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의 회로에는 그것을 작동시키는 동기 혹은 계기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어느 시골 마을에 새로 전입해 온 윤초시네 증손녀가 개울에서 던진 조약돌 하나가 소년이 아련한 첫사랑을 앓는 계기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 소년은 '이 바보!' 였기에 조약돌에 튕겨진 물을 맞아도 싼 어리숙이었다.
어째거나 대한민국에서 고전 음악 회로를 작동시키는 첫사랑 베스트 1위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이라고들 한다. 흔히, '입.문.곡.'이라는 얘기다. 아.... 연주를 들어보면 정말 이해가 간다. 황순원 '소나기'의 어리숙한 소년 주인공과는 달리 이 곡은 첫 눈에 반할 만한 매력을 가진 작품 중 작품이니 말이다. 이 곡은 '황제' 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데, 베토벤이 직접 붙인 것은 아니라고 한다.
회로 작동 첫사랑 베스트 2위는 아마도 비발디의 사계 쯤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나는 베스트 1위가 아닌 2위와 연애를 했던 것이다. 물론 사람들마다 첫사랑의 상대가 다르겠지만 비발디의 사계, 특히 '봄'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대한민국 국적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테레비와 라디오 광고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곡이 바로 '봄 1악장' 이었으니 말이다. 지금도 친구의 전화기 넘어 들려오는 시그널이 바로 이 곡 이다. 비발디 사계는 알고 보면 대한민국 전국구 음악인데.... 이쯤되면 사계의 본국에서보다 인기가 더 많은 곳이 대한민국이 아닐까 살짝 의심해본다. 이 모든게 사실은 펠릭스 아요가 이끌던 이무지치 덕분이다.
'나는 못들어 봤는데요!!!'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단언컨데, "아니다!. 결코 그럴리가 없다! 당신은 분명 들어봤다!! 다만 그 곡의 이름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라고 말할 수 있을 지경이 아닐까 또 한 번 살짝 생각해 본다. 심지어 돌아가신 나의 시골 할머니께서도 들어보셨으니 말이다. 불구하고, "저는 진짜 진짜 못들어 봤다고요~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게 긴급 버튼 113을 살며시 터치하시라. 아마도 력삼력 근처에서 살고있거나 리북에서 살다가 살짝 넘어왔을 가능성이 있다. 요즘은 포상금이 얼마더라.....
고등학교 2학년 여름, 공립 도서관에 가는 길목에는 레코드 가게가 하나 있었다. 바운더리를 좀 더 넓히면 주변에 몆 개가 더 있었지만 그 가게는 나의 거래처였다. 원하는 노래의 제목을 종이에 적어 주면 사장님은 언제 찾으러 와라 했다. 날짜에 대어가면 나의 신청곡이 녹음된 카세트 테이프를 받을 수 있었다.
(그 당시는 사진관에서 36방 짜리 컬러 필름을 2개 쯤 사면 카메라를 빌려주던 그런 시절이었다. 학교 소풍 때, 친구들과 팀을 짜서 필름을 구하고 카메라를 대여하곤 했다. 사진관 사장님은 대체 뭘 믿고 그 비싼 카메라를 선뜻 학생들에게 내줬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조건은 딱 하나, 사진은 우리 집에서 뽑자~~ 이거였다. 에헤~ 그럼, 딴데 어디라도 갈까봐요?)
하여튼 당시 분위기는 또 일정 비용을 내면 원하는 곡을 선별하여 녹음한 카세트 테이프를 얻을 수 있었다. 이는 물론 지적 재산권 또는 저작권 등과 관련한 법규 혹은 인식이 아예 없던 시절에나 가능한 이야기이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은 아니고, 버스 운전 기사가 운행 중에 그 지독한 담배를 피던 시절었던 것이다. 그 담배좀 꺼주세요!!! 라고 말하는 어른 하나 없던 그런 시절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
그 무더운 여름 날에도 그 가게를 무심코 지나치는데, 평소 와는 전혀 다른 음악, 낯설지만 정신을 올올이 사로잡는 음악이 그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왔다. 연주가 진행될 수록 현악기는 점점 더 격렬하고 뜨겁게 음악을 달군다. 어찌나 나를 긴장시키지 걸음을 멈추고는 그만 손에 땀을 쥐며 경청했다.
[ 이무지치의 창단은 펠릭스 아요(Felix Ayo 1933 년생) 이고 나의 첫사랑 악장이셨다. 위 악장은 안토니오 안셀미(Antonio Anselmi), 2019년 50세의 나이에 췌장암으로 불록하셨다. 부디 영면하소서...]
