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번에도 왠지 끌리는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순문학과 일본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저로써는, 역시 또 그쪽에 치우친 추천을 하게 될 것 같아요. 더욱이 이번에는 제가 아주아주 좋아하는, 교고쿠 나츠히코의 <싫은 소설(원제 厭な小説)>도 나왔고, 그 외에도 이것저것...
교고쿠 나츠히코 <싫은 소설> : 제 닉네임에서도 알수 있듯이, 저는 교고쿠 나츠히코를 아주 아주 좋아합니다. 이 책은 아마 작년쯤에 일본에서 출간된 것 같은데, 교고쿠도의 시리즈물 번역은 늦는데 이런 단권의 번역은 참 빠르네요. 표지는 왠지 고서와도 같은 느낌이 들고, 책 제목이 '싫은 소설'이라니 꽤 특이한 제목입니다. 목차를 보니 싫은 아이, 싫은 노인, 싫은 문, 싫은 조상, 싫은 여자친구, 싫은 집, 싫은 소설...이라는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네요. 역시나 특이한 점은,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모두 마지막에 발광하거나 실종되거나 죽거나 하는 배드엔딩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추젠지 아키히코'시리즈처럼 요괴 혹은 그 관련 개념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싫은 어떤 것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이 책, 지난달에 나온 어떤 책보다도 꼭 읽고 싶은 책이에요.
한강 <희랍어 시간> : 제가 한강의 소설을 접한 건, 몇 년 전에(아마 05년쯤에) 이상문학상 수상집에서 대상 수상작 <몽고반점>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때 꽤나 파격적인 내용으로(형부와 처제의 정사 - 그런데 단순한 불륜 이야기는 아니고, 예술과 관련된 내용이에요) 그때는 제가 내공이 부족해서, 왠지 거부감까지 들었는데 몇 년이 지나고 다시 읽어보니 아...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역시 한 작품도 언제 읽느냐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달라지지요.
희랍어, 그리스 고전에서나 접할 수 있을 것 같은 꽤 이질적인 언어입니다. 수학 시간에 주로 볼 수 있는 알파, 베타, 세타 등등이 바로 희랍어의 알파벳이잖아요. 그런데 희랍어 시간이라면 과연 이 이질적인 언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 희랍어 시간을 매개로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일까,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확실히 제목에서부터 '일본어 시간', '프랑스어 시간', '독일어 시간', '라틴어 시간' 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 드네요. ^^책의 표지 역시 비내리는 날의 뿌옇게 변한 유리창을 연상시키는, 불투명하고 물기있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우타노 쇼고 <세상의 끝, 혹은 시작> : 서술트릭이 훌륭했던, 그리고 절대 영화화 시킬수 없는 소설 중의 하나인(이유는 읽어보시면 알게 됩니다. ^^)<벚꽂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를 통해 우타노 쇼고를 알게 된 후, 그의 거의 모든 작품을 읽었습니다. 최근에 나온 책들은 '집의 살인'시리즈와 '밀실살인게임'시리즈인데, 안그래도 최근에 일본에서 마지막편인 <밀실살인게임 매니악>이 출간되었다고 하니, 성질 급한 저로써는 번역본 기다릴 틈이 없으니 그냥 원서로 질러버릴까 고민중입니다.
이번에 번역출간된 <세상의 끝, 혹은 시작(世界の終わり, あるいは始まり)>은, 우타노 쇼고의 작품 중 비교적 초기작에 해당합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붕괴와 재생을 테마로 하고 있다는데, 우타노 쇼고답게 반전이 상당히 충격적일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김종광 외 <어느 왼발잡이 토끼의 무덤> : 전태일을 키워드로 한 작품집이라고 합니다. 몇 년 전, 우연찮게 <전태일 평전>을 읽은 것이 저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70년대의 눈부신 경제성장의 이면에는, 노동자들에 대한 지독한 착취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아이들이 피복업체에 시다로 들어가서 하루에 열몇시간을 일하고도 받는 돈은 정말 적었습니다. 작업환경 역시 열악하기 짝이 없어서, 허리를 펴기도 힘든 작업장에서 햇빛도 보지 못한 채 일을 해야 했으며, 배가 고파도 마음놓고 뭘 사먹을 수도 없을 정도로 그들의 벌이는 보잘것없었습니다. 먼지가 항상 작업장에 가득했기 때문에 폐질환을 얻는 경우도 많았구요...청년 전태일은, 어린 시다들이 배고파 하는 것이 안쓰러워서, 자신의 교통비로 풀빵을 사서 나눠 주고 자신은 집까지 그 먼 거리를 걸어서 가곤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따뜻하고 정이 많은 그는, 마침내 자신의 생명을 버림으로써 지옥과도 같은 노동환경을 개선하였습니다. 저 역시, 가장 작은 자들과 함께하겠다는 서원을 하게 되었구요...전태일이 일했던 환경을, 그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영세 피복업체에 위장취업하겠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건강의 악화로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간 꼭 해볼 생각입니다.
전태일을 테마로 하여 쓰여진 짧은 글들을 엮은 책이라니, 과연 지금의 작가들이 전태일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글로 풀어냈을지 매우 궁금하고 읽고 싶어집니다. 지금쯤 그는, 어머니와 하늘나라에서 몇십년만에 만나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
제니퍼 이건 <킵> : 표지에서부터 저를 강하게 끌어들인, 제니퍼 이건의 소설입니다. 고딕문학을 좋아하는 저로써는, 고딕소설의 틀을 빌렸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위시리스트에 넣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장르를 정의하기도 어려울 정도로(고딕, 블랙코미디, 호러, 미스테리, 메타픽션 등) 여러가지 장르가 혼재되어 있는 느낌입니다. 게다가 더욱 놀랍고 또 질투(?)가 나는 것은, 이것이 그녀의 첫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퓰리처상까지 타고, 이렇게 주목과 호평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읽기에 결코 녹록할 것 같지는 않지만, 묘하게도 이런 쪽이 저는 더 끌려요. ^^
아, 물만두님의 추리 서평 책을 추천하려고 했는데 그건 12월출간이라 다음달로 미뤄야겠어요. 미야베 미유키의 <고구레 사진관>은 이미 갖고 있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