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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사체로 죽더라도 선탠하고 싶어
  • 고철구
  • 12,600원 (10%700)
  • 2020-03-25
  • : 48

김어준이 지금같은 권력을 갖기 전, 그는 딴지일보라는 재기발랄한 언론사의 총수였다.

세상의 근엄함과 위선에 똥침을 날리자는 총수의 슬로건답게

거기 걸맞는 인재들이 모여들었고,

그 중 하나가 ‘철구’였다.

‘철구’가 필명이라 그의 진짜 이름이 뭔지 몰랐지만,

철구의 글은 그 쟁쟁한 필진 중에서 단연 돋보였다.

그 딴지일보는 지금도 살아남아 현 정권을 사수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지만,

‘철구’가 딴지일보에서 보이지 않게 된 건 오래 전의 일이다.

 

그 철구의 진짜 이름이 ‘고철구’라는 것을 안 계기는

십수년만에 돌아온 그가 <변사체로 죽더라도 선탠하고 싶어>라는 소설책을 냈기 때문이다.

‘좀비’를 소재로 한, 프롤로그를 포함해 총 다섯 편의 연작소설로 이루어진 책인데,

제목으로 보나 프롤로그로 보나 딴지일보 시절의 기발한 내용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티모시와 새라>라는 두 번째 소설은 재미도 재미지만

읽는 동안 여러 번의 충격을 내게 선사했다.

우씨, 이건 뭐지 이러는데 그 다음에 나오는 <자자와 종가>는

읽는 동안 여러 번의 안타까움을 내게 선사했다.

다음 나오는 <일문과 일금>은

읽는 동안 여러 번 나를 슬프게 만들었다.

<티모시와 새라>가 그냥 충격만 줬던 건 내가 경험 못한,

먼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어서였고,

<자자와 종가>가 안타까움을 준 건 내가 경험 못한,

아주 오래 전 내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라면,

<일문과 일금>의 이야기는 지금 내 나라에서 부지기수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

충격과 안타까움을 넘어 깊은 슬픔으로 날 인도했다.

무엇보다 놀란 건 각각의 단편에서 이야기의 짜임새가 워낙 훌륭했다는 점이었는데,

덕분에 나같은 둔감한 독자도 저자가 보여주려는 세상이 뭔지 알 수 있었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삶을 힘들어하는 이들이) 이 이야기를 읽고 1분이라도 깔깔대고 훌쩍거릴 수 있기를” 바랐지만,

이 이야기에 깔깔댈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저들이 겪는 이야기가 내 이야기이고 또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니 말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이 “픽션으로 읽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라는 저자의 말은

괜한 걱정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변사체’와 ‘선탠’이 들어간 책의 제목이다.

최근에 읽은 소설 중 재미나 완성도 면에서 가장 뛰어난 이 책이

제목 때문에, 그리고 딴지일보에 근무한 저자의 이력 때문에

B급 소설로 인식될까 아쉬워서다.

제목과 프롤로그만 보고 속단하지 말자.

‘티모시와 새라’를 읽는 순간부터 당신은 절대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할지니.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난 중간에 이 책을 손에서 놨다. 아내가 TV를 볼 때 그 옆에서 책을 읽었는데, 드라마가 너무 재미있다보니 책을 내던지고 드라마를 봤고, 그 후에도 한동안 드라마가 준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를 넋 나가게 만든 그 드라마는 불륜전문 배우로 거듭난 김희애가 주연한 <부부의 세계>인데, 이 책을 볼 때 1회가 방영된 게 책을 내던진 이유였다. 감히 말하건대, 폭풍같은 반전이 사라진, 그래서 밋밋해져버린 2회였다면, 절대 이 책을 내던지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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