 그것은 아메리카 선주민의 학살과 아메리카의 자원 수탈과 아프리카 흑인 노예의 착취로 이뤄낸 것이다. '근대'는 살육과 수탈로 시작되었고, 그것은 제국주의자들의 것이었다.
이 책 '본 인 블랙니스'는 잊혀진 아프리카의 역사, 흑인의 역사에 관한 책이다. 그러나 그냥 막연한 흑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른바 '서구'라고 불리는 현대의 풍요로운 백인 문명의 기틀을 마련한 아프리카 흑인들의 죽음과 피와 눈물과 땀에 대한 이야기다. 유럽과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라는 대서양 문명의 기저를 다진, 그러나 잊혀지고 외면 당한 흑인들의 노고에 관한 이야기다.
책은 '서구 중심 교육'을 통해서 민주 시민으로 성장해온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고, 미처 생각지 못했던, 덮어지고 숨겨지고 감춰졌던 많은 사실을 알려준다. 우리가 아프리카와 흑인에 대해 얼마나 무지하고, 얼마나 강고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 일깨워준다.
백인들에 의해 살해되고 수탈당했던 아메리카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많은 반면, 마찬가지로 죽어가고 착취 당했던 아프리카에 대한 이야기는 접하기 쉽지 않다. 사실 나는 아프리카 역사에 관한 책을 이미 두 번 정도 손에 잡은 적이 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도 멀리 동떨어져 존재하는 '검은 대륙'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하고는 무관한, 아지랭이처럼 모호하고 애매한 이야기로 느껴져서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꽤 의미심장했다. 우리와 동떨어진 외딴 곳의 아프리카가 아니라, 우리의 문명과 유기적으로 결합된 아프리카의 이야기였기에 그 내용이 남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로 느껴졌다. 흑인의 관점에서 풀어낸 아프리카의 이야기였기에, 그동안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생각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접할 수 있었다.
그래도 아쉬운 점은 있었다. 저자는 책 전체에 걸쳐서 이른바 '근대'라는, 현대 서구 문명의 수립에 기여한 흑인들의 기여도를 강조하는데, 그 강조하는 방식이 좀 씁쓸할 때가 있다.
나는 세계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백인들이 미개하고 야만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중세 이래 유럽은 종교적 광신과 무비판의 맹목과 가혹한 공격성과 끝이 없는 욕망과 야만적인 폭력이 지배한, '악마성'의 사회였다는 생각을 한다. 현대 유럽 사회의 인권과 자유에 대한 높은 감수성과 열린 의식은 잔혹한 식민지 착취로 쌓아 올린 풍성한 부에 기초하는, 더 오랜 의심과 더 많은 검증이 필요한 불안한 진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근데, 이 책의 저자는 근대의 형성에 대한 흑인의 기여도를 강조하다 보니, 어떨 때는 그 악마 같은 백인 제국주의 문명에 착취 당한 역사를 생색내는 듯한 모양새가 될 때가 있다. 아프리카의 능동성과 희생을 강조하느라, 그 억울한 희생을 공로처럼 느껴지게 만들 때가 있다. 물론 저자의 의도는 그게 아닐 테지만.
내 생각에 이건 저자가 현대의 백인 문명을 너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인 것 아닌가 싶다. 현대 자본주의 산업 사회를 그저 긍정하기에, 그 영광의 자리에서 흑인들의 '정당한' 자리를 찾는 것에 너무 몰입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피해자의 입장에서 역사를 보면서도, 가해자를 극복하려고 하기 보다는, 가해자에 인정받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보수적인 저자가 모순과 불평등과 불의와 생명 파괴의 파멸로 치닫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위기에 대한 문제 의식이 부족한 것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렇기에 저자는 이 풍요롭고 화려하고 찬란한, 그러나 파국적인 현대 산업 문명을 극복하기 보다는 그 속의 또 다른 주체로 수용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잊혀지고 지워지고 외면 되었던, 근대를 형성한 아프리카 흑인의 기여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지식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참 좋은 경험을 제공한다. 그렇지만 현재를 넘어서는 상상력의 부재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