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생 브이로그를 요즘은 즐겨본다. 직장인이면서도 운동과 공부를 하는 누군가의 일상을. 흘끔흘끔. 알고리즘 덕분에 보는 독서 브이로그는 덤. 갓생 살기와 책 읽기 브이로그를 보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느끼는 나. 이상한가요. 다들 너무너무 열심히 살고 있구나. 감탄해 마지않는다. 그럼 나는. 영상을 보고 나면 결연한 의지가 생긴다. 오늘부터 일 끝나고 집에 오면 공부 책상에 앉겠어. 진짜루.
경비가 시작되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경쾌한 캡스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고 나오는 순간부터 몸은 축축 처진다. 안 그래도 바닥난 에너지는 집으로 들어오는 순간 0이 된다. 여기서 제일 큰 유혹은 춘식이 소파에 앉아 있을까이다. 그 순간 일어나지 못하고 그러면 씻지 못하고 더러운 사람까지 되어 버리는 결말이기에. 겨우 나를 달래 씻는다. 씻자. 씻고 눕자.
공부 책상에는 한자·영어·필사 책이 한가득이다. 오늘도 나 영어책 주문했다잉. 그냥 앉아서 하면 되는데 온갖 장비를 사 모으고. 또 키보드 주문했다잉. 책상만 보면 고시생 바이브 뿜뿜인데. 겨우 하는 일이란 서평 쓰기라는 슬픈 사실. 소설가 정아은의 에세이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에는 나 같은-의지박약이지만 글쓰기 욕심은 대단한-사람에게 건네는 조언이 한가득이다.
왜 내가 작가가 안 되었는가(안 된 거라 하자. 못 된 것도 있겠지만. 순전히 의지의 문제이므로. 무엇을 탓할 필요는 없다.) 하면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이기 때문이다. 단번에 훌륭하고 아름다운 시를 써 내겠어. 하는 마음에 쓰다가 망치고 좌절하고 안 쓰고 만다. 지금 쓰는 시가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고 책을 내고 유명해지겠지.
작가라 불리면서 칭송을 받겠지. 바보 같은 상상과 한심한 명예욕이 글쓰기를 망친다.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는 솔직한 책이다. 챕터 중에 「정아은의 경우」라는 글이 있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남들에게 말하면 욕심쟁이면서 속물이라는 소리를 듣겠지 하는 생각을 정아은 역시 하고 있었다. 숨기지 않고 이야기해 주니 안심이 되었다. 소설가 역시 나와 다르지 않구나.
이런 것까지 알려주네 하는 부분이 많다. 문학상을 타고 그 이후에 가졌던 생각들. 거절 메일을 받았을 때의 심정. 편집자와 있었던 일화. 소설과 에세이를 내기까지의 과정들.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는 읽다 보면 글쓰기의 핵심은 솔직하고 진실한 마음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잘 쓰려고 하지 말고 끝까지 많이 쓰라는 조언은 뻔한 말 같지만 지키기 어렵기 때문에 주문처럼 외워야 하는 말이다.
이렇게 해야 작가가 된다.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는 말한다. 공모전에 떨어졌지만 쓴다. 거절과 무안을 당했지만 쓴다. 에너지가 없지만 핑계라고 나 자신을 속이고 쓴다. 넌 쓸 수 있는데 안 쓰는 거다. 말해주면서 쓴다. 여름이었다가 순식간에 겨울이 된 11월. 신춘문예의 무드가 깔리는 11월. 부지런히 책을 읽는 대신 근면하게 책을 읽는 갓생러들의 영상을 보고 있는 나의 11월.
새봄이 오는 어느 시간에 환호할 나를 상상만 하지 말고 쓰라. 써야지 작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