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집요함과 게으름의 사이 그 어딘가

켄 일구나스 지음, 구계원 옮김, 문학동네 출간.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중반부터 학자금 대출로 고생하는 청년들 이야기가 많이 나온 것 같은데 미국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이 책은 앨프리드 대학교와 버펄로 대학교에 다니면서 학자금 대출로 2만 7,000달러나 빚을 진 켄 일구나스의 경험담을 다루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학교에 가고 수업을 듣고 별다른 교내 활동 없이 하교하여 친구와 컴퓨터 게임을 즐겼던,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미국 고등학생보다 80~90년대의 우리나라 고등학생과 생활이 닮은 듯한 저자는 그 나이대의 청소년들이 흔히 그렇듯 '다들 가기 때문에' 대학교에 진학하고 그 '진지하지 못한 결정' 때문에 우리 돈으로 약 3,000만 원에 달하는 빚을 지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면 어딘가 취직을 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지만 현실에는 자신과 똑같은 학생들이 넘쳐났다. 


저자는 이 시점부터 고민을 시작한다. 아무 고민 없이 지냈던 고교 시절과 무심코 한 대학 진학 결정, 막연히 선택한 전공, 사회 구성원들에게 빚을 지우는 현대 사회와 대학 체계의 문제점 등에 관해서. 그러다가 어느 날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빚을 갚기 위해 원치 않지만 매일 같이 나가던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알래스카를 향한다. 


여름방학에 알래스카의 콜드풋에서 모텔 청소 일을 하다가 휴일에 블루클라우드라는 산을 오른 그는 거의 죽을 만큼 고생을 하고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느꼈다. 그 후로 알래스카는 저자의 또 다른 고향이 되었다. '자신이 바라는 진짜 삶'에 대해 쉬지 않고 고민하던 일구나스는 버펄로 대학 졸업 후에 다시 알래스카를 찾아와 모텔 청소부, 임시 조리사, 여행 가이드, 쓰레기 청소부 일을 하고 히치하이커와 뱃사공이라는 독특한 경험을 했다. 번듯한 기업에서 큰돈을 벌며 일하지는 않았지만 알래스카에서 숙식을 공짜로 해결하며 번 돈을 모두 빚 갚는 데 쓴 덕분에 오히려 통장 잔고가 늘기까지 한다. 


대학 때문에 빚을 지고 빚 상환을 위해 고된 경험을 했지만 그 경험을 통해 저자의 마음속에는 인문학 교육을 받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그리하여 세상을 보는 눈을 더 키우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결정하고 숙식에 드는 비용을 최소한으로 낮추기 위한 '봉고차 생활'이 시작된다. 학교 주차장에 봉고차를 세워놓고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짠했지만 자신이 경험하고 느낀 바를 실천하기 위한 결연한 의지에 끝까지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초반에 70쪽 정도까지는 긴장감이 들지 않아 조금 졸리기도 했지만 저자가 알래스카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부분부터는 거의 책을 놓지 않고 본 것 같다. 자연 묘사가 아주 세밀하지만 그게 오히려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은 단점이라 할 수 있겠다. 자잘한 영미식 표현이 문장에 다 들어간 걸 보면 번역자가 단어 하나도 빼놓지 않고 우리말로 살리려고 노력한 것 같은데 아주 가끔 '이런 건 아예 빼버렸으면 더 자연스레 읽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꽤 좋은 번역이었다는 느낌. 다른 말 필요 없이, 재미있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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