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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空
  • 진짜 예술, 가짜 예술
  • 장 프랑수아 마르텔
  • 16,920원 (10%940)
  • 2026-07-08
  • : 3,800


[[[ 이 리뷰는 출판사 서스테인의 도서 제공 여부를 문의 받은 후, 평소 관심이 있는 예술 관련 도서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읽고 쓰게 된 글 임을 밝혀드립니다. 어느 문장 하나도 버릴 것 없다 여기며 감탄하며 읽었습니다. 예술에 관심이 있는 분께라면 예술의 본질과 비예술의 특성을 사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이 도서는 독서의 감동과 함께 예술에 대한 통찰을 선물해주리라 믿으며 리뷰를 이어가겠습니다 ]]]




이 책은 예술의 진위 여부에 대한 단층적 담론을 넘어 철학적 사유가 층층이 겹을 이루며 예술의 본질에 닿아 있다. ㅡ차트랑

(이 책의 표제를 '진짜 예술 가짜 예술'이라고 칭했지만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는 '가짜 예술'을 '반예술'이라 칭하고 싶다. 그리고 '반예술'은 부정적 효과를 낳는, 그리고 매우 위험한, 의도가 불순한, 예술로 위장한 모든 것을 포함한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비예술, 즉 반예술이라 칭하고 싶은 것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첫째는 흔히 말하는 레플리카(짝퉁)이다.
최근 [ 피카소 인 대구 : 시대를 넘는 마스터피스 ] 라는 전시회가 화제이다. 주최측은 진품 감정서까지 보여주며 전시 작품들을 모두 진품이라고 홍보했지만 사실 확인 결과 진품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짝퉁을 진품이라고 속이고 전시회를 개최한 것이다. 관람객이 진품으로 인식하도록 하여 이익을 추구한 행위는 반예술 행위이고 사기 행각이며 범죄이다. 짝퉁은 시간이 지나면 그 정체를 드러내는 특성을 가졌다. 제 아무리 날고 기어도 결국 진실을 피해가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나마 그 위험성이 덜한 이유이다.

둘째는 이 책이 주로 다루고 있는 반예술, 정교하게 예술로 위장했지만 결코 예술이 될 수 없는 인공물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개인과 집단의 사유를 훔쳐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예술을 다룰 때는 진정한 예술의 본질도 함께 언급해주어야 효과가 더 클 것이다. 예상대로 이 책은 예술에 대한 철학적 접근으로 시작한다.

진정한 예술은 근본적으로 정적이다. 반면 인공물은 바로 그 욕망과 혐오를 부추겨서 우리를 특정 방향으로 움직이게 한다. 인공물은 근본적으로 동적이라는 뜻이다 ㅡ p. 20~21

이는 인공물을 경계할 것과 더불어 예술이 특정 목적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강력한 메시지이다. 예술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 현상들을 정확하게 인지하는 것이야말로 위태로워진 인간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과거 누군가의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학부 교양 철학 수업 시간에 교수가 던진 질문이었다. 인간을 인간으로 규정하고, 인간을 인간이게하는 하는 특징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다. 학생들은 다양한 자신들의 견해를 피력했다.

다양한 대답들 중 매우 설득력 있는 대답이 있었는데, '인간은 철학적 사유를 한다' 였다. 철학 수업 교수가 원하는 답과 일치했을 것이다. 이런 답이 나와줘야 철학 수업을 진행할 맛이 나지 않겠는가. 이 책을 읽으며 또 다른 구별 이유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은 예술 행위를 한다'

저자에 따르면 "예술은 내면의 상처를 공동체와 함께 나누고 어루만지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다" p.38 (Daniel Pichbeck, Notes from the Edge Times 인용문)

이 인용문에 적극 공감하는 바이다. 대한민국의 작가 한강은 그녀의 예술 세계를 통해 죽은 자들과 산 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했고, 그녀의 예술 세계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인정 받았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예술은 분명 인간 고유의 강력한 소통 창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성스러운 영혼이 깃든 긍정적 예술 세계는 부정적 인공불의 도전과 마주한다. 예술의 근본을 오염시키는 인공물의 출현은 현실이 되었다. 현대에 들어, 특히 디지털 방식이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한 이래로 예술과 반예술의 경계는 뚜렷하지 않다. 예술이 쉽게 오염될 수 있는 이유이다. 그리하여 경제적 구조와 정치적 의도를 가진 인공물들이 때로 예술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단다. 이들은 대중들의 방향성을 강요하려는 숨은 뜻을 가졌다. 예술의 본질을 소환해야 하는 이유이다.

