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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고쿠도님의 서재
  • 새벽 거리에서
  • 히가시노 게이고
  • 13,320원 (10%740)
  • 2011-09-26
  • : 2,379

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수많은 작품들 중 나는 유카와 교수가 등장하는 일명 '갈릴레오' 시리즈를 제일 좋아한다. 드라마로도 제작된 적이 있는데, 그때 후쿠야마 마사하루가 유카와 역할에 너무 잘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탐정 갈릴레오>, <예지몽>, <용의자 X의 헌신>, <성녀의 구제>, <갈릴레오의 고뇌>, 그리고 아직 번역출간 되지 않은 <真夏の方程式(한여름의 방정식)>까지, 상당히 까칠하고 괴짜스러우면서도 천재적 두뇌를 가진 유카와라는 캐릭터에 나는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갈릴레오 시리즈를 계기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작품들도 하나씩 읽어나가게 되었는데 대부분 그럭저럭 괜찮았다는 느낌이다. 얼마 전에 출간된 <새벽 거리에서(원제 夜明けの街で)>는 표지부터가 새벽의 뿌옇고 서늘한 공기를 연상하게 하는, 꽤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이 나오면 항상 읽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은 일본에서 2007년에 출간되었고, 번역출간된 것이 최근이기 때문에 굳이 따지자면 신작은 아니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40대의 평범한 직장인으로, 그의 나날들은 단조롭고 또 평온하다. 아내와의 사이도 이제는 거의 무덤덤해졌고, 가끔 대학 시절의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어느 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야구 연습장에 들렀다가, 얼마 전 자신의 회사에 계약직 사원으로 들어온 아키하와 마주치게 된다. 그녀는 뭔가 쌓인 것을 푸는 듯, 처절한 모습으로 배트를 휘두르고 있었고, 그녀가 술에 취해 그의 옷에 구토를 한 덕분에(?) 그들은 며칠 뒤 회사 밖에서 처음으로 단둘이 만나게 된다. 와타나베는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가슴의 두근거림과 알 수 없는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한 마디로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는 가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감정이 일시적일 것이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지만 얼마 후 그는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고, 만남이 거듭될수록 그녀에게 빠져들게 된다. 아키하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불륜을 저지르는 놈만큼 멍청이는 없다고, 일시적인 욕망에 휩쓸려 한눈을 팔다가 일껏 이룩해 놓은 가정을 파괴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했던 와타나베는, 이제는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는 거야.'라는 자기합리화의 한 마디를 그 뒤에 덧붙이게 된다.  

아키하와 가까워지며, 와타나베는 그녀에게 꽤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15년 전 고등학교 시절, 그녀의 집 거실에서 아버지의 비서 혼조 레이코가 칼에 찔려 살해되었고, 그것을 발견한 사람이 자신이었으며 범인은 아직도 잡히지 않았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한 후 사건 두 달 전 자살했으며 살해당한 비서는 아버지와 내연의 관계에 있었다고 한다. 사건 당일 집에는 아키하와 아버지, 그리고 종종 집안일을 봐주러 오던 이모가 있었지만 그녀가 거실의 큰 대리석 테이블 위에 큰대자로 누워있던 시신을 발견했을 때는 이모와 아버지 모두 집에 없었다. 그 사건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와타나베는 아키하의 이모가 운영하는 바에 갔다가 자신을 쫓아온 아시하라 형사와 우연히 마주친 혼조 레이코의 여동생에 의해, 아키하가 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이며 사건의 공소 시효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만나기 시작했을 무렵 아키하가 내년 3월 31일이 되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것이 바로 공소 시효가 끝나는 날이었다. 그녀가 정말 그 사건의 범인일까. 왜 그녀는 시효가 만료되는 날을 기다리는 것일까.  

또한 아내 몰래 아키하와 밀회를 계속하며 친구들까지 동원해서 온갖 알리바이를 만드는 와타나베에게서는 어쩌면 구태의연하다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불륜 아저씨'의 전형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어는 크리스마스나 발렌타인데이 같은 때에도 용케 그는 아키하를 만난다. 어쩌면 몰래 하는 사랑이기에 더욱 뜨겁게 불타오르고 애절한 것이 아닐까. 불륜 이야기는 그동안 수많은 소설, 드라마, 영화 등의 소재로 줄기차게 쓰여왔고 신문 기사 등에서도 자주 보기 때문에 이제는 무덤덤해질 지경이다. 물론 이 소설에는 마지막 부분에서의 일종의 반전과 같은 미스테리적 요소도 존재하지만, 내게는 추리물보다는 연애물 쪽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15년 전의 사건은, 일종의 소도구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추리소설은 미스테리성과 트릭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로써는 <새벽 거리에서>가 기대했던 것만큼 훌륭한 작품은 아니라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이것은 추리물이라기보다 그들의 애절한 불륜 이야기일 뿐이다! 새벽 거리에서 시작된 그들의 사랑은, 결국 새벽 거리에서 끝을 맺는다. 그러니까 와타나베 아저씨, 부인한테 진심으로 사죄하고 앞으로는 절대 바람 피우지 말라구요(웃음). 여담이지만 이 책의 모티브가 되었던, 일본의 국민 가수 Southern All Stars의 노래 ' Love Affair~秘密のデート' 를 들으면서, 가사가 책의 내용과 굉장히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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