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차트랑空


[[[ 주문 날짜를 확인하니 2025. 08. 14 일로 되어있다 ]]]




지난 해 7월 중순 무더운 어느 여름 날,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주신 분은 30대 초반의 아들을 둔 어머니였다. 사연인 즉, 아들 커플의 결혼 얘기가 오간 후, 어떤 이유로 女가 마음의 결정을 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서 사주 상담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아쉽게도 저는 명리를 업으로 하지 않으며 만족할 만한 답을 드릴 수도 없으니, 다른 전문가를 찾아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정중하게 전화를 마무리했다.

나는 좋은 팔자를 타고나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늘 목숨이 위태로웠다. 슈베르트나 멘델스존, 모자르트의 명을 애도하며 하염없이 슬퍼하고 있지만 현대 의학이 아니었다면 나는 슈베르트 형님과 같은 나이에 이미 세상을 등졌을 것이다. 당시 나의 상태는 4시간의 수술과 20cm 이상의 복부 절개를 피할 수 없었다. 낭만주의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나는 딱 30년 살고 죽은 목숨이었다. 
명(命)이란 대체 무엇인가. 명리 술사들이 내게 하는 말들이 어김없이 들어 맞았다. 좋은건 모르겠지만 불길한 것들은 죄다 비켜가지 못했다. 어느 명리의 대가는 말했다, "그냥 넘어가는 법은 없습니다!!". 불길한 일은 반드시 짚고 넘어간다는 말이었다. 나는 명리에 무언가가 있나보다 싶었다. 병든 몸을 치료하면서 명리를 공부하게 된 동기였다. 병든지가 오래인만큼 적지 않은 세월 공부를 했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게 명리는 더 어렵게 느껴졌다. 

까짓거 고전을 죄다 독파하면 무슨 수가 안나겠나 싶었고, 차례로 도장을 깨듯 호기있게 하나 둘씩 고전을 독파해갔다. 그러나 실상은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고전들의 독파는 결코 명리의 끝이 아니었다. 본게임 전 워밍업, 겨우 예열에 불과했던 것이다. 비록 열공은 했으나 이렇게 어려운 명리를 친구따라 강남가듯 공부했으니 오히려 천만 다행이구나 싶은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작정하고 덤볐더라면 좌절한 끝에 실망이 대단히 컷을 테니까. 고전들을 죄다 독파하면 태권도 2단쯤 되는 무지렁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데는 꽤나 많은 세월을 필요로 했다. 솜씨 있는 스트리트 파이터를 만나면 쌍코피 터지는 어리버리한 태권도 2단이 바로 나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데 정확히 한 달 후 8월 중순 어느 날, 같은 분께서 다시 전화를 주셨다. 자녀의 상황에 개선의 여지가 없어 답답하다며 (나의) 사정은 알겠지만 꼭 좀 뵙고싶다는 것이었다. 일이 난처하게 되었다. 사정을 알렸는데도 한달을 고민하시다가 다시 전화를 주셨으니, 이 번에는 거절하기가 쉽지 않겠구나...싶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자녀분의 사주가 아닌, 선배로서 인생 상담은 해드릴 수 있는데 괜찮으시겠냐'고 물었다. 다행스럽게도 전화를 주신 분은 그래도 좋다고 답했다.

혼인을 하려는 당사자들의 일지(日支)를 형(刑)할 경우, 일이 뜻대로 이루지지 않는다. 조건 전제가 충족될 경우, 일지를 충(沖)해줘야 되려 혼인이 성사되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차라리 상충은 깔끔하다. 반면 형(刑)은 물고 뜯고 비트는 형국이라 그 모양새가 깔끔하지가 못하다. 그리하여 충(沖)보다 형(刑)에서 더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진다. (민 형사의 소송도 형(刑)에서 발생한다). 심지어 청첩장을 돌리고 난 후에도 일이 틀어지는 경우를 직접 보았다. 혼인을 앞둔 당사자들의 일지 형은 그러므로 고약한 것이다. 또한 천간(天干)에서 男은 재(財)를, 女는 관(官)을 때려내거나 합거할 경우 일이 뜻대로 되다가도 중간에 어김없이 일이 틀어지고 만다.
여하튼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위기의 男에게 줄 2권의 책을 알라딘에 주문했다. 준비한 책은 에릭 프롬이 쓴 ' 사랑의 기술' 그리고 그 유명한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이었다.

