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 여름의 한낮을 정신없이 보낼 수 있는 소설 한 권을 추천한다. 정해연의 『홍학의 자리』이다. 태양의 남중고도가 가장 높아지는 정오에 읽기 시작하여 지표면이 데워지는 데 두 시간이 걸려 제일 더운 오후 두시를 지나 새벽인지 밤인지 모를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마지막 장을 덮는다. 충격을 안고서. 인간의 추악함에 질려 하면서.
책날개에 정해연을 '놀라운 페이지 터너'라고 소개해 놓았는데 『홍학의 자리』만 읽었을 때는 그 소개가 맞지 싶다. 잘 골랐어. 여름의 장르. 추리 소설. 나를 또 칭찬해 주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다년간의 추리소설을 읽은 덕분인지 사건의 실체를 미리 짐작했으면서도 결말이 궁금했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 다시 앞으로 가서 읽게 만들기도 한다.
계속되는 반전 때문에 스포일러는 금지. 극장 화장실에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라고 적힌 낙서 때문에 좌절한 적 있으니까 우리는. 소설을 읽는 동안 다 읽고 나서 나는 슬픈 사람이 나오는 슬픈 소설을 읽었구나 생각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났고 사건을 은폐하려는 자와 밝히는 자의 서사이지만 그 속에는 한 사람의 애처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다.
사립학교 교사 김준후는 학생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 학생이 죽은 현장을 발견하고 자신의 잘못이 밝혀질까 봐 사체를 호수에 유기한다. 누가 죽였을까를 의문으로 삼으면서. 『홍학의 자리』는 챕터가 끝날 때마다 사건의 새로운 반전을 들려준다. 아무리 더워도 책을 덮을 수 없는 이유다. 여기까지만 읽고 유튜브 볼까가 되지 않는다.
『홍학의 자리』는 잘못을 저지른 자가 끝에 가서는 반성을 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한 나를 비웃는 결말을 선사한다. 사건의 진상을 예측할 수 있었지만 독자의 뒤통수를 때리는 결말에는 할 말을 잃었다. 이렇게까지 인간의 추악함을 드러내는 소설이 있었던가.
이제 여름 시작이니 다른 정해연의 소설도 읽으면서 이 여름을 데리고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