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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이틀에 한 번꼴로 집에 들어왔다. 나는 그날은 그래서 싫고 그 전날은 다음 날 아버지가 온다는 생각에 우울했다. 저녁 먹을 때를 지나 오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방에 틀어박힐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날도 가끔 본인 밥 먹는 걸 옆에서 보게 했다. 자기가 얼마나 일을 열심히 했는지, 그래서 지금 이렇게 배가 고픈 거라고, 내가 그 고마움을 알기라도 해야 한다는 것처럼 자랑을 했다. 가끔은 찌개가 나오기도 전에, 메인 반찬이 나오기도 전에 밥 한 공기를 세 숟가락에 먹고는 웃어 보였다.
우리 집은 작았다. 평소에는 30분에 한 번씩 책상에서 일어나 안방 티비 앞을 기웃거리던 나는 아버지가 온 날엔 방문을 닫고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공부하는 척했지만 당연히 내가 하는 건 경계 근무였다. 방문 바깥의 발소리, 옷 스치는 소리, 숨소리, 웃음소리, 정부 욕하는 소리, 야구 보다가 화내는 소리 등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됐다. 졸지 말자. 그러다 그가 부르면, 가야 했다. 내가 거기 가 있으면 내 방은 어느 때보다 안전했다. 그건 좋았다. 나는 여름이 싫었는데, 방문을 열어놓지 않고서는 도저히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름이 되면 내가 애써 쌓은 벽은 무너졌고, 덥다며 거실에 나와서 자는 부모의 숨소리가 거슬려 잠을 설치기도 했다. 가족 아닌가요? 가족이죠. 그러니까 같이 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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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내 집을 찾았다. 나는 그날이 그렇게 좋았고 나머지 6일은 또 혼자라서 좋았다. 함께 있는 시간은 좋았지만 보내고 난 다음은 왠지 가슴이 텅 빈 듯했다. 내 집은 둘이 있기엔 좀 좁았지만 꽉 찬 느낌이 있고 그녀가 떠나고 난 후엔 혼자 있으면 헐렁했다. 바지라면 자꾸 흘러내릴 것 같고 점퍼라면 꼴이 우스울 것 같은, 초라한 기분이 들곤 했다. 그렇게 좋아놓고 왜지? 갑자기 이 도시가 크게 느껴져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던 길에 전화가 와 오늘 즐거웠지? 하고 물으면 즐거웠다고 말했다. 지금 어떤지 물어본 게 아니라서 최대한 솔직하게. 가끔 투정을 부리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나는 이제 애새끼도 아니고, 애새끼 때도 그러진 않았다.
이제 그녀는 내 집을 찾지 않는다. 그만 오라고 한 건 나였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도 집은 크게 변한 게 없다. 뭔가를 바꿔보고 싶다가도, 그녀가 채워넣은 것들과 사는 게 너무 익숙해서 어색함이 앞선다. 누군가의 취향을 누리기만 한 사람은 다 그런 건가? 아니면 나만 그런건가… 언젠가 이사하게 되면 나는 이것들을 다 버리고 가게 될까 아니면 가져가서 또 이렇게 꾸며놓을까. 이것보다 비싸고 좋은 게 세상엔 많을 텐데, 나는 그것들을 가져오거나 바꿔서 내 것과 어울리게 할 자신도 재주도 없다. 그녀는 알고 있었을 텐데. 다음에 대한 계획이 있었을 텐데. 앞 부분이 찢긴 책이 아니라 뒷 부분이 뭉텅 날아간 책이라서. 내가 읽고 또 읽어야 하는 것은 언제나 예전의 일이다. 점점 낡아가는 절반의 이야기들, 하 권 없는 상 권으로만 채운 책장.
나는 유령인가? 아니면 생존자인가? 하는 기분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나에 대해 이야기해줄 사람은? 그런 이야기가 남으면 조금 덜 외롭겠어?
평소에는 누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걸 그렇게도 싫어했으면서, 잊혀지는 건 싫어?
왜 함께일 때는 필요치 않았던 것들이 혼자일 때는 냄새와 촉감까지 그리운 건지 모르겠다.
도시가 나를 이상하게 만든 거라고 생각하면 조금 편하다.
나는 언젠가 이곳을 떠날 것이다.
울음을 터트리기 전에 급히 하는 세수처럼, 내일이면 잊을 감정을 씻어내기 위해 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