시대가 눈부시게 나아갈수록 독서 지수는 오히려 퇴보한다. 누군가 역사는 진보한다고 말했지만 '진보한다'는 술어가 왠지 어색하다. 진보하는 시대는 개인에게 더 많은 량의 정보를 처리하도록 요구한다. 처리해야할 정보 량이 더 많아졌음에도 시대는 시간을 더 재촉한다. 정보 처리 부담이 커졌지만 시간은 되려 더 촉박하다는 딜레마에 빠진다. 진보하지만 이러한 불합리한 시대에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책보다 빠르고 손쉽게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매체를 선호할 수 밖에 없다. 더불어 이 시대는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원하는 사람에게 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긍정적 환경을 제공해 주고 있다. 때로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가끔 나는 그 진위를 몰라 허우적이기도 하지만.



시대가 초래해온 또다른 문제는 '정보의 쪼개기'이다. 처리해야할 정보가 많아져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면 이를 쪼갤 수 밖에 없다. 그 결과 정보와 지식은 수직성을 띈다. 수직성의 문제는 상호 소통의 어려움을 야기시키는데 있다. 수직성이 가지는 특성은 벽이다. 스스로를 그 안에 가두려한다. 전문성을 댓가로 희생된 확장성의 상실은 소통의 장애물로서 기능을 하는 것이다. 소통 장애는 곧 공감력의 상실과 등가물이 된다. 인류가 겪는 진보의 딜레마이다. 이런 환경 속에 처한 현생 인류가 어찌 전쟁을 피해갈 수 있겠는가.

인문학과의 거리는 더욱 멀어지고, '아름다운 추억' 혹은 '멋진 낭만'도 이제는 사라졌다. '추억'과 '낭만'을 좀더 세련되게 표현한 용어는 '사회성' 이다. 추억과 낭만은 반드시 타자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타자가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는 '사회적'이라는 의미와 대등하다. 그러므로 추억과 낭만은 사회성의 등가물이다. 

이럴 경우 누군가 대신 사회성, 즉 인문학을 전달해줘야한다. 상실의 시대에 인문학 강의가 인기있게 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시대는 인간에게 물질의 풍요를 가져다 주지만 인간의 가슴 속에서 그만큼의 무엇인가를 앗아간다. 스스로도 자신의 가슴 속에서 무엇인가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가슴속 허해져 텅 빈 공간을 다시 채우고 싶어한다. 이는 풍요로움이 가져오는 일종의 갈증이다. 바닷물을 마실수록 목이 더 타들어가듯 말이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은 깊은 사유 공간을 제공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시대 환경을 제공한다. 이는 특히 인간관계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하기에 매우 적합한 조건이다. 상호 교류와 심리적 혹은 내적 관계를 올올이 저해하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관계에서의 공감능력은 점차 퇴화해 왔다. 시대가 발달할 수록 더더욱 필요한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다. 특히 상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감성지수 말이다. 

어째든 난관을 만난 男과 그 어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원인 제공자는 바로 이 男이었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男은 女에게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男에게, "그렇다면 천만 다행입니다" 했더니, 그 男 왈, " 아, 왜요?" 했다. "왜기는요, 내가 잘못했으니 내 잘못을 내가 바로잡으면 되므로 다행이라는 것이지요. 잘못이 상대방의 것이라면 그것을 내 뜻대로 바로잡을 수 있겠습니까?" 했다. 그 男은 기연미연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 男의 이런 반응으로 보아 이 男은 아직 女와의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듯 보였다. 아니, 어쩌면 방법을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어머니께 말씀 드렸다. "자녀분의 문제는 어렵지 않게 풀어낼 수가 있겠습니다", 라고. 순간, 그 男과 어머니의 두 눈이 똥그래졌다. "정말요?" 그래서 "네, 물론입니다" 했다. "이제부터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한가지만 갖춘다면 조만간 해결 할 수 있겠습니다." 했다. "그게 뭔가요?" 갑자기 두 사람의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바로 질문이 들어왔다. "제 말씀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아주 어렵기도 하지만 또 아주 쉽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해 놓고 말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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