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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7780님의 서재
  • 지복의 성자
  • 아룬다티 로이
  • 14,850원 (10%820)
  • 2020-02-03
  • : 1,312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가 아룬다티 로이가 보여준 곳은 인도-파키스탄의 국경지인 '카슈미르'였지만 그가 건네는 메시지는 전 세계를 아우르는 것 같다.

각자의 '인도-파키스탄 전쟁'은 무엇인가. 그 끔찍하고 처절한 전쟁을 어떻게 종식시키겠는가.

 

남성의 몸에 갇힌 여성인 안줌에게는 여성-남성이,

불가촉천민인 사담에게는 카스트제도가,

비플랍과 무사 두 사람으로 대표되는 인도-파키스탄, 그중에서도 특히 카슈미르 지역의 국민에게는 종교 문제가,

태어나자마자 흑인이라는 이유로 친모에게 버림받았던 틸로에게는 존재와 죽음이,

그들이 힘겹게 견디고 있는 근원적 갈등이다.

엄연히 존재하고 있지만,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는 존재할 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되는 사람들. 사회가 허락하지 않은 사람들. 그들은 자신의 신조차 마음껏 섬길 수 없다.

소설에는 주인공 외에도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인도-파키스탄령 카슈미르라는 국경지역에서 벌어지는 참사들을 통해 그들이 겪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끔찍한 일상을, 그 저변의 수많은 사투들을 보여준다. 사회의 허락을 갈구하지 않고 자신을 증명해 내기 위해 죽음도 불사하는 그들은 매일매일 각자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정상-비정상이 갈리고 주류-비주류가 나뉘고 이중잣대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 기득권층은 그들의 존엄을 마구 짓밟는다. 그들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를 갈취한다. 그들의 사투가 특히 더 비참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만의 전쟁이지만, 내가 시작한 게 아니라 '사회'가 내게 강제한 것이라는 점.

하지만 우리는 안다.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것을. 사회가 강제한 전쟁의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무사가 말했듯 언제든 '처벌을 피할 인프라'가 없어지면 상대도 약자가 될 테니까.

 

사르마드-지복의 성자-는 '위로받지 못한 자들의 성인이며, 정확히 규정될 수 없는 자들, 신자들 속의 신성모독자, 신성모독자들 속 신자의 위안'이라고 했다.

사르마드는 소위 '사회적 약자'로 통칭되는 사람들을 위로한다.

'존재 그 자체'가 존재의 이유라고 말하는 성자.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라고 생각한다.

힌두교도 이슬람교도, 여성도 남성도 히즈라도, 브라만도 차마르도, 황인도 흑인도 모두 '있는 그대로' 존재할 자격이 있다. 가치가 있다. 누구라고, 무엇이라고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존재하는' 자연 앞에 누가 선을 긋고 우열을 나누었는지 이제 우리는 똑똑히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게 부당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과감히 저항해야 할 것이다.

 

안줌도, 사담도, 틸로도, 무사도, 그들의 희망인 미스 우다야 제빈도 모두 그저 존재하기에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름 외에는 어떤 수식어로도 갇히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들이 그들의 자유와 권리를 마음껏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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