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세상은 점점 안 좋게 변해가고 있어서 실망과 분노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요즘이다. 어차피 망할 거라는데 조금 괜찮은 쪽으로 망할 수는 없을까. 이것 또한 이상한 바람이다. 망해버리는데 괜찮고 안 괜찮은 게 어디 있다고. 그래도 이왕 망할 거 덜 아프고 덜 상처받으면서 망하고 싶다. 어제도 많이 먹어 버려서 망했다는. 오늘은 절식을 해야지 하는 마음. 이렇게 다짐해도 다시 먹을 거여서 예고된 망함.
세상을 구하는데 필요한 건 세 가지. 유머와 귀여움 그리고 다정함. 이것들만 있으면 지구 멸망의 시간을 늦출 수 있다. 고 믿는다. 힘들어도 누군가의 웃긴 말 한마디와 귀여운 표정과 다정한 몸짓에 실망과 분노로 끓어오르던 마음의 온도를 낮출 수 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적정한 온도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 주고 존댓말로 이야기를 건네주는 일들로.
김민섭의 에세이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는 우리의 다정함으로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자고 말한다. 지금 현재도 다정하니 조금만 더 다정해도 된다고 다독인다. 너는 지금도 충분히 다정해. 조그만 힘을 내서 너의 다정함을 퍼뜨려 보자고 한다. 그래 그렇다면 나의 다정함을 증폭해서 더 멀리 날려보자. 으쓱해진다.
오늘의 나의 다정함은. 쉬는 날이지만 업무 하나를 했다. 쉬고 있지만 컴퓨터를 켜서 하루에 하나씩 요청에 답을 해주자. 내일도. 귀엽고 상냥한 말투로 메시지를 보낼 예정이고 지난 실수를 들추지 않을 것이다. 다정함이 인류의 미래를 구할 수 있다면 사나운 마음을 숨겨 보아야겠다.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는 나의 꿈에 대해 궁금해했다.
어렸을 때는 터무니없는 꿈을 가졌다. 어느 대학교를 가겠다. 그리고 무엇이 되겠다. 실현된 건 하나도 없다. 그저 불안이 많은 어른이 되었을 뿐이다. 그때 내가 왜 그랬지 후회를 반복하는 어른이 되었다. 그때도 꿈을 꿀 수 있다면 지금이라고 안 될게 무엇인가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는 묻는다. 꿈을 이룬 어른은 못 되었지만 다정한 어른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다정한 어른, 문서 양식에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 어른, 카드 결제 서명란에 리본을 그릴 수 있는 어른, 꿈이 없다고 말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어른, 지는 게임에서도 실망하지 않는 어른. 다정한 어른이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나에게 다정해질 것. 나를 가혹하게 대하지 않을 것. 나의 행복을 누구보다도 빌어줄 것.
망해버렸지만 망한 상태에서도 살 수 있어야 한다. 나만 망한 거지 세상이 망한 거 아직 아니니까. 나에게 다정함이 부족하다면 다정함을 배워서 살아간다. 시끄럽고 복잡한 세계에서 잠시 이탈해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를 읽으며 다정함을 장착해 지구로 다시 귀환하길 바란다. 나의 다정함으로 너를 사랑할게. 꼭 안아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