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4월 19일, 우리나라는 5월 11일부터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The Last Dance)>가 방영되면서 마이클 조던에 관한 관심이 새삼 높아진 와중에 출간된 번역서 『마이클 조던』 전기.
2014년 출간된 원서 『Michael Jordan: The Life』를 갖고 2017년 후반기부터 번역 작업에 착수한 책으로 애초에 <더 라스트 댄스>와는 무관하게 진행한 것인데 마무리 작업이 더디게 되어서 넷플릭스 다큐보다 더 늦게 나왔다. 현재 출간일보다 두세 달 정도만 더 일찍 나왔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지만 이미 지난 일을 어쩌랴. ㅠㅠ
표지가 예쁘게 잘 나왔다. 언젠가 출판사 대표님과 통화하면서 서점 저~~~ 멀리서 봐도 잘 보이게 유니폼처럼 등번호랑 이름을 박아넣으면 좋을 것 같다고 제안했는데 그게 그대로 채택됐음. 그 전에 NBA카드 느낌이 나는 디자인도 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NBA 카드 사진도 찍어서 보냈었는데 그건 막상 시안을 짜보니 좀 유치해보여서 기각했다고 한다.
(요런 느낌을 살리면 어떨까 해서 출판사에 NBA 카드 사진을 몇 장 보내봤더랬다.)
(번역서 표지에는 원서와 같은 사진이 들어갔다.)
(유력한 표지 사진 후보였던 것. 불스 유니폼을 입은 조던 사진은 일단 NBA로부터 사용 허가를 받아야 하고 별도로 원작자와도 접촉해서 라이선스 비용을 내야 한다. 아무튼 사진 작가와 연락이 안 돼서 이 사진은 못 썼음.)
현재 내부 표지에는 원서와 같은 이미지가 들어갔는데 원래는 좀 더 젊고 밝은 마이클 조던의 표정을 넣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오랜 시일 끝에 해당 사진의 원저작자와 결국 접촉하질 못해서 원서 이미지를 그대로 썼다. 책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조던의 삶은 마냥 순탄하지 않았다. 슈퍼스타로 엄청난 인기를 얻고 크나큰 부를 누렸지만 그로 인해 짊어진 짐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런 느낌을 살리는 데는 젊고 생기 넘치는 조던의 모습을 넣기보다 다소 힘이 들어보이는 원서 표지 이미지가 더 나아 보인다.
지금까지 평가를 보면 빨간 겉표지에 대한 칭찬이 많은데 그걸 벗긴 상태도 꽤 멋지다. 두꺼운 검정색 무광 표지가 고급스러워 보이고 더 깔끔하기도 하고.
책 중간에는 사진이 일부 들어가 있는데 읽으면서 가끔 펼쳐보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큐멘터리에서 거대한 악(惡)처럼 묘사된 시카고 불스의 제리 크라우스 단장. <더 라스트 댄스>는 현재 생존한 인물들의 인터뷰만 담아서인지 크라우스를 마냥 나쁜 사람으로 몰아세운 경향이 있다. 그는 2017년에 사망했기에(조던 전기에서 인터뷰를 통해 자주 등장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감독 딘 스미스와 불스 코치였던 조니 바크및 트라이앵글 오펜스의 아버지인 텍스 윈터도 몇 해 전 유명을 달리해 다큐멘터리에는 나오지 못했다)육성으로 그 시절 자신의 입장이 어떠했는지 변론할 수 없었다. 사실 크라우스는 영상에서 묘사된 것만큼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보기보다 자존심과 고집이 셌고 비즈니스 마인드에 충실하면서도 커뮤니케이션은 무척 서툴렀던(혹은 공감 능력이 부족한) 딱한 인물이었을 뿐이다. 책에는 오히려 그가 심성이 좋은 사람이라는 인터뷰까지 담겼는데, 당시에 소속팀 선수들을 잘 다독이고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물론 불스 구단의 임원들 입장에서는 시킨 일을 척척 해내는 크라우스가 누구보다도 좋은 단장이었으리라.
