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 된 김에 따로따로 널려 있는 책들을 정리해 볼까. 하다가도 오늘의 더위에 지치고 말아서 다시 드러눕는다. 분명 어제 자기 전에는 아침에 일어나면 이것저것 해야 할 일을 하겠노라고 다짐했는데. 나라는 인간은 왜 이 모양일까. 그래도 하루의 힘을 끌어모아 아직 읽지 않은 책을 찾아낸다. 읽은 책, 아직 읽지 않은 책, 보관해야 할 책을 기운 내서 분류해 보자.
아직 읽지 않은 책으로 김연수의 『너무나 많은 여름이』를 찾아냈다. 신간이 나왔을 때 바로 주문해놓고 읽으려고 했다가 덮어둔 기억이 있다. 그때는 읽기가 힘들었고 지금은 읽기가 수월했다. 책과 나의 운명. 거창하게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책에도 다 때가 있는 법. 그때의 여름보다 지금의 여름이 책을 더 많이 읽을 수 있는 시간인가 보다.
코로나로 사람들을 만나기가 힘들었던 시절(그때를 시절이라고 부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어찌 됐든 다 지나간 거니까.)에 책방과 도서관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읽어주기 위해 쓰인 소설들이 『너무나 많은 여름이』에 실려 있다. 마스크를 써서 서로의 표정을 알 수 없지만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눈을 빛내고 귀를 기울였을 그 밤의 시간들을 상상해 본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낭독회가 열린 서점과 도서관의 목록이 있다. 나의 시간이 가닿을 수 없는 곳에서 열렸을 낭독회. 그래도 책으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서 여름을 살아내는 중. 자전적인 이야기라 짐작되는 소설도 있어서 그간의 작가의 사정을 유추해 본다. 다들 아프지 마시고 과거를 후회하지 마시길.
우리에게 남아 있는 여름이 얼마나 될까. 남아 있는 사랑은. 남아 있는 친절함과 다정함은. 오늘의 여름은 내일의 여름이 될 수 있을까. 『너무나 많은 여름이』에는 사랑과 그리움, 미안함과 회환의 정서가 주를 이룬다. 끝내 말하지 못하고 헤어진 밤과 망설이며 돌아섰을 한낮의 시간들. 짧은 소설은 짧은 인생의 순간을 그린다.
이 여름에 한 권의 책을 천천히 읽고 내보내야겠다. 조금 더 가볍게. 지금보다 홀가분하게. 두 번 살고 있는 사람의 표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