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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쥐보스의 서재
  • 마산
  • 김기창
  • 16,200원 (10%900)
  • 2024-11-15
  • : 3,083



나는 마산에 가보지 않았다. 마산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한 권 읽었을 뿐이다. 가보지도 않고 겨우 읽었으면서 마산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읽은 자는 가보지 않은 자에 비해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모르니까 마음 놓고 떠들 수 있는 호기로움을 보여주겠다. 김기창의 소설 『마산』은 그렇다. 마산을 알아도 몰라도 마산을 이야기할 수 있게 해준다.


가보았으나 이제는 가 볼 수 없는 도시 마산. 경상남도 중부에 있었던 도시. 마산이라는 이름 대신 마산합포구라는 새 이름으로 불리는 도시.


『마산』을 새벽의 병원 소파에서 읽었다. 두 달 넘게 얼굴에 생긴 피부병이 낫질 않아 괴로웠다. 검색 끝에 찾은 피부과는 대기가 길다고 했다. 새벽에 도착에 순서를 적었다. 일찍 갔다고 생각했는데 열한 번 째였다. 다들 피부과 아프고 그런데도 부지런하구나. 


대형 텔레비전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청소부는 쉼 없이 걸레질을 했다. 청소를 마친 청소부는 나에게 다가와 종교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겪은 신천지 신도와의 일화를 늘어놓았다. 우리가 어디서 만났던가. 분명 처음 만나는 이임에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길래 하품을 참으며 대꾸를 해주었다. 손에는 읽다만 『마산』을 들고서. 


내 손에는 1974년 원하지 않는 회사 동료들과 등반을 하는 동미가 있는데. 난 동미의 서사를 좀 더 알고 싶은데 청소부는 청소가 끝났음에도 돌아가질 않고 있었다. 병원은 9시부터 환자를 받는데 그 시간은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자꾸 얼굴이 붉어지고 뜨거워지고 잠은 오고 『마산』의 검은 바다와 직장에서 잘릴 위기에 처한 동미와 나의 피부병과 청소부의 수다와.


겨우 진료를 마치고(조그만 연고 하나에 만 원이라니.) 『마산』을 제대로 읽을 수 있었다. 1974년의 동미의 시간을 거쳐 1999년 IMF를 살아내는 준구의 시간으로 2021년 코로나 때문에 인생이 망하리라는 예감에 휩싸인 은재와 태웅의 서사로 『마산』은 우리가 겪어낸 고비들을 마산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풀어간다. 


IMF는 학생 시절이라 위기가 크게 와닿지 않았다. 정기적으로 사보던 만화 잡지의 가격이 올라서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하나 남았다. 문제는 은재와 태웅이 살아간 2021년의 코로나 시절이다. 팔 년 넘게 다니던 직장이 문을 닫아서 어리둥절한 채 학원을 다녔고 자격증 시험을 보고 다른 직장을 구했다. 은재와 태웅은 자신들에게 닥친 위기를 대마를 재배하는 일로 넘기려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소리는 하지 말자. 살아남으려면 현실에서는 더 한 일도 할 수 있다. 『마산』의 청춘들에게는 대마가 손바닥에 놓였을 뿐이다. 예전 일을 기억하기 싫은데 싫어도 자꾸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후회를 하지 않기로 나를 달랜다.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한동안 그 시절을 생각한다. 후회가 드는 순간 다른 기억으로 대체한다. 


『마산』을 읽고 나니 쓸쓸했다. 지방에서 태어나 지방에서 살아가는 삶을 누구보다도 잘 알아서라기보다는 동미와 준구, 은재와 태웅의 내일이 짐작되기 때문이다. 살면서 제일 쓸모없다고 여겼던 건 희망이다. 살아보니 그래도 쓸모 있다고 여기는 것 또한 희망이다. 쓸모없지만 쓸모가 있어야 할 것 같은 희망. 오늘보다 내일이 망가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은 희망 때문에 생겨난다. 


빨개진 얼굴로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청소를 한다. 내일의 나는 피부가 낫길 바라며 진료를 기다리며 청소부와 이야기를 나누고 한 권의 책을 들고 있을 것 같다. 아니 오늘의 나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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