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가은 감독의 신작 영화 『세계의 주인』을 꼭 보고 싶었다. 민음사 티비에 나와서 책을 추천해 주는 밝은 모습에 반하기도 했지만 그전 영화들이 기억에 오래 남았기 때문이다. 개봉관을 검색해 보았지만 아쉽게도 근처 영화관에서는 상영하지 않았다. 영화가 좋다는 평이 많아서 꼭 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하다가 각본집이 나왔다는 소식. 볼 수 없다면 읽어보자.
영화의 각본집을 사는 일은 처음. 영화를 보지 않고 각본집을 읽는 일도 처음. 『세계의 주인』 속 주인공 주인이를 이렇게라도 만나서 다행이고 행복한 일이다. 나중에 OTT로 나오면 다시 보러 갈게, 주인아. 각본집이라고 불리는 『세계의 주인』 책은 예쁘고 근사하다. 첫 표지에는 '세계의 주인'이 표지를 넘기면 '주인의 세계'라는 반전이 숨겨져 있다.
'세계의 주인'에는 주인이가 없지만 '주인의 세계'에는 주인이와 다른 주인이들이 있다. 영화에는 가벼운 반전이 있다고 해서 '무스포 챌린지'를 지향한다고 한다. 큰 스크린 안에서 주인이와 다른 주인이들을 볼 순 없지만 나만의 장소에서 주인이를 만나는 일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숨을 고르기도 하고 숨을 멈추기도 했다.
윤가은 감독의 에세이 『호호호』를 읽어서 그가 글을 쉽고 솔직하게 잘 쓴다는 사실은 알았으나 각본마저도 평이하고 간결하게 그러나 여운은 오래 남게 쓸 줄이야. 역시 재능은 대단하고 노력은 훌륭하다. 영화를 봐서 가슴이 뛰었다면 각본집 『세계의 주인』도 읽었으면 좋겠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세계의 주인』만 읽었을 때에도 영화가 얼마나 좋을지 짐작이 간다.
밝고 활발한 주인이가 세계의 주인이었다가 솔직하고 사랑이 많은 주인은 세계와 하나가 된다. 세계 속에 내가 포함되었다면 비로소 할 말을 해야 하는 순간에 나는 세계를 끌어안을 수 있다. 상처를 극복하거나 이겨내야 한다는 주입식 위로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주인이는 실천한다. 이 세계의 주인공은 오로지 내가 될 수 있다고도 말해준다.
좋아하는 영화의 각본집을 사는 이유를 알겠다. 활자가 영화로 바뀌는 놀라운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서 아닐까. 책 속에 주인이는 다정하고 당차고 잘 웃는다. 영화 속 주인이는 더 사랑스러울 것 같다. 아프면 아프다고 해야 한다. 아픈데도 아프지 않다고 말하면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없을뿐더러 나의 세계를 이룩할 수도 없다.
언제든 어디에서든 나로 살아가기. 불행한 나도 행복한 나도 모두 나이므로. 그걸 다시 깨닫게 해줘서. 정말 고마워, 이주인. 이상 『세계의 주인』을 읽은 독후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