미셸 푸코가 언급한 서구 사회를 지배해 온 힘, '규율' 그리고 들뢰즈가 예언한 '통제 사회'는 예술의 형식을 빌어 인간의 사고와 행동, 즉 인간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다. 자율성의 상실은 개인이 특정 집단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는 뜻과 일치한다.물론 주의해야 할 사항들도 있다.  지나친 '현재주의 (p.46)'는 '현재'의 현상 만을 강조하므로 과거를 반추할 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 과거를 외면하는 사회는 스스로 나아갈 방향을 상실할 수도 있다. 예술을 바라볼 때 주의해야 할 사항들이다.

그러나 과거에 매몰되어서도 안된다. AI는 오로지 과거의 틀에 갖혀있는 것들 만을 결과물로 내놓는다. 인간과는 달리 AI는 결코 미래로 나아가는 결과물을 생산해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또한 인지해야 할 것이다.

AI는 인간을 앞서서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 내진 못한다 (p. 49)
예술은 삶과 꿈, 그리고 경험이 세상 속에 존재한 후 인간의 상상력을 통해 발현된다. 이는 단지 정교함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영혼과 관련한 공감이며 소통이고 감동이 바로 정녕 예술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요인 중 하나인 것이다. 예술과의 대척점에서 반예술을 발견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공물의 유일한 목적은 우리를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게 하는 것" (p.92) 이다. 나아가 "예술과 무관한 목적을 위해 예술의 탈을 쓰고" (p.92) 있다. 이것이 저자가 밝힌 가짜 예술, 즉 반예술이 가지는 특징이자 정체이다. 반예술은 개인에 따른 다각도의 시각을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를 조종하려는 목적과 의도를 숨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동적 움직임을 살피면 반예술을 통찰 할 수 있는 눈을 가질 수 있다는 저자의 사유는 나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지향점과 추구하는 바가 예술의 그것 과는 전혀 다른 반예술은 일종의 함정을 가진 존재들이다. 우리를 그들이 만든 덧에 걸리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현대의 대중문화 속에 깊이 침투한 키치(Kitsch)는 단지 '나쁜 예술'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인간이 가져야 할 진실을 감추어 숨기기 때문이다. 이는 반예술이 가지는 또 다른 부정적 모습이다. 

예술의 탈을 쓴 특정 이념이 정치적인 의도에서 비롯된다면 예술은 심각하게 오염되기 시작한다. 예술이 대중을 기만하는 일종의 전술로 이용될 수도 있음을 뜻한다. 반예술이 위험한 이유이다.

"예술과 정치는 근본적으로 대척점에 서 있다. 예술은 기호를 상징으로 변성하지만 정치는 반대로 상징을 기호로 전락시킨다" (p.212)

저자의 이 말은 예술이 정치 권력자의 도구로 악용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도구로 이용되는 예술은 반예술이다. 이 순간 인간의 독창성은 죽음을 맞이한다. 더이상 예술일 수 없는 것이다.
예술은 인간의 자유로움과 관계한다. 무한한 상상력, 끝없는 창의력, 그리고 인간 고유의 다각적 감정들은 모두 인간의 자유로움을 대변하는 표현들이다.

"예술은 당신이 필요하다" (p.273)
인간은 본디 예술성을 가진 존재이다. 여타의 동물과 다른 가장 큰 이유중 하나일 것이다.
현대는 예술의 본질을 상실하도록 권하는 반예술의 시대이다. 가짜와 진짜의 경계가 무너진 혼탁한 예술의 시대이다.

이 책은 그 무너진 경계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사유를 준다. 예술의 본질을 더욱 명확하게 하는 것은 반예술을 인지할 수 있게한다. 예술과 반예술은 각각 이 책을 통해 명료해진다. 인간 정신은 예술과 관계하고 그 예술이 오염될때 인간 정신이 함께 병들 수 있다. 예술의 회복은 그러므로 인간성 회복과 대등하다. 우리가 예술을 회복해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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