나는 속으로, '저러다 현이 끊어지고 말지...' 음악에 감동했다기 보다는 조마조마하고 아슬아슬 끊어질듯 외줄을 타는 듯한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짧지 않은 시간, 나의 불안감 과는 달리 무사히 연주는 끝이 났다!! 그때서야 나는 전기에 감전된 듯 한 감동을 느끼기 시작했다. 레코드 가게의 음악이 멈춘 후, 머릿 속에서 나의 음악이 다시 돌아기 시작했다.불안에 떨며 듣던, 손 대면 금방이라도 베일듯 날카롭고 예리한 바이올린의 선율. 그 또렷하고 차갑게 날이 선 바이올린과 뒤에서 백업해주는 단원들의 웅장함이 나의 머릿속에 저장되어있다가는 다시 재생되고 있었던 것이다.
크게 복잡하지 않은 선율 덕분인지, 강렬하면서도 신선한 충격 탓인지, 방금 전에 들었던 그 음악은 나를 사로잡아버렸고 끊임없이 나의 머리에서 반복 연주 되었다. 연주가 가득 찬 머리에 현기증을 느끼며 한 참을 걷다가 나는 불현듯 아, 맞다!! 그 레코드 가게로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얼굴을 모르는 처지도 아니고, 뭐 한 가지 물어보는게 어려울건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쫌 전에 그 낮선 음악은 뭡니까요? 라고 물었다.
사장님은 내 말 뜻을 잘 알겠다는 듯 음반 하나를 꺼내 들었다. LP 였다. 큼지막한 음반의 껍대기 위에 ' 비발디 4계 이무지치'라고 써있었다. 그 아래에는 '펠릭스 아요'라고도 써있었다. 그때서야 그토록 나를 사로잡은 것은 바로 음악 시간에 교과서로 배웠던 그 비발디 선생의 '사계, 여름'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2주 후, 카세트 테이프에 담긴 그 비발디 4계를 샀다.
나의 고전 음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세상에 있는 온갖 종류의 음악을 모두 좋아하지만 비율은 고전 음악이 크게 앞선다. 물론 가곡과 가요(K POP)도 아주 좋아한다.
어째거나
이무지치는 그렇게 비발디 사계로 나 뿐 아니라 전 세계를 강타했던 것이다. 이무지치 이후 내노라는 연주가들이 비발디 사계를 앞 다투서 녹음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많고도 다양한 음원들이 쏟아졌다. 어떤 연주는 개가 짖는 소리를 음원에 끼워하기도 했다. 워낙 다양하고도 빼어난 수작들이 많아 일일이 거론하기가 쉽지 않은 지경이다. 그 중에는 나의 여신 정경화께서 연주한 음원도 있다. '바이올린의 여제' 정경화의 신들린 연주는 오래도록 나의 전설인 것이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십시요, 나의 여신님!!
사실 학교의 음악 환경은 너무나도 보잘 것이 없었다. 아니 빈곤했다. 학교는 고전 음악 한 곡을 학생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플레이어 자체가 학교에는 구비되지 않았다. 음악 선생님들도 카세트로 베토벤 교향곡 혹은 모자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들려주는 분이 없었다.
음악 교과서는 소나타 형식과 교향곡, 교향시, 협주곡, 삼 사 오중주, 화성과 대위법등에 대해서 가르쳤다. 그 내용들이 시험에도 등장했다. 그러나 막상 그 음악을 한 곡이라도 직접 들어본 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참으로 딱한 음악 환경이 아닐 수 없었다.
요즘은 예술의 전당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 온다. 교향곡과 협주곡 혹은 피아노 리사이틀을 들으며 현장 수행 평가를 이행하면서 말이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던가...
LP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어느 때 부터인가 매체의 대세는 턴 테블에서 CDP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대세를 따라 CDP 오디오를 구입해서 듣게 되었는데 이게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LP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금속성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 또한 무척이나 낯설었는데 원치 않는 소리였다. 한마디로 듣고 싶지 않은 이질감의 소리가 함께 전달되고 있었다. 낯선 이 금속성 소리는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이걸 계속 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고민 하는 사이 CD들이 늘어가고, 휴대용 CDP도 나오면서 그렇게 대세는 완전 기울어졌다.
밀려오는 거대한 물결을 거스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금속성 음이 섞이지 않은 음으로의 귀환은 결국 이루어졌다. 지금은 그 금속성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나의 귀가 오염된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여부는 알 수가 없다.
그런 사정을 알기라도 하듯, 종종 LP반들이 나오곤 한다. 이에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