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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lo316님의 서재
  • 딸에 대하여
  • 김혜진
  • 12,600원 (10%700)
  • 2017-09-15
  • : 13,399

'딸에 대하여'.. 제목부터 마음을 이끌었다.

'중앙역과' '어비'에서 이미 자신만의 언어로 낮은 곳에 있는 이들에 대해 낮은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었던, 그러나 낮은 것이야말로 어찌하여, 어떻게 진정 높은 것인지를 일깨워준 작가의 작품이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또 하나의 걸작이다.

 

책장을 덮고 한동안 아무것도 못할 만큼 먹먹했다.

그리고 이제 내가 있는 자리는 어디이며 나는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하게 된다.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순조롭고 수월한 일상. 그러나 이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끊임없이 싸우고 견뎌야 하는 일상일지도 모른다.'

  그런 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견뎌 낼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으면 고집스럽고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젓는 늙은 노인의 모습이 보일 뿐이다. 다시 눈을 감아 본다. 어쨌든 지금은 좀 자야 하나까. 자고 나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삶을 또 얼마간 받아들일 기운이 나겠지. 그러니까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건 아득한 내일이 아니다. 마주 서 있는 지금이다. 나는 오늘 주어진 일들을 생각하고 오직 그 모든 일들을 무사히 마무리하겠다는 생각만 한다. 그런 식으로 길고 긴 내일들을 지난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볼 뿐이다.'

                                                                                                   P.197

 

 

삼십 대의 젊은 작가의 시선이 어떻게 이렇듯 예리하며 그의 전언은 왜 이토록 절절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형식은 균형잡혀 있으며 언어의 면면은 섬세하기 이를 데 없다. 

아마도 내가 알기로 그의 근본이 한없이 겸허하기 때문이리라.

 

이 작가가 세상을 보는 냉철한 시선과 세상에 대해 보내는 지순한 온정에 사뭇 경의를 표한다.

그게 뭐든 언제나 받는 사람은 모르는 법이다. 그건 다만 짐작이나 상상만으로는 알 수가 없는 거니까 자신이 받는 게 무엇인지, 그걸 얻기 위해 누군가가 맞바꾼 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그 돈이 어떤 빛깔을 띠고 무슨 냄새를 풍기며 얼마나 무거워지는지 결코 알 수 없다. 그런 걸 누군가에게 줘야 한다면, 줄 수 있다면, 가족이 유일하다. 숨과 체온, 피와 살을 나눠 준 내 자식 하나뿐이다. P.74
그 애를 낳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보고 있으면 놀랍고 신기하고 잠든 그 애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사랑이라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차올랐어요.
나는 잠시 말을 그치고, 하고 싶은 말을 자르듯 어금니를 부딪으며 딱딱 소리를 내 본다. 어떤 말들은 도저히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다. 쇠못처럼 단단히 박혀서 결코 뽑아낼 수 없을 것 같다. 내 딸은 하필이면 왜 여자를 좋아하는 걸까요. 다른 부모들은 평생 생각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그런 문제를 던져 주고 어디 이걸 한번 넘어서 보라는 식으로 날 다그치고 닦달하는 걸까요. 왜 저를 낳아준 나를 이토록 슬프게 만드는 걸까요. 내 딸은 왜 이토록 가혹한 걸까요. 내 배로 낳은 자식을 나는 왜 부끄러워하는 걸까요. 나는 그 애의 엄마라는 걸 부끄러워하는 내가 싫어요. 그 애는 왜 나로 하여금 그 애를 부정하게 하고 나조차 부정하게 하고 내가 살아온 시간 모두를 부정하게 만드는 걸까요. P.84
손발이 묶인 채 어디로 보내질지도 모르고 누워 있는 저 여가자 왜 나로 여겨지는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너무나도 분명한 그런 예감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기댈 데도 의지할 데도 없는 게 저 여자의 탓일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나는 이제 딸애에게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고 단념해 버린 걸까. 어쩌면 나도, 딸애도 저 여자처럼 길고 긴 삶의 끝에 처박히다시피 하며 죽음을 기다리는 벌을 받게 될까. 어떻게든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은 걸까.
마음은 왜 한상 까치발을 하고 두려움이 오는 쪽을 향해 서 있는 걸까.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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