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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하는 가곡의 왕 슈베르트 형님은 600 여 곡의 가곡을 남겼다. 사실 슈베르트는 악기 연주를 아주 잘 했을 뿐아니라 노래에도 큰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11세에 궁중 합창단 공개 오디션에서 당당히 선발되었고, 시립 기숙학교에서 공동 생활을 시작했던 것이다. 이때, 평생 친구, 아니 평생 형님인 요제프 폰 슈파운을 만나는 행운을 가지기도 한다. 그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슈파운은 오스트리아의 귀족이었고, 슈베르트의 평생지기였으며 후원자였다.


슈베르트는 합창단의 독창 성부를 전담할 정도로 노래를 잘 불렀다. 그런 그가 요한 포글이 노래를 부르면, '곡이 정말 좋구만요! 이 곡을 대체 누가 썼음?" 이라고 묻곤 했다. 그러면 요한 포글이 답하곤 했다, "나의 친애하는 슈베르트라는 사람이 썼다네~" 라고.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몰라도 "슈베르트는 자신이 쓴 가곡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라고 슈베르트 평전에 써있다. 하긴, 600 여곡의 가곡을 썼으니 기억이 나지 않을 법도 하다.

























[[[ 마티아스 괴르네의 연주는 특별한 멘트를 할 필요가 없다. 그냥 믿고 들으면 된다. 바리톤은 역시 괴르네이다 ]]]



그런 슈베르르가 직접 부르기를 매우 좋아하는 가곡이 하나 있었다. (하나의 곡 이라고 하기에는 좀 길다. 6곡이 연달아 있는 노래이니 말이다) 슈베르트의 최애곡이 있었다는 뜻이다. 흥미롭게도 슈베르트가 가장 좋아했고, 또 잘 불렀던 가곡은 자신이 작곡한 노래가 아니었다. 바로 베토벤이 쓴 가곡이었던 것이다. 그 곡은 '멀리 있는 연인에게 (An Die ferne Geliebte)'이다. 물론 베토벤에 대한 그의 애정과 존경심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있어 이상할 것은 없다. 그렇지만 곡의 내용을 보면 슈베르트의 곡 이라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곡이다.



슈베르트는 연애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자신의 마음 속 깊이 애정하여 품었던 여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슈베르트의 애정사는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선, 그는 너무나도 가난했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은 애정사에 큰 걸림돌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처자를 보살필 수 없을 것이라는 뻔한 예측을 가능케하는 사람에게 누가 자신의 딸을 흔쾌히 시집 보낼 수 있겠는가.




[[[ 64년생 이안보스트리지는 영국 태생이지만 그는 어찌보면 독일 리트를 위해 태어난 사람같다. 때로 어떤 가곡들은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있다. 그토록 좋아하는 제라르 수제 형님도 이 곡은 아닌걸...  할 때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독일 리트들은 그에게서 대부분 새롭게 태어나는 느낌을 준다. 정녕 놀라운 일이다. 리트 아니였으면 어쩔뻔?

그는 옥스포드에서 사학을 전공했고 케임브리지에서 사학과 과학철학 석사를 마쳤다. 나아가 옥스포드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학자였다.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어느 날, 슈베르트 전문가나 다름이 없었던 피셔 디스카우를 인터뷰할 기회를 잡았다. 피셔디스카우는 되려 이안보스트리지의 음악적 재능을 단번에 알아봤다. 그는 그렇게 피셔디스카우를 스승님으로 모셨고 현재에 이르렀다. 피셔디스카우 형님 아니었더라면 어쩔뻔? 여하튼 그는 리트 딕션을 정녕 환타스틱하게 변화시기는 능력을 가졌다. ]]] 




당시의 많은 음악가들은 가난에 시달렸다. 금수저 집안 출신이었던 멘덜스존을 제외하면 대략 그러했다. 슈베르트는 영양분이 별로 없는 음식들이 상하지 않도록 소금을 많이 곁들여 먹어야 할 정도로 가난했다. 냉장고가 없던 탓이다. 염분은 슈베르트의 몸 속에 들어가 부종을 악화시켰다. 현대인들이 마주하는 통통한 성인 슈베르트의 얼굴은 잘 먹어 살이 잘 오른 얼굴이 아니라 사실은 제대로 먹지 못해 부어있는 얼굴이다.



가난은 세기의 천재 음악가에게 피아노 한대를 허용하지 않았으니 말 다했다. 어찌어찌 피아노를 들인 후, 채 1년이 되지않아 그는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그런 슈베르트는 연애다운 연애를 하지 못했다. 그에게 연인은 닿을 수 없는 곳에 너무나도 멀리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슈베르트는 '베토벤의 멀리있는 연인에게' 를 가장 잘 불렀고 가장 좋아했다. 그는 자신의 연인을 아무도 볼 수 없는 자신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숨겨 밖으로 내보일 수 없는 처지였던 것이다. 마음 속의 연인으로 말이다.


