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야기는 하나로 향한다. 인류의 미래.
물질과 자연과 세계에 대한 이야기의 귀결은 결국 하나다. 인류의 미래. 모래, 소금, 철, 구리, 석유, 리튬의 여섯 가지 물질에 대한 이야기도, 바다에 대한 이야기도 인류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끝난다. 그만큼 우리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이겠지.
우리가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 것은 몰라서 그런 거다. 우리가 무지해서 그런 거다. 우리가 추상과 관념과 사변의 하늘을 노닐고 있을 때, 우리 발밑의 지구는 허물어지고 있다. 우리가 그것을 모를 뿐이다. 오직 아는 사람들만 모색하고 있다. 인류와 지구가 살아남을 방법을.
'블루 머신'은 해양과학자이며, BBC 다큐멘타리 진행자인 '헬렌 체르스키'가 지은 책이다. 태양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원료로 지구를 순환하며 조절하는, 바다라는 지구의 엔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바다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바다가 지구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건지, 인간과 바다가 어떻게 연결되는 건지 알려주고 있다.
이야기는 재미있다. 전혀 모르던 바다의 생리에 대해서 듣게 되니 재미있다. 게다가 그냥 바다 이야기도 아니다. 바다가 어떻게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발목을 잡았는지, 스코틀랜드의 청어 소녀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파도를 어떻게 피해갔는지 등 인간의 삶과 연관해서 바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근데 마냥 재밌기만 한 건 아니다. 문과 남자인 나로서는 이야기 중간 중간에 나오는 화학과 물리와 지구 과학에 관한 (것으로 추정되는) 설명들이 버겁다. 학생 때도 들어보지 않은 자연과 물질의 원리를 늙어가는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저자는 BBC 다큐멘터리 진행자답게 쉬운 언어로 쉽게 설명하지만, 그래도 기계치이자 과학맹인 나에게는 버겁다. 다행인 건 교과서의 별나라 이야기처럼 어렵지는 않다는 것이다. 붙들고 버티면 얼추 짐작하며 넘어갈 수 있다.
책을 끝까지 읽었지만 사실 기억나는 건 없다. 초반에는 정리하며 읽으려고 했지만 금방 포기했다. 일단 지나가고, 기회가 생기면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 그때는 내 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정리가 가능하리라 기대한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그리고 인상적인 것은 바다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다.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 대한 저자의 전망이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이야기는 인류의 미래로 귀결된다.
우리는 인간이 호기심을 품고 거친 해수면을 바라보는 독립적인 관찰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 인간은 거대하고 푸른 액체형 메커니즘의 기슭에 서식하는 작디 작은 개미에 불과하며, 이 메커니즘이 도출하는 결과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바다를 깊이 들여다보는 것은 지구의 거주민이 된다는 개념이 무슨 의미인지 고찰하는 것이다. 먼 우주의 관점에서 인류의 이야기는 햇빛이 지구에 도착하며 시작된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빛이 되어 우주로 떠나면서 끝이 난다. 우리는 바다다.
인류는 유한한 행성에 살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고, 자신을 생존하게 하는 지구의 생명유지시스템에 대한 별다른 고민 없이 성장과 소비에 기반한 문화를 구축했다. 뿐만 아니라 자연 세계와의 관계를 상실하면서 자연이라는 거대한 존재의 구성 요소가 되는 기쁨과 경이로움을 잃었다.
지식과 이해는 우리에게 선택지를 제공한다. 인류가 바다에 초래한 문제(따라서 간접적으로 우리 자신에 초래한 문제)를 떠올리면 우울감을 느끼기 무척 쉽지만 이런 감정이 무관심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행동해야 하고, 행동에는 열정과 에너지와 결단력이 필요하다. 이를 실현하는 일이 가능한지 의문이 든다면 지난 50년 동안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떠올려보자. 우리가 변화를 일으키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우리는 원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우리는 결정해야 한다.
우리는 바다가 변함없이 지구의 생명유지시스템에서 건강한 심장 역할을 하는 미래를 원한다. 그러한 미래를 위해 희생을 감수할 필요는 없다. 지구 뿐만 아니라 인류에게도 나은 시스템은 분명 존재한다. 우리는 화석연료 중독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는 더 나은 세상을 향해 가는 길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실천해야 할까? 첫 번째이자 가장 큰 과제는 바다가 있는 지구의 거주민으로서 인간이 어떤 상태에 놓였는지 배우고 명료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행동에 나서야 한다. 바다가 직면하는 문제는 개인의 잘못된 행위가 아닌 인간 사회 시스템에서 유래한다. 전체적인 그림을 고려해야만 인류 문명은 문제를 바로잡고 거대한 지구의 생명유지시스템과 공존할 수 있다. 인류는 지구에 탑승한 승무원이기에 모두 실천할 수 있다.
실천은 정치인에게 편지를 쓰거나, 투표권을 행사하거나, 물건을 구매하면서 우선시하는 가치를 분명히 표현하거나, 작은 지역적 결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는지 확인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참여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하다. 변화를 원한다면 우리는 변화를 실현할 수 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어떤 사람이 되기로 하는가? 지구의 특징을 자기 삶에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며 푸른 행성의 거주민이 되기로 선택하는가? 아니면 외면하는 쪽을 택하는가? 우리 모두 바다로 둘러싸인 지구의 거주민이다. 인류는 푸른 기계와 어떻게, 얼마나 강하게 관계를 맺을지 선택해야 한다. 바다를 무시하는 쪽은 택할 수 없다. 바다는 인간을 포용할 수도, 파괴할 수도 있다. 인간은 바다와 함께 일할 수도, 바다에 맞설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