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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空


무장 탈영병이 진입한 지역으로 접근해 갈수록 나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몸은 떨리고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사람을 향해 화기를 쓴다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할 무렵, 중대에 무전이 타전되었다. '중대 들어라!! 신속히 부대 복귀한다, 반복한다. 중대, 중대 신속하게 부대 복귀하라!!' 

부대에 신속하게 복귀한 대원들은 모든 무장을 해제했다. 중대장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다행히 병사는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고 헌병들에게 자수했으니 대원들은 이제 쉬어라, 고. 그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던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이 무장 출동 만으로도 악몽을 꾼 대원이 있었다. 그는 탈영한 병사를 쏘았고 그 병사가 자신의 총에 맞아 죽어가는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대부분의 대원들은 웃어넘겼지만 내심 나와 같은 심정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당시에는 내가 무지해서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대원은 무장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PTSD를 겪었던 것이었다. 서울이 근무지인 대원들은 계엄을 발동하는 순간 자동 계엄군이 되게 되어있었다. 모든 경찰들은 계엄군의 지휘 통제하에 편입되고, 계엄군은 영장없이 즉결 처분하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계엄군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그 누구든 가리지 않고 즉결 처분된다. 모든 사법권과 행정권은 계엄군이 가진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모든 국민의 기본권은 박탈된다.

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이던가!!

이런 상황을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던 12.3 계엄 출동 군인들의 트라우마는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PTSD는 정도에 따라 사람에게 정상적인 생활을 불가능하게 하기도 한다. 나의 고향에는 10년 동안 바깥 출입을 하지 못하고 집안에 앓아 누워있던 한 사람이 있었다. 10 여 년이 흐른 뒤에야 조금씩 바깥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우연히 말없이 서로 눈이 마주치자 그는 나에게 엷고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주 지친 사람의 미소였고, 긴 어둠의 터널을 막 빠져나온 사람의  것이었다. 당시 어렸고 단순했던 나는 그가 그저 어떤 질병이 있는 줄로만 생각했다. 동네의 그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았다. 그것이 그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 증상의 이름은 몰랐지만 그것이 커다란 마음의 병이라는 것을 동네 사람들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이가 들어 알고 보니 그는 베트남 전쟁의 참전자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가 그토록 괴롭고 힘든 나날들을 보내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은 너무나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는  스스로 10년 이라는 긴 시간 동안 홀로 마음의 병마와 싸웠던 것이다. 국가도 무지했던지 그의 아픔을 외면했다. 본인에게는 물론이고 그의 가족과 형제들에게 이 얼마나 가슴 저미는 일이던가.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IBM 왓슨 연구소의 보고서 하나가 눈길을 끈다. 왓슨 연구소의 다음과 같은 데이터를 이미 접해본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한다. 왓슨 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라크, 아프칸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의 공식 사망자 수는 7,800명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2001년~2021년까지 알카에다 해체, 탈레반 정권 축출을 목표로 미국과 나토가 저지른 전쟁이다. 이라크 전쟁은 2003년~2011년까지 미국이 벌인 사담 후세인 제거 전쟁이다)


이 전쟁에 참전했다가 본국으로 귀국한 군인들이 자살한 경우는 32,000 명이다. 이는 미국 왓슨 연구소의 2021년 공식 기준이다. 그 후로도 자살자는 늘어나 36,000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전쟁 당시 1명이 사망하면 귀국 후 4명의 인원이 사망했다는 뜻이다. 이것은 피해의 표면적인 수치에 불과한 것이다. 귀국 후 알콜 중독, 재정 파탄, 이혼 등의 문제를 감안한다면 전쟁 트라우마의 피해는 상상 이상으로 훨씬 더 커진다.


미국 정부가 재향군인들에게 지출하는 치료비로 추정해본다면,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가 그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미국 정부가 재향군인들에게 치료비로 사용하는 금액은 년간 3.440억 달러, 한화 480조 원이다.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 재향군인들을 케어하는데 들어간 재정은 무려 1조 달러, 한화 1,400조 원 에 이른다. 이 금액은 2024년 대한민국의 명목 GDP의 절반을 훨씬 넘어서는 규모이다. 이른바 PTSD는 우리가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것임을 고스란히 반증하는 것이다.



위의 자료들 만으로도 결코 전생이나 참사가 있어서는 안되는 이유로 부족함이 없는 증거들이다. 전쟁이나 참사는 인간 비극 중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전쟁은 아비규환, 지옥 그 자체이니 말이다. 이태원 참사를 바라보는 국민과 국가의 시각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어물쩡 넘어갈 일이 아니다. 철저한 조사와 그에 따른 법적인 조치를 반드시 해야 한다. 결코, 결단코 그처럼 꽃다운 생명을 잃은 일은 또다시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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