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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 19,800원 (10%1,100)
  • 2021-07-26
  • : 32,426

콩고 전쟁이 한창 진행중인 어느 날, 르완다군에 포위되어 식량이 바닥난 콩고의 수도 킨샤샤의 육군사무소를 백인 여성 '클로딘 안드레'가 급히 찾는다.
"장군을 만나고 싶어 왔습니다."
"지금 바쁘십니다."
"기다리죠."

눈부신 붉은 머리의 백인 여자가 기다린다는 전갈을 들은 장군은 호기심을 누를 수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부인?"
"당신네 병사들이 공원의 나무를 베고 있어요."
"그래서요?"
"저는 보노보 12마리를 보살피고 있어요. 전쟁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인데, 전쟁이 끝난 뒤에도 어딘가 살 곳이 필요합니다. 보노보는 오직 콩고에만 사는 콩고의 자랑거리입니다. 이 공원은 보노보를 위한 곳이 되어야 합니다."

폭탄이 건물 근처에 떨어져 담장이 흔들리고 천장에서 석고 조각이 떨어졌다. 안드레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당신네 병사들에게 벌목을 중단하라고 말해주세요."
"부인, 지금 가셔야 합니다. 여긴 안전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폭탄이 떨어졌다.
"이 보노보들에게는 보호가 필요합니다."
장군이 말했다. "지시 내리겠습니다."
안드레는 잠자코 서 있었다. 또 다른 폭탄.
"당신을 이 공원의 관리자로 임명합니다! 병사들에게도 전달될 겁니다. 자, 이제 그만요, 부인, 부탁입니다!"

안드레는 보노보 63마리 이외에도 회색앵무, 갈라고, 개, 고양이, 큰흰코원숭이를 돌보았고, 킨샤샤 일대에 10개의 '친절클럽'을 열어 어린이들에게 동물에게도 생각과 감정이 있으며 사랑받을 자격이 있음을 가르쳤다.

안드레가 보호소 방문자들을 상대로 강연하던 어느 날, 한 남자가 일어나 항의했다.
"콩고에선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어요. 이 보노보들이 아이들보다 더 잘 먹고 잘 살고 있는게 맞는 건가요?"
"저는 아이들에게 동물에게 친절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면 어린이들이 서로에게도 친절해집니다."

심리학자 고든 호드슨과 크리스토퍼 돈트는 동물을 대하는 태도와 타인을 대하는 태도와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사람과 동물의 차이를 더 크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민자나 흑인이나 소수 민족 등 사람 외집단을 동물로 '비인간화'하는 경향이 더 강했다. 반면에 동물과 사람이 더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민자를 덜 '비인간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몇십 년 사이에 서구 산업화 세계에서는 사람과 개의 거리감이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반려견에게 아낌없이 쏟는 사랑을 그저 현대인이 누리는 또 하나의 사치로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 사랑은 훨씬 더 오래된 것이다.

세계에서 평등주의가 가장 잘 실천되고 있는 마르투 부족민이 보여주는 사람과 개의 사랑은 매우 인상적이다. 마르투족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다른 선주민들이 그러하듯이 땅과 그곳에 사는 모든 동물들과 총체적이고 심오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한 마르투족 사람은 인류학자 더그 버드에게 "야생개 딩고들이 우리의 어머니입니다"하고 말한다.

이 말은 은유가 아니다. 어른들이 수렵과 채집을 위해 멀리 야외로 나가면, 딩고들은 자기 새끼들에게 해주는 것처럼 먹은 것을 게워냈다. 아이들은 단백질이 풍부한 이 곤죽을 불에 구워 먹으면서 허기를 달랬다. 오스트레일리아 오지에서는 수천 년 동안 개가 사람 가족의 일부로 살아왔다. 놀랍도록 평등한 이 사회에서 딩고는 가족이었다. 사람과 개의 관계에서 걔를 일가족에서 몰아내게 된 것은 산업화였을 것이다.

유럽의 혈통견들은 놀랍게도 아주 최근에 교배된 품종이다. 빅토리아 시대 이후 사람들이 개의 품종을 교배하면서 개의 외모가 중요해졌고, 개는 사고파는 상품이 되었다. 이로써 개 품종의 우열이라는 인식이 퍼져 나갔다. 유럽의 혈통견은 신분과 계급제에 병적으로 집착하던 문화의 산물이었으며, 이 집착에서 나온 것이 우생학 운동이었다.

