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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쥐보스의 서재
  • 단 한 번의 삶
  • 김영하
  • 15,120원 (10%840)
  • 2025-04-06
  • : 122,627



새로 취업한 곳에서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집에 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새로 시작하고 싶어. 지금까지의 일은 지우고 다시 1부터 시작하는 거야. 생각한 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았고 내가 스스로 나를 구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다시 시작하기. 리셋 버튼을 쥔 자는 나였으므로 내가 이 삶을 책임져야 했다. 자주 번번이 도망쳤고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들 했지만 대체로 그전보다 나은 곳이었다. 


이런 식인 거다. 한 번은 못 견디는 곳. 다음번은 견디는 곳. 지금은 견디는 곳에 와 있고 경험상 다음번은 못 견디는 곳일 거라서 약간 우울한 상태에 있다. 그런 거다. 인생은 둘 중에 하나를 고르거나 둘 중에 한 곳에 와 있는 거.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는 최상의 상태라는 걸 이제서야 깨닫는다. 김영하의 에세이 『단 한 번의 삶』을 읽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스타 작가의 삶에서도 단 한 번의 삶은 화두로써 작용한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하고 남아 있는 자로서 느끼는 상실감에 어쩔 줄 몰라 한다. 평범한 인간이 느낄 법한 비애를 같이 경험한다. 모두 어쩔 수 없는 상태로서 지낸다. 이런 안도. 쉽게 말해 나만 힘들고 지치고 병이 날 것 같은 상태가 아니라는 확인을 책에서 받는 거다. 


나는 이제 사람이 무섭다. 이렇게 쓰니까 좋다. 사람이 무서운데 무섭다고 어디에다 말할 데가 없었는데 쓸 수 있다니. 한 번 더 적어야지. 나는 이제 사람이 무섭고 더 정확히 말하면 까다로운 사람들이 두렵다. 마침표와 띄어쓰기, 글자체에 집착하고 큰 소리로 화를 내는 사람들이. 그런 이들에게 묻고 싶다. 이 생은 단 한 번인 걸 아느냐고. 


『단 한 번의 삶』에서 김영하는 어머니의 죽음 이야기로 책을 시작한다. 알츠하이머를 앓은 어머니는 현재부터 기억을 지워 나간다. 현재의 자신이 누군지 모른 상태로 과거에서 반짝인다. 그런 어머니의 소실을 지켜보는 작가의 시선은 애틋하다. 일회용인 삶. 한 번 쓰면 재생이 힘든 키친타월 같은 삶. 그런 삶에서 죽음은 특별한 경험이 아니다. 낮이 있으면 밤이 있는 것처럼 당연한 이야기이다. 


영원히 살 것처럼 구는 사람들을 만나면 숨이 막히고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다. 잘못된 과거를 지워 버릴 수는 없기에(리셋 버튼을 찾을 수는 없었다.) 현재의 시간을 수리하는 방식으로 살아갔다. 고장 난 건 과거가 아닌 현재이므로 잘못을 고친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책이 건네는 다정한 위로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이유를 『단 한 번의 삶』의 마지막에서 김영하는 들려준다. 퉁퉁 부은 손으로 그 문장을 필사했다. 무얼 해야 좋을지 몰라 방황하는 이 삶도 나의 삶이다. 오늘의 나는 어제와 나와 달라졌고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 때문이라도 내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삶을 잘 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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