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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쥐보스의 서재
  • 모순
  • 양귀자
  • 11,700원 (10%650)
  • 2013-04-01
  • : 225,329

중학교 때 하얀색 표지의 『모순』을 읽은 게 엊그제 같은 데는 아니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나 정말 『모순』 읽었는데 기억이 하나도 안 나더라. 『모순』을 다시 읽은 이유는 내 알고리즘에 계속 뜨니까 그래 내가 졌다 하면서 새로 구매해서 읽게 되었다는 자본주의 사회의 호구 이야기. 책 영업 많이 당하는 호구는 괜찮군. 이렇게 또 호구 인증. 


『모순』을 읽자마자 놀란 건 주인공 안진진의 나이가 스물다섯이라는 거다. 시대가 변했으니 어쩔 수 없는데 1998년에 스물다섯은 결혼 적령기였다는 것이었던 것이다. 여자 나이 스물다섯부터 결혼을 준비해야 하는 시대의 모습이었다는 건데 그래서 갑자기 IMF가 터져 자주 사보던 만화 잡지 가격이 올라서 우울했던 나는 『모순』을 읽으면서도 놀라지는 않았던 것 같다. 


결혼을 생각할 나이도 아니었거니와 결혼이라는 제도를 어떻게 하면 없애버릴 수 있을까 했으니까. 왜 결혼을 해가지고 불행을 대물림해 주는 건지. 만화책과 소설에 탐닉한 학생은 초코우유를 마시면서 슬픔을 이겨보고자 했다. 


스물다섯 공개적으로 밝힐 수 있는 재산은 사십이만 팔천 원의 안진진은 어느 날 아침 현타를 맞이한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한다는 각성을 한다. 시시때때로 집을 나가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한심해 하지만 어쩐지 불행 앞에서는 힘을 내는 어머니. 겉멋만 잔뜩 든 남동생. 안진진의 가족 구성이다. 


어머니와 똑 닮은 쌍둥이 이모가 있어 두 자매의 인생사를 비교하면서 자신의 생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지 고민인 스물다섯 살의 안진진. 만나는 남자는 두 명이다. 곧 결혼을 해야 할 것 같다. 스물다섯에. 1998년에 출간한 『모순』을 2025년에 읽어도 무리 없는 게 주인공의 나이만 빼면 그때의 청년들의 고민이 지금과 다르지 않다는 거다. 


문장은 또 얼마나 쉽고 간결하면서 세련되었는지. 쉽지 않은 인생사를 겪어 내면서 내 마음을 내 비통한 심정을 내 개떡같은 오늘을  『모순』이 찰떡같은 비유와(이런 걸 아포리즘이라고 한다지) 철학적인 문장으로 표현해 준다. 내 말이 하는 식으로 책을 읽어나가는 재미가 있다. 


뭐든지 뚫을 수 있는 창과 뭐든지 막을 수 있는 방패. 인생은 앞뒤가 안 맞는 모순덩어리 상태로 흘러간다. 그리하여 결말의 안진진의 선택에 탄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험이나 안정이냐. 선택의 상황에서 2025년에 안진진들이여 어떻게 할 것인가. 시대의 부름을 받고 다시 호출되어 역주행하고 있는 『모순』은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너의 몫이니 감당도 네가 해야 할 거다 쿨한 조언 아닌 조언을 한다. 


후회는 하지도 말고 후회라는 어리석은 감정을 마음속에 쌓아놓지도 말아야 한다고 충고도 한다. 남에게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잔소리, 조언, 충고) 중 두 가지를 『모순』은 안진진의 스물다섯 인생을 빌려 해준다. 책은 그렇게 훌륭하고도 엄격한 가르침을 바보 같기만 한 우리에게 선사한다. 걱정해도 바뀌는 건 없단다. 생각한 대로 아닌 사는 대로 생각해도 인생은 어찌저찌 흘러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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