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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도 못했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어느 알라디너의 댓글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 PTSD를 떠올리게 했다. 그것이 어쩌면 나의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거의 해본 적이 없다. 참사 현장에서 생사의 기로에 있었거나 불행하게도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에 비하면 나의 경험은 아주 사소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느 알라디너의 댓글은 점포의 사장과 나의 경우를 되돌아 보게되었다. 유가족들과는 비교 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너무나도 사소한 개인적 경험을 무시해온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나는 심각하지는 않지만 일종의 PTSD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갑자기 나의 머릿속은 온갖 경우의 생각들로 가득차오르기 시작했다. 현재 쓰고 있는 이 글이 무질서한 만큼이나 고요히 잠겨있던 사건들이 한꺼번에 그리고 무질서하게 수면 위로 떠올랐다. 혼란 그 자체다.



이태원 참사의 현장에 있던 사업장의 사장은 한 달 간 점포의 문을 닫았다. 조의 기간이 있기는 했지만 내 생각에 한 달은 너무 긴 시간이었다. 그는 결국 사업장을 내놓고 다른 곳으로 갔다. 현장에 함께 있던 나도 일 주일을 넋놓고 지냈다. 비추어볼 때, 현장에서 함께 참사를 겪다가 살아난 사람들과 자녀 또는 형제 자매를 잃은 유가족들은 어떠했을지 짐작이 쉽지 않다.



이태원 참사에서 생존 했던 어느 고등 학생은 43일 후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는 겨우 열 일곱 살의 나이였다. 그의 심경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당시 구조 활동을 했던 어느 소방관도 최근 같은 선택을 했다.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경우는 짐작컨대 훨씬 더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장에 있던 수 많은 젊은 이들은 바람이 차가워지는 10월이 되면 그 날의 악몽이 되살아 난다. 물론 유가족들의 고통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유가족 PTSD 심리 상담 정부지원 현황은 다음과 같다.
22년 602건
23년 488건
24년 19건
25년은 아예 없다.


위와 같은 상황으로 짐작컨데, "정부의 부재였다"는 유가족들의 주장은 진실로 타당하다. 더욱 분통이 터지는 것은 분향소 설치에 정부의 협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국가가 마련한 분향소에는 고인들의 이름 조차 없었다. 유가족들은 어렵게 분향소를 따로이 마련했다. 서울시는 그 분향소를 철거하라며 압박을 가했다. 서울시는 심지어 유가족들에게 2억원이라는 과태료 부과했다. 이는 2차 가해와 같은 잔인한, 결코 해서는 안될 짓이었다. 아니, 이건 미친 짓이다. 당시 정부는 책임을 서로 전가하고, 참사를 축소 은폐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이는 전 국민들이 목격한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당시의 정부는 믿을 수 없는 정부였다. 있으나 마나 한, 무능력한 정부였다. 국민들이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그런 정부였던 것이다. 당시의 정부는 그렇다 치자. 서울 시장, 도대체 너의 정체는 무엇이더냐!! 유가족에게 어찌 그리도 잔인하게 굴었단 말이냐!! 너의 자식이 그런 변을 당했어도 그리했을 것이냐!!



12.3  계엄군과 관련한  PTSD 지원 현황은 아래와 같다.
12.3 계엄군으로 출동 했던 군인들 중 1,040명이 PTSD 치료를 받고 있다.
그 중 70명은 심각한 상황이며, 

그 중 3명은 비상 조치를 받고 있다.

계엄군 출동자의 가족도 정신적 충격으로 용인에 소재하고 있는 국가 정신 건강 상담 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는 중이다. 



이는 정확하게 12.3 계엄 후, 국가에서 지원하고 있는 현황이다. 계엄군으로 출동했던 대원들은 물론 나의 남편 혹은 나의 자녀 또는 나의 아빠가 살상 무기를 들고 12.3 계엄군으로 출동했다는 사실이 본인들과 그 가족들을 크나큰 충격에 빠트렸던 것이다. 군대에 자식을 보낸 어느 엄마는 자신의 아들이 계엄군이 되어 시민들에게 총이라도 겨누게 되는 날에는 이를 어찌할 것이냐며 울먹였다고 한다.



이 사실을 나는 누군가에게 말해주었다. 그는 12.3 계엄이 가져온 수 많은 PTSD 결과를 이해할 수 없다고 답했다. 군필한 그도 전혀 공감할 수 없었던 것이다. 군필자도 이러한데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 대개의 반응들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군 복무 시절, 나에게는 가벼운 충격의 순간이 있었다.
어느 날, 긴급 출동 명령이 하달되었다. 평소와 다른 내용이 하나 있었다. 모두 무장을 하고 탄약통을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실탄을 장전하라구?? 이 번에는 단순 출동이 아닌 무장출동 명령이 하달된 것이다. 모든 대원들은 순간, 그 자리에서 굳어졌다. 이 뜻밖의 명령에 할 말을 잃은 대원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놀란 침묵의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내무 반장이 장교에게 질문을 던졌다, '무슨 상황입니까 중대장님!!'
중대장이 답했다, '무장한 탈영병이 우리 섹타에 진입했다. 그는 수류탄과 소총을 휴대했다. 조우하면 먼저 설득해야겠지만 만약 저항한다면 응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민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알았나 하사!!!'


그 순간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제발.... 우리와 조우하지 않기를.... 내가 어떻게 그 병사에게 이토록 강력한 화기를 쓸 수 있단 말인가!!! 무장을 한 채 신속히 차량에 올라 출동하는 대원들은 긴장한 채 그 누구도 한마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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