조사 결과, 개 품종들 사이에 뚜렷한 우열이 있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은 사람 집단 간에도 뚜렷한 위계가 존재한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르투족처럼 더 평등한 사회의 사람들은 개를 가족의 일원으로 더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였다. 개를 대하는 태도는 다른 집단의 인종을 대하는 태도에도 반영된다. 개에 대한 사회지배 성향이 높을수록 '열등한' 집단에 속하는 타인을 동물로 바라보기 쉽다.

우리는 '적자생존'이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적자는 신체적 최강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적자란 당장의 '국소적 환경에 대한 적응 능력'을 말한다. 자연의 세계에는 우월이 없다. 살아남는 것이 '적자'이다. 그리고 인간은 '다정함'으로 적자가 되었다.

인간은 왜 이렇게 정이 많은 존재가 되었을까? 그 답을 '가축화'에서 찾는 연구자가 늘고 있다. 가축화란 인간의 목적에 맞도록 야생 식물이나 동물을 길들이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가축이 되었고, 가장 높은 수준의 가축화를 이룬 종이다. 애착과 접촉, 호기심과 놀이, 공감과 협력은 인간성의 본질이 되었다. 우리는 협력이 가져올 혜택을 신중하게 고려할 줄 알았다.

8만 년 전에 일어난 사람의 자기가축화로 폭발적 인구 증가와 기술 혁명이 동시에 일어났다. 친화력이 여러 집단의 혁신가들을 하나로 연결함으로써 기술혁명을 추동한 것이다. 자기가축화가 우리 종에게 준 막강한 능력으로 우리는 세계를 제패했다. 그리고 네안데르탈인 같은 다른 사람 종들은 하나하나 멸종되어 사라졌다.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호모 사피엔스 종이 지닌 최고의 미덕과 강점을 잘 설명해준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안에 내재된 최악의 본성도 설명해준다. 우리는 탁월한 친화력과 극악무도한 잔인성을 같이 갖게 되었다.

자기가축화를 통해서 친화력이 강화된 우리 종에게 새로운 형태의 공격성이 생겨났다. 우리가 더 강렬하게 사랑하게 된 이들이 위협 받을 때 사람은 더 큰 폭력성을 드러낸다. 우리가 위협 받는다고 느낄 때, 다정함, 협력,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 종 고유의 신경 메커니즘이 닫힌다. 이때 우리는 연결감, 공감, 연민을 느끼지 않게 되고, 타인을 '비인간화'하게 된다.

비인간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유인원화를 통해 우리는 잔인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을 유인원으로 부르거나 유인원에 비유하면 사람들 심리에 도덕적 배제가 발생하며, 이렇게 유인화의 표적이 된 개인이나 집단은 인권을 지켜줄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된다. 편견보다 유인원화가 현재 미국 사회에 존재하는 인종 간 격차를 더 잘 설명해 주는 것이다.

흑인에 대한 유인원 비유로 유럽 사회는 노예 무역에 대한 반감과 상류층 지식인의 도덕적 딜레마를 해소할 수 있었다. 유인원 비유는 노예 무역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고, 그 대상이 아프리카 인으로 국한된 것도 아니었다. 19세기에는 아일랜드 인이, 세계 대전 전에는 독일인, 중국인, 프로이센인, 유대인이 유인원 소리를 들었고, 2차 대전 시기에는 일본인들을 원숭이라고 불렀다.

<인류진화도>는 진화가 선형적으로 발전하고, 그 정점에 선 존재가 사람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 놓았지만, 강력한 비인간화의 척도를 보여준다.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서 절반이 다른 민족 집단은 미국인보다 사람으로 덜 느껴진다고 답했다. 특히, 무슬림이 미국인보다 10점 낮은 점수를 받아 가장 비인간화되었다. 무슬림을 비인간화한 사람들은 가장 높은 비율로 중동에서 고문과 드론 공격 모두 허용할 것을 주장했다.

우리 종이 다른 사람 종들을 정복할 무기를 생각해낸 이래로 우리는 지능을 과하게 강조해왔다. 우리는 지능을 토대로 확고한 구분선을 긋고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잔인한 고통을 가해왔다.

우정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평등한 사상이다. 인간이 구석기 시대를 지배하는 강력한 포식자이던 시기에 개는 송곳니 매서운 육식동물에서 개로 진화했다. 개는 그들 종의 강력한 성공 무기였던 두려움과 공격성을 사용하는 대신 우리에게 다가왔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가 될 만한 공통 기반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나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나로 평가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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