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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쥐보스의 서재
  • 소설 보다 : 겨울 2024
  • 성혜령.이주혜.이희주
  • 4,950원 (10%270)
  • 2024-12-09
  • : 10,153



우연히(이런 단어를 쓰는 게 한때는 금물이었다. 일어난 사건에는 정확한 인과 관계가 존재해야 했다. 어떻게 우연히 사고를 당하고 죽고 사랑에 빠지고 누군가를 미워하게 된단 말인가 하는 식으로. 우연히라는 글자만 쓰면 물어 뜯겼다. 그런데 살아보니 앞뒤가 맞게 되는 인과 관계란 없더라. 원인과 결과가 커플처럼 있어야 된다고 말했던 사람들. 막장 드라마를 욕했던 사람들. 전부. 멍청이) 『소설 보다: 겨울 2024』를 읽었다. 


아니다. 서점 앱의 알림에서 내가 언제 추천해달라고 한지도 모르겠지만 관심 있어 하는 책의 신간 『소설 보다: 겨울 2024』가 나왔다고 알려주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장바구니에 넣어 놓고 다른 책과 함께 결제했다. 늘 그렇듯 바로 읽지는 않고 꽂아 두기만 했다. 정신이 조금 괜찮아진 걸까. 다시 이상해진 걸까. 아직 읽지 않은 소설 보다 시리즈가 줄 서 있는데 『소설 보다: 겨울 2024』를 꺼내들었다. 이렇게 되면 역순으로 읽게 되는 건데. 


그러거나 말거나 책을 펼쳤을 때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문장과 서사라면 읽어보자. 순서에 집착하는 강박증 환자 짓은 하지 말자. 『소설 보다: 겨울 2024』에 실린 세 편의 소설을 읽고 한참을 생각에 빠졌다. 각기 다른 소설을 하나의 주제로 뭉뚱그리는 건 게으른 행동일 텐데. 묘하게 세 편의 소설 성혜령의 「운석」, 이주혜의 「여름 손님입니까」, 이희주 「최애의 아이」는 죽음에 근접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자살로 어안이 벙벙한 채 살아가는 백주와 오빠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운석을 가지고 온 동생 설경의 묘한 하루를 그린 성혜령의 「운석」이었다. 백주는 힘들다고 이야기하고 분위기를 풍겼는데도 남편을 도와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빠져 있다. 설경은 늘 자기만 힘들다고 불행하다고 듣는 이를 기 빨리게 한다. 죽음 이후에 무엇이 남나. 목소리가 남는 건가 두 사람은 의문한다. 


이주혜의 「여름 손님입니까」는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잠깐 손님으로 머물렀던 엄마의 조카는 뒤늦게 자신의 소식을 전한다. 지극히 돌봐준 엄마를 버리고 일본으로 간 엄마의 조카, 나에게는 언니. 날짜와 시각을 정확히 알고 언니를 찾아가는데도 언니가 있는 곳을 찾을 수 없는 건 언니와 나는 생에 어느 순간에 호랑이보다도 무섭다던 여름 손님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집이 너무 조용해 틀어놓은 가요대제전을 보다가 속이 울렁거렸다. 나는 가만히 누워서 보는데 화면 속 가수들은 너무 빠르고 화려했다. 카메라는 쉴 새 없이 움직이고 가수들 그러니까 아이돌들 역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나의 움직임과 그들의 움직임이 일치하지 않았다. 왜 어른들이 가만히 누워서 《가요무대》나 《한국기행》, 《인간극장》을 보는지 알겠더라. 그곳은 무위의 세상이다.


이희주의 「최애의 아이」는 아이돌 유리를 사랑해 그이 아이를 정자 공여를 통해 낳게 된 여성 우미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의 모든 것을 사랑한 나머지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설정은 언젠가 우리가 마주하게 될 미래의 일이다. 소설의 설정이 소설 속 인물의 행동이 이해가 될 것도 되지 않을 것도 같지만 그런가 보다 하고 읽으며 이해의 폭을 넓혀 가는 거다. 


죽음이 너무 멀리 너무 가깝게 있지도 않다. 언제든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근처에 있어서 지금은 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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