번역 중에 책을 샅샅이 살펴보면서 내가 느낀 진짜 나쁜 놈은 시카고불스의 구단주인 제리 라인스도프다. 세상 모른다는 순진한 표정으로 다큐멘터리 인터뷰 영상에 등장한 걸 보니 정말 가증스러웠다.
조던의 야구 선수 시절에 관해서는 이런저런 오해가 많은데 궁금한 분들은 책을 한 번 읽어주셨으면...
마이클 조던의 인생역정은 이미 수많은 영상물로 소개되어 너무나 잘 알려졌고 굳이 새로울 것이 있겠느냐 싶을 정도지만, 사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내가 그동안 모르는 게 정말 많았다'는 생각을 했다. 1990년대 초반에 일었던 농구 열풍 속에 농구대잔치와 드라마 마지막승부 , 만화 슬램덩크 를 즐기며 농구공을 잡게 되고, 또 95년에 조던의 복귀를 본 뒤로 수많은 자료를 보고 듣고 읽고 수집해오면서 '이쯤 되면 조던에 관해서는 꽤 안다'고 자신했는데 이 책에는 진짜 생소한 정보가 많았다. ㅠㅠ
알려진 것과 달리엉망이었던 가족 관계라든가 대중 앞에서는 호인 중의 호인으로 통했던 그의 아버지 제임스 조던이 일으킨 온갖 문제들, 지금 같으면 상상하기도 어려운 자신감 없고 어설펐던 그의 중고등학교 시절, 세계적인 스타가 되기 이전의 조던, NBA 입성 후 크고 작은 경기들 이면에서 일어났던 사건들, 그의 사생활과 워싱턴 위저즈 시절에 겪었던 좌절까지... 책에는 이 모든 것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가 97~98 시즌을 중심으로 그의 어린 시절부터 은퇴 시기까지 많은 정보를 다뤘지만, 그건 정말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책에 담긴 생소한 일화들을 비롯해 조던의 영웅적 행적을 우리말로 차근차근 옮겨가며 농구 코트의 절대자로서 그가 표출했던 강인함을 많은 부분에서 느낄 수 있었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동경했던 스타가 남 모르게 짊어졌던 짐과 그 세월 동안 느꼈을 깊은 슬픔 때문에 무엇보다도 안타까움이 컸다.
『Michael Jordan: The Life』의 저자인 롤랜드 레이즌비가 출간 당시에 방송에서 책 소개를 하는 영상. 자막은 없으나 발음이 또렷해서 알아듣기에 많이 어렵지는 않다. 번역 관련해서 이 할아버지와 직접 연락을 해본 적은 없으나 그 많은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고 조던과 관련된 온갖 자료를 조사한 열정에는 정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분이 없었으면 애초에 번역서를 못 냈을 테니까. 후속작으로 코비 브라이언트 전기도 쓰셨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일단 지금 나온 책이 좀 팔려야 검토라도 하든가 말든가... ㅜㅜ 아무튼 좋은 책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요.
(1년 넘게 붙들고 보느라 너덜너덜해진 원서. 그동안 고마웠다!)
끝으로 넋두리를 좀 덧붙이자면... 나는 농구를 사랑하는 팬으로서 지난 10년간 마이클 조던을 주제로 한 서적을 번역해보려고 노력했으나 번번이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 조던이 얽힌 책은 잘 팔리질 않아 온갖 출판사에 기획서와 원고를 보내도 반려되기 일쑤였는데, 다행히 1984 출판사와 접촉하면서 이 책을 번역하게 되었다. ㅠㅠ (그간의 과정이나 우여곡절에 관해서는 언젠가 잘 정리해서 한 번 글을 남겨보고 싶다.)
원서 분량은 약 700쪽, 번역 출간된 책은 약 860쪽으로 보통 책보다 한참 두꺼운 만큼 작업 과정에서는 힘도 더 들고 애도 닳았지만 그래도 그의 삶을 더없이 깊이 들여다보고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는 데 만족한다. 그리고 내 어린 시절의 우상, 결코 닿을 수 없는 영웅을 떠나보내고 그를 한 인간으로서 마음에 담을 수 있게 된 데 진심으로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