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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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요함과 게으름의 사이 그 어딘가


알라딘 서재를 기웃거리다 책을 주제로 한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이 읽고 싶어졌고 조금 더 기웃거리다 보니 작가님이 알라딘 서재에서 활동하시는 걸 알았다. 여긴 참 신기한 곳이다. 책을 밥 먹고 차 마시는 것보다 더 많이 보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고 그 많은 사람들이 서평을 매일 같이 쓰고 그 안에는 작가도 있다. 다들 한가득 그러모은 책 때문에 집 바닥이 꺼지는 것은 아닐지, 살짝 걱정이 될 정도다.

아무튼 관심이 가던 책이어서 일단 찜을 해뒀다. 그러고는 책장을 볼 때마다 하는 공상, 즉 '독서를 미뤄둔 저 책들만 읽고 나면 사서 보리라!' 이런 생각을 또 하던 즈음에 작가님 서재를 들른 것이 계기가 되어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은 '독서를 미뤄둔 저 책들'의 우선순위(맨날 어떤 걸 먼저 읽을지 상상만 함)와는 무관하게 예상보다도 훨씬 빨리 내 손안에 들어왔다.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은 어떤 도서의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주로 그 책에 얽힌 역사와 뒷이야기, 책의 물성(외형적 요소), 책이 태어나기까지 관여한 인물 등을 다루는데, 저자인 박균호 작가님의 일상 경험도 곁들여져 있어 재미가 쏠쏠하다. 전집 세트나 북케이스에 집착하는 저자의 에피소드는 무언가를 모으는 수집가라면 영역이 다르더라 할지라도 충분히 공감하고 웃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내가 흥미롭게 읽은 챕터를 나열해보면 이렇다. 


'책 사냥꾼, 북케이스에 집착하다' - 수집가의 근성!!

'유럽 여행을 간다면 이 책들과 함께' - 소개된 책들이 궁금해졌다. 특히 『유럽 도자기 여행』.

'잃어버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4번의 행방은?' - 독서가들의 추리와 그 결말이 재밌었다. 

'시인 이상이 장정한 시집' - '모던'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다룬 챕터라 그런지 왠지 글에서도 그런 이미지가 느껴졌다. 

'이토록 아름다운 화집' - 아름다운 책, 갖고 싶은 책이란 이런 것이다.

'북 박스 뒷통수' - 좋은 팁이 담겼다.

'나쓰메 소세끼가 디자인한 책 표지' - 현암사판 전집을 구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조지 오웰, 돈을 위해서 서평을 쓰다' - 서평가의 고달픔.

'잃어버린 채대치를 찾아서' - 뛰어난 번역가, 짧은 생, 애틋함..ㅠㅠ

'새로운 지리 교과서용 동화' - 이런 교과서가 많아야 할 텐데.

'영안실 청소부, 책방을 차리다' - 내가 바라는 동네 서점의 모습.

'조훈현, 가와바타 야스나리 그리고 바둑 명인' -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을 읽어 보자.

'영문학자 피천득의 빛나는 업적' - 예전에 읽었던 수필의 감동이 되살아났다.


목차에서 꼭지 제목만 보면서 골라보자니 열세 개 정도로 추려진 건데, 

다시 책을 죽 넘겨보며 고른다면 더 추가할 것이 많을 듯하다. 

챕터마다 책이 여러 권 소개되는데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읽어보고 싶은 책이 많이 생겼다. 책을 다방면으로 보는 편이 아니어서 요즘 들어 틀에 갇힌 느낌이 들었는데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에서 소개된 책들이 갑갑한 머릿속을 뚫어줄지 모르겠다. 독서가 재밌고 또 점점 더 재밌어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어떤 책이 다른 여러 가지 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은 그런 즐거움을 중계해주는 허브(hub)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작가님도 마지막에 그런 특징을 딱 짚어주셨다. 


한 권의 책은 단지 지식이나 정보의 전달 또는 읽는 재미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은 독자로 하여금 어떤 인연을 맺어줄지 모른다. 한 권의 책은 사람마다 읽히는 방식도 다르고 느끼는 감상도 다르다. 책은 고구마 줄기처럼 여러 갈래의 인연과 즐거움을 우리들에게 선사한다. 


이제 또 다른 고구마 줄기를 캐러 갈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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