베토벤은 낭만파 슈베르트에게 가곡의 시대를 열어갈 단초를 제공했다. 그중 하나가 독일 리트 '연가곡'의 창을 열어준 것이다. 그리하여 슈베르트와 슈만은 베토벤의 어시를 받아 독일 리트의 역사를 완성할 수 있었다.

사실 베토벤은 커다란 인류애를 가진 휴머니스트였다. 까칠하고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베트벤은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죽기 직전에도 슈베르트를 칭찬하지 않았던가. 사실 그의 애정은 원대하게도 인류에 대한 애정에 닿아있었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그의 교향곡 9번은 베토벤 음악사의 결정체이자 인류의 유산이다. 그 유산에서 그는 인류에대한 깊은 믿음과 사랑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그는 인류를 '형제'라고 칭했다. 베토벤은 인간을 사랑했다. 나는 인류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베토벤을 사랑한다.




[[[ 친애하는 분덜리히 형님의 라이브 클립니다. 정말 잘 불렀다!! ]]]

 


'멀리있는 연인에게' 또한 베토벤의 인류에대한 사랑에서 출발하는 곡이다. 사연인 즉, 곡의 가사는 '야이텔레스'라는 의학도가 쓴 시(詩)이다. 야이텔레스는 콜레라가 유행할 당시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아낌없는 헌신을 다했다. 콜레라가 유행하자 다들 도망치기에 바빴다.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의학도 야이텔레스는 죽음을 무릅쓰고 끝까지 남아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려냈다. 그의 인류애와 헌신, 노력은 베토벤에게까지 닿았다. 베토벤은 그런 그에게 깊은 감사의 편지를 썼다. 그리고 야이텔리스의 의료 활동을 기꺼이 지원했다. 베토벤은 확실히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고, 애정을 가진 인물이었음을 방증하는 사건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야이텔레스는 그런 베토벤에게 연작시로 답례를 했다. 베토벤은 감명을 받은 나머지 그의 시에 곡을 붙인것이다. 베토벤이 의학도면서 시인이기도 했던 야이텔레스에게 시를 부탁했다고도 전해지지만 사실 여부는 알 수가 없다. 어째든 이 시를 야이텔리스의 나이 21세 때 썼다고 한다. 베토벤의 당시 나이는 47세, 1816년의 일이다. (슈베르트는 당시 나이 19세 였다) 세상에 드러난 베토벤의 명성으로보아 20대 초반 나이의 젊은이에게 곡을 쓰기 위해 작시를 부탁했을 가능성은 낮아보인다는 것이 개인적인 견해이다. 베토벤이 곡을 쓰기로 마음만 먹는다면 유명한 시인들의 시는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의 새파란 젊은이가 쓴 시에 곡을 정말이지 세련되게 입혀버렸다. 베토벤의 인물됨은 분명 긍정적으로 재평가 받아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또 어째거나, 곡의 성립 비하인드로 '부탁'이 아니라 '답례'가 훨씬 더 어울리고 멋드러진 이유이가 충분히 존재한다. 비하인드가 어떻든 이리하여 고전파의 유일한 연가곡이 탄생한 것이다. 슈베르트와 슈만의 연가곡은 베토벤의 뒤를 이어 참으로 훌륭한 독일 리트의 역사를 새롭게 완성했다. 또한 그들은 베토벤 덕분에 음악사에 길이 남을 리트를 하나의 장르로서 정립시켰던 것이다.



곡의 내용은 멀리에 있는 연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주제로 한다. 어쩌면 먼 공간이 아닌, 더이상 볼 수 없는 아주 먼 시간 속의 연인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다. 입장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는 그토록 애틋한 가곡 6곡이 서로 이어져 있다. 이룰 수 없는 사랑, 그리움, 이별의 심경은 詩를 통해 너무나도 아름답게 표현된다. 이 곡을 통해 독일어 만이 전해주는 특유의 리트 딕션과 피아노는 파노라마와도 같은 영상미를 눈 앞에 그려준다. 경애하는 베토벤이 곡을 쓰고 친애하는 슈베르트가 가장 사랑했던 곡이어서 그런걸까, 사적으로 만족도가 매우 높은 곡이다.

슈베르트가 정녕 사랑하여 저미는 가슴으로 부르는 모습을 상상하면 이 곡을 또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멀리있는 연인에게... 롱디하시는 분들, 한번 배워 보심은 